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는 연애편지다
광고는 연애편지다
  •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 승인 2021.07.20 10:03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릉역 2번 출구 (24)

“연애편지를 쓴다고 해봅시다. 편지 하나에는 ‘보고 싶습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에는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맘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라고 쓰여 있습니다. 누구 손을 잡아주겠습니까?”
 
이런 멋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자신을 CCO(Chief Creative Officer)라 소개하는 광고인 박웅현이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란 저서까지 펴낸 것처럼 그는 인문학 공부에서 얻은 영감을 광고에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직설적이지만 그저 밍밍한 문장, ‘보고 싶습니다’가 박웅현의 손길이 닿자 순식간에 정지용의 시 <호수 1>로 변하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꼭 마술사의 공연을 감상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잘 자, 내 꿈 꿔’,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진심이 짓는다’ 등등 주옥같은 명작 카피들이 이 마술사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게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나도 얼떨결에 광고 비슷한 걸 만들어 보려고 한 적이 있다. 딸아이가 중학생 때의 일이다. 미술 시간에 공익광고 만들기를 한다면서 아빠는 뭐 좀 아이디어 없느냐 물었다. 곰곰 생각한 끝에 지하철 2호선을 자주 타고 다니던 의예과 때의 내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하나 해주었다. 이른 아침 신촌 지하철역 쓰레기통에 버려진 빨간 장미꽃을 보고 느꼈던 단상이다. 내팽개쳐졌지만 싱싱했던 장미꽃은 아마 신촌에서 대학을 다니던 쌀쌀맞은 여학생의 짓이었을 것이다. 이 여학생을 오래 짝사랑하던 남학생이 어느 날 홍대입구역에서 마침내 사랑을 고백하며 꽃을 건넸고 여학생은 심드렁하게 그걸 받았다. 감격에 겨워하는 남학생을 뒤로하고 다음 정거장인 신촌역에서 내린 여학생. 아무렇지도 않게 그걸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린다. 실루엣 처리된 키 큰 여자의 뒷모습과 클로즈업된 쓰레기통 속의 장미. 그 아래로 이런 문구가 흐른다. “깨져버린 한 남자의 가슴을 아십니까? 우리 서로 상처 주지 말고 살아갑시다.”
 
딸아이의 반응은 차가웠다. 별로 설득력도 없고 ‘유치찬란’하기만 하다는 것이었다. 몇몇 친구들도 내 얘길 듣더니, ‘무슨 아카시아 껌 짝퉁 CF 같다’는 둥 폄훼하기 바빴다. 하지만 이런 비난이 별로 상처가 되지 않았던 건 스토리를 고민하고 이미지를 입힌 다음, 광고 카피까지 덧붙이는 일련의 과정이 꽤 즐거웠기 때문이다. 생각의 근육이 조금씩 자라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아무튼 광고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 중에 특히 즐겁게 자기 일에 몰두하는 분들이 많은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1세대 스타 광고인인 이용찬 대표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OK! SK’와 초코파이의 ‘정(情)’ 시리즈로 유명한 이용찬 대표가 오래전에 원자력병원의 홍보 활동을 잠깐 도와준 적이 있다. 당시 원장님과의 개인적 친분에 의한 재능기부 수준의 컨설팅이었지만 뭔가 이벤트 만들기를 즐겼던 이 대표는 우리더러 대뜸 계약서를 쓰자고 했다. 그런데 계약금액이 ‘1원’이었다는 게 특이한 점이었고 계약 체결식 당일 우리 홍보팀은 반짝거리는 1원짜리 동전을 서둘러 준비해야 했다. 보통 때는 찾기도 힘들고 실제 쓸 데도 없는 1원짜리를 일약 엄숙한 공식 세레모니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린 기발함. 전도사처럼 늘 ‘발상의 전환’을 외치는 광고인 이용찬이 1원짜리를 통해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도 그랬을 것 같다. 명목상의 가치보다 생각의 가치가 훨씬 중요하다고.
 
이후 병원 이미지 광고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우리 병원 의사들이 좀 늘기 시작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런 카피도 만들었다. “癌이 걱정되십니까? 저희에게 오십시오. 암, 저희가 아니라면 아닙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마지막 문장이다. ‘원자력병원이 말기 암 환자들만 치료받으러 오는 곳이 아니다. 암 검진도 열심히 하고 있다. 우수한 암 전문의들이 직접 검진하고 결과를 판정하는데, 그 결과가 괜찮다고 하면 확실히 안심하셔도 된다’라는 메시지가 담긴 카피였다. 여기서 질병명 ‘癌’은 한자로 썼지만 뒤에는 한글로 써서 ‘암, 그렇고말고’ 할 때처럼 중의적 감탄사 효과를 내고자 했던 것도 깨알 같은 아이디어였다.
 
냉정히 보자면 건강검진의 중요성과 우리 검진 센터의 우수성을 홍보하고자 했던 이 광고가 그다지 성공적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문장이 길기도 하거니와 이렇게 간접적인 표현 몇 줄만 가지고 단번에 ‘위중한 환자들에게 방사선 치료하는 암 병원’의 고착된 이미지를 ‘평소 건강인들의 암 예방을 위해서도 힘쓰는 병원’으로까지 확장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최근에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암은 원자력병원입니다’라고 정리한 간결한 카피가 핵심 슬로건이 되어버렸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덜 세련되고 투박해도 의사들의 아이디어가 녹아들어 간 옛 광고가 가끔 그립다.
 
다시 박웅현의 이야기다. 올 초 <독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광고는 연애편지라고 보면 된다. 연애편지를 쓸 때 자신의 전체를 집어넣기보다는 자기의 감성적인 요소나 낭만적인 이야기 그리고 자기가 멋있게 보이는 어떤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집어넣지 않나. 광고도 똑같다.” 연애편지를 한 번이라도 써 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단박에 이해가 갈 것이다. ‘임팩트’가 확실히 드러나도록 겉멋을 좀 부려도 좋다는 뜻이다. 다만 이어지는 그의 다음과 같은 경고는 의미심장하다. “광고에서 중요한 건 ‘잘 말해진 진실(truth well told)’이다. ‘잘 말해진 거짓(false well told)’이면 기업도 망하고 광고도 망한다.”
 
연애편지의 포장지가 아무리 아름답고 내용에 미사여구가 아무리 넘쳐나더라도 연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언제나 ‘진실’에서 나온다. 오늘도 병원 안팎에 나붙은 플래카드, 배너, 포스터, 그리고 공문 양식이나 기념품 등등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새겨진 홍보성 문구들을 ‘진실의 안경’을 쓰고 한번 점검해 봐야 할 것 같다. 망하지 않으려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류진한 2021-08-31 09:56:45
원장님께서 광고에 대한 애정과 내공이 탁월하시군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