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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입구역 6번 출구
태릉입구역 6번 출구
  •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 승인 2021.08.3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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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역 2번 출구(28)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지하철역 출구 번호를 기억하면 목적지를 찾아가거나 약속 장소를 잡을 때 매우 편리하다. 일반적으로 서울 지하철의 경우 1번 출구가 정해지면 하늘에서 보아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면서 출구 번호가 하나씩 커진다. 1번 출구를 어디로 할지는 지하철 노선에 따라 다른데, 예를 들어 1호선은 청량리 방면을 바라볼 때 좌측 맨 뒤쪽 출구를 1번으로 하고, 2호선은 외선(外線) 우측의 맨 앞쪽 출구를 1번으로 한다. 서울에 있는 이 수많은 지하철역 출구들 가운데 갑작스럽게 유명해졌던 곳이 ‘합정역 5번 출구’ 아닐까 싶다. 

  
지하철 2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환승역인 ‘합정’역은 한자로 ‘합할 합(合)’에 ‘우물 정(井)’으로 적지만 본래 ‘조개가 많은 우물’이란 뜻에서 ‘조개 합(蛤)’을 썼다고 한다. ‘대합(大蛤)’이나 ‘홍합(紅蛤)’ 같이 조개류 이름에 들어가는 한자다. 인근에 절두산 순교기념관이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과거 이 동네에 숱하게 출몰하던 망나니들이 피 묻은 칼을 씻기 위해 우물을 팠더니 조개가 많이 나와 그곳에 ‘합정(蛤井)’이란 이름을 붙였단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에 나라에서 어려운 한자를 마구잡이로 간소화시킨다면서 ‘조개 합(蛤)’자를 별 뜻도 없이 ‘합할 합(合)’으로 바꾸었고 그게 이내 마을 이름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몇 년 전 국민 MC 유재석이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산슬’이란 이름의 트로트 가수로 나와 히트시킨 노래 제목이 ‘합정역 5번 출구’다. “합치면 정이 되는 합정인데 왜 우리는 갈라서야 하나”라는 노랫말로 미뤄볼 때 작사자가 ‘합정’의 유래까지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고 그냥 ‘정(情)’이 합쳐져야 할 ‘합정(合情)’역에서 이별이 웬 말이냐는 식의 가벼운 언어유희를 구사한 것으로 이해된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 지도를 펴놓고 ‘5번 출구’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특별한 게 없는 것으로 미루어 ‘5번 출구’ 역시 그저 운율 맞추기에 불과한 것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맨 처음 <의사신문>으로부터 에세이 형식의 칼럼 연재를 부탁받았을 때 코너명에 대해서도 아이디어를 내달라는 요청을 함께 받았다. 잠시 고민하는 중에 어디선가 유산슬의 ‘합정역 5번 출구’가 흘러나왔고 그때 문득 우리 병원과 가장 가까운 지하철 7호선의 ‘공릉역 2번 출구’가 떠올랐다. ‘합정역 5번 출구’는 유행가로 방송에 많이 나온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의미를 찾기 어려웠지만 ‘공릉역 2번 출구’는 원자력병원을 향해 가는 통로란 의미가 있다. 우리 병원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환자나 보호자들에겐 그곳이 ‘희망’을 향해 가는 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파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코너명을 ‘공릉역 2번 출구’로 하자고 제안했다.
  
이후 몇 차례 에세이를 연재하는 중에 기재부 공무원으로 오래 일하던 친구가 자기의 상사로 모셨던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옛 신문칼럼 하나를 스마트폰으로 보내왔다. 제목이 ‘혜화역 3번 출구’였다. 그 출구엔 무슨 사연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보내 준 글을 찬찬히 들여다보는데 끝까지 다 읽기도 전에 마음이 아려왔다. ‘혜화역 3번 출구’는 지하철에서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을 향해 나가는 통로다. 김동연 전 부총리의 큰아들은 그 병원에서 투병하다가 스물여덟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칼럼에서 그가 말하길, 길 건너 혜화역 2번 출구는 뮤지컬이나 연극을 공연하는 소극장을 향해 설레는 마음으로 나가는 곳이지만 반대편 3번 출구는 가슴 찢는 고통의 길이었고 아들의 죽음 이후 다시는 그리로 나가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비가 몹시 쏟아지던 지난 토요일에 천안에 있는 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다. 원자력병원에서 두 달 반가량 투병하시다 돌아가신 지 꼭 1년째 되는 날이었다. 빗속에서 운전하는 내내 내 머릿속엔 아버지가 아프실 때 병원에서 겪었던 힘겨운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당시 아버지의 간병을 낮에는 어머니가, 저녁에는 내가 맡았었다. 신촌에 사시는 어머니는 매일 아침 일찍 동생네 차편으로 병원에 오셨고, 병실에서 숙식하며 아버지를 돌보던 나는 그제야 본 업무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다 늦은 오후에 다시 잠시 시간을 내어 어머니를 내 차로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모셔드렸다.
  
‘태릉입구역 6번 출구’는 매일 오후 어머니를 모셔드리던 곳이다. 명칭은 출구지만 이 경우는 입구에 해당할 것이다. 복잡한 교통상황 때문에 대개는 지하철역 100미터쯤 전방에서 어머니를 내려드리면 나는 신호에 묶여 계속 서 있게 된다. 그 사이 어머니가 태릉입구역 6번 출구로 천천히 걸어가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허리 수술을 두 번이나 하신 탓에 걸음이 온전치 않으신 자그마한 80대 노인네가 힘없이 지하철역 계단으로 내려가시는 모습을 보노라면 슬픔이 밀려온다. 아버지가 입원하셨다가 돌아가시기까지 75일간을 어머니는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병원에 오셨고 나는 매번 지하철역에 모셔드렸으며, 매일같이 슬픔을 느꼈다. 차도(差度)를 보이지 않는 아버지 병환으로 인해 어머니가 걸어가며 지으시던 한숨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그렇게 ‘태릉입구역 6번 출구’, 아니 ‘입구’는 내게 ‘슬픔’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글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매번 다짐하건만 세상에 만연한 ‘고통’과 ‘슬픔’에 주눅이 들 때가 자주 있다. ‘공릉역 2번 출구’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태릉입구역 6번 출구’가 있음을 잘 안다. 남모를 고통과 사연을 간직한 채 오늘도 자신만의 ‘혜화역 3번 출구’를 나와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 역시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헬렌 켈러가 남긴 말을 되새기면서 ‘공릉역 2번 출구’에 깃든 희망을 큰소리로 외쳐보고 싶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한편 그것을 이겨내는 일로도 가득 차 있다(Although the world is full of suffering, it is full also of the overcoming of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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