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장폐색·부분 장폐색 구분해야···전문적 판단 필요” 강조
장폐색이 의심되는 환자에게 장 정결제를 투여했다가 사망케 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의사들이 항소심 재판에서 당시 판단에 대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소속 의사 정모 씨와 강모 씨 측은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재판장 장재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서 "1심 판결은 강씨 등이 CT촬영 결과와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채 장 정결제를 투여했다고 판단해 오류가 있다"며 이 같이 밝혔다.
정씨와 강씨 측 변호인은 이날 공판에서 "해당 환자는 부분 장폐색이었기 때문에 장 정결제 투여를 통한 내시경 진단이 최선의 선택이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면서 "1심은 '장폐색이면 장 정결제를 투여하면 안 된다'는 전제로 판단했지만, 완전 장폐색과 부분 장폐색을 구분해야 한다"며 "완전 장폐색과 부분 장폐색의 경우 진단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매우 전문적"이라고 강조했다.
정씨와 강씨는 지난 2016년 대장암이 의심돼 입원한 환자에 대해 대장내시경 검사를 하기 위해 장 정결제를 투여했다가 환자를 다발성 장기손상으로 숨지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주치의였던 강씨는 임상 조교수인 정씨의 승인을 받아 장 정결제를 투여했는데, 장 정결제는 장폐색 환자에게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어 원칙적으로 투여가 금지된다.
검찰은 당시 환자가 장폐색 의심 증상을 보였는데도 복부 팽만이나 압통이 없고, 대변을 보고 있다는 등의 이유만으로 정씨와 강씨가 장 정결제 투약을 결정한 것이 과실이라고 판단했다.
1심에서는 정씨와 강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정씨에게 금고 10개월의 실형을, 강씨에게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특히 1심 재판부는 정씨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법정 구속까지 해 의료계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고의성이 없는 의료사고에 대해 형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해외에서도 보기 드문 가혹한 처사라는 이유였다.
특히 정씨가 두 아이를 둔 엄마인데도, '도주 우려'를 이유로 법정 구속한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1심 판결 이후 대한의사협회는 "지금까지 전문가적 직업 소명에 따라 단 하나의 가치만으로 의료현장을 지켜온 의사들의 존엄과 가치를 빼앗은 판결”이라며 “법원의 사법 만행을 강력히 규탄하면서 즉각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서울시의사회도 "사망한 환자는 X-레이와 CT 촬영에서 대장암으로 의심되는 상황이었고, 대장암 진단을 위해 대장내시경이 필요했다"며 "환자를 살리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지키며 최선을 다한 의사에게 결과가 좋지 못하다고 해서 거액의 보상금을 요구하고 법정 구속시켜버리는 나라에서는 의학의 신(神)이 와도 의사를 그만둘 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정씨는 법정 구속 이후 53일만에 보석 허가 결정으로 풀려났다. 항소심 재판부는 다음 달 16일 2회 공판을 열어 증거조사를 하고 변론을 마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