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쉬트 닥터
치킨쉬트 닥터
  • 전성훈 변호사
  • 승인 2021.07.2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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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29)
전 성 훈 변 호 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비속어는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사에서 ‘우째 이런 일이!’ 같은 상황을 맞으면, 바른 말 고운 말만으로는 사람의 격렬한 감정을 다 담을 수 없다. 그래서 비속어는 항상 사람과 같이해 왔다.
 
‘치킨쉬트(chickenshit)’라는 영어 형용사가 있다. 당연히 비속어이다. 우리말로는 ‘겁쟁이인’이라고 번역되지만, 이는 너무나 바른 말스럽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비속어에는 비속어여야 한다. 따라서 이 단어는 ‘개쫄보인’이 맞지 않을까.
 
2018년 미국에서 출간된 ‘치킨쉬트 클럽(Chickenshit Club)’이라는 책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비속어를 제목으로 뽑아서 어그로 끌려는 책’으로 의심할 수 있겠지만, 이런 의심은 명확하게 틀렸다. 이 책의 저자는, 헌법 제1조가 언론출판의 자유인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언론인에게 수여하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2002년 제임스 코미는 미국 뉴욕 남부 연방지방검찰청장으로 부임했다. 이 검찰청은 월 스트리트를 관할구역으로 하고 있어 금융 수사, 그리고 금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재계 거물 수사로 유명했다. 코미는 업무파악이 끝난 뒤 소속 검사들을 불러 놓고 물었다. “여기에서 배심원단의 무죄 평결을 한 번도 안 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의 질문은 마치 가장 유능한 검사를 찾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신있는 검사 몇 명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코미가 말했다. “여러분은 개쫄보 모임(chickenshit club) 회원들입니다.”
 
검사장이 잘나디 잘난 연방검사들에게 이런 신랄한 비아냥을 날리게 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1970년대까지는 연방검찰청, 연방증권거래위원회(SEC) 소속 검사와 변호사들이 정의에 대한 사명감을 바탕으로 영웅적 활약을 펼쳤고, 금융시장은 ‘지킬 것은 지키면서’ 질서가 유지됐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레이건이 집권하면서 기업들에게 준 무한한 자유는, 곧 신자유주의라는 유사종교가 되었다. 그러자 연방검찰청, SEC 같은 법집행기관들은 광고주인 기업들에게 휘둘리는 언론들에 의해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기관’으로 낙인찍혔다. 예산은 삭감되었고, 격무와 박봉을 사명감으로 이겨내 오던 연방검사들은 일할 동기를 잃기 시작했으며, 조직을 떠나 로펌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연방검찰청과 SEC는 거대기업들에 대한 수사를 계속했지만, 십여 년간 서서히 죽어가던 이런 기관들에게서 산소호흡기를 떼어버린 것은 2001년의 이른바 ‘엔론 사태’였다. 정직원만 2만 명, 연간 매출액이 120조 원에 이르는 거대 에너지기업 엔론은, 미국 최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아서 앤더슨’의 공모와 조력 하에, 무리한 투자로 입은 거대한 손실을 조직적인 회계부정으로 감추고 있었다. 연방검찰청은 SEC와 협력하여 엄청난 열정과 노력으로 엔론 경영진을 기소했지만, 이 기소의 영향으로 ‘아서 앤더슨’은 파산했고, 2만 명이 넘는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러자 때를 기다린 것처럼 ‘기업 기소에 대한 경제적 효과 같은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았다’라는 정·재계의 비난이 연방검사들에게 쏟아졌고, 여론은 부화뇌동했다(어디서 많이 본 패턴이 아닌가?). 연방검사들은 얼마 안 남은 의지와 배짱조차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후 많은 연방검사들은 수사 결과에 큰 위험이 따르는 거대기업에 대한 기소를 포기하고, 기업의 금전배상 등을 조건으로 불기소하는 ‘기소유예약정’, ‘불기소약정’과 잔챙이 금융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에 만족하게 된다. ‘개쫄보 모임’이 탄생한 것이다. 참고로, 기업 경영진이 기꺼이 지불하겠다고 연방검사들에게 약속하는 배상금은, 당연히 주주들의 돈이다.
 
그리고 역할을 해야 할 전문가 집단이 ‘개쫄보 모임’이 되어버린 금융시장에는 얼마지 않아 ‘당연히’ 대형사고가 터졌다. 쓰레기 금융 상품을 고수익이라는 예쁜 포장지로 포장하여 판매했음에도 아무도 이를 규제하지 않았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대가는 컸다. 이는 미국에 수십만 명의 실직자를, 그리고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세계 경제에 엄청난 충격과 손실을 남겼다.
 
미국 재계, 정치권, 언론들은 거대기업들을 감시하는 연방검사들과 SEC 소속 변호사들에게 계획적이고 지속적으로 십자포화를 퍼부었고, 전문가 집단을 시나브로 ‘개쫄보 모임’에 몰아넣는데 성공했다. 그 덕분에 2008년 이후, 미국 거대기업 경영진들이 한순간에 모두 천사가 된 것이 아닐진대, 그 처벌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위와 같은 일련의 상황은, 어떤 의미에서 매우 전형적이다. 법률 전문가 집단이 최선을 다해 역할을 수행하자, 일부 국민들은 불가피하게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법률 전문가 집단의 정상적인 역할 수행을 방해하자, 훨씬 많은 국민들이 훨씬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렇듯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전문가 집단이 ‘개쫄보 모임’에 가입하는 경우,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어느 사회나 이런 점을 오랜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전문가 집단이 역할을 수행하면서 부득이 발생하는 문제점을 과장하는 것은, 미국 연방검사들에 대한 위와 같은 비난과 같이, 대부분 어떤 ‘꿍꿍이’가 있다.
 
의료행위에는 불가피한 불확실성이 있다. 인체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이해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국회에서는 구시대적 면허관리기준으로 복귀하자는 의사면허취소사유 확대 법안이, 그리고 부작용이고 나발이고 의사의 잘못만 잡아내면 된다는 엽기적인 의도에 바탕한 수술실 CCTV 강제화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의사의 윤리성을 의도적으로 과대평가하여 결과적으로 의사 전체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가는 이런 법안들은, 그 자체로 비합리적이고 나아가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의심된다. 의사들과 환자들 사이의 신뢰를 망가뜨리고 ‘갈라치기’하는 이런 법안들은, 의사들을 시나브로 ‘치킨쉬트 닥터’로 만들어 방어진료라는 벙커에 몰아넣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 연방검사들이 자의반 타의반 ‘치킨쉬트 클럽’에 들어간 이후의 결과에서 보듯이, ‘치킨쉬트 닥터’가 늘어감으로 인한 피해는 국민들이 입게 될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 우리나라 의사들을 ‘개쫄보’로 만들지 않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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