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도, 가야파, 차별금지법
빌라도, 가야파, 차별금지법
  • 전성훈 변호사
  • 승인 2021.07.13 09:28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28)
전 성 훈변 호 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변 호 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이것은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 중 하나이다. ‘빌라도가 “그러면 내가 예수를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라고 묻자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못박으시오!”라고 말했다. 빌라도가 “도대체 그 사람의 잘못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으나 그들은 더 악을 써 가며 “십자가에 못박으시오!”라고 외쳤다. 빌라도는 더 말해 보아야 소용없을 것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폭동이 일어나려는 기세가 보였으므로, 물을 가져다가 그들 앞에서 손을 씻으며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유대인들은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지겠습니다.”라고 소리쳤다.’(마태복음 27장 22절-25절)
 
원래 예수는 신성모독으로 기소되어 유대 속주의 최고의회(성전)에 출두했는데, 최고의회는 사형을 내릴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대제사장 가야파가 이끄는 유대인 다수파는 그를 정치범으로 몰아 빌라도가 관할하는 로마 법정으로 보냈다. 빌라도는 예수를 무죄로 보고 유대인들을 설득하려 했으나, 끝내는 그들에게 떠밀려 예수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이때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호언장담했다. ‘도장만 찍어라. 뒷일은 우리들이 책임진다.’ 하지만 그들은 이 호언장담 한 마디 때문에 이후 2,000년간 자신의 후손들이 겪게 될 엄청난 차별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한 줄의 성경 구절은, 이후 기독교가 지배하게 된 유럽에서 다른 민족들이 유대인들을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이라고 증오하면서 그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에서 생존에 필요하거나 사람들이 선호하는 재화는 항상 부족했고, 반면 불명예스럽거나 불이익하지만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일은 항상 존재했다. 그래서 어느 사회에서나 지배층은 재화나 기피업무를 배분하면서 피지배층에게 그들이 납득할 만한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기에, ‘차별받을 사람’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설정했다. 그것은 패전한 상대방 집단에서 끌려온 노예, 부모를 잘못 만난 노예의 자손, 혈통이 다른 이민족, 인적 유대가 없는 타지역 출신, 물리력이 약한 여성, 유대인과 같이 동화를 거부하는 소수 민족 등이었다.
 
인간이 사회를 형성한 이후 차별이 없던 적은 없었다. 단지 차별의 ‘기준’만이 시대에 따라 변해왔을 뿐이다. 하지만 인지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관습적으로 형성되어 온 기존의 차별의 기준에 의문을 품게 되었고, 프랑스 대혁명을 변곡점으로 하여 200년에 걸쳐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차별의 기준은 상당히 합리화되었다. 노예 제도가 폐지되었고, 외국인에게도 권리가 보장되었으며, 여성도 투표권을 얻게 된 것처럼 말이다.
 
그러자 최근에는 차별의 기준이 문제가 아니라 차별의 ‘존재’ 자체가 부당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에서는 차별 자체를 금지하는 법률이 제정되거나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작년 6월 ‘차별금지법안’, 올해 6월 ‘평등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된 상태이다.
 
그런데 이 법률안들에 가장 찬성할 것 같은 법조인들이, 심지어 대법원까지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법조인들이 지적하는 문제점들을 간략히 정리해 보겠다.
 
첫째 차별의 ‘정의’가 불분명하다. ‘분리, 구별, 제한, 배제, 거부’라는 개념은 추상적이어서 기준이 되기 어렵고, ‘괴롭힘, 성희롱, 차별표시·조장 광고행위’가 차별에 포함되어야 하는지는 논란이 있다.
 
둘째 차별금지‘사유’에 ‘등’을 붙여 놓은 것은 치명적이다. 현재 법원 판례 등 차별 사유에 대한 해석이 크게 부족한 상황임에도 지나치게 확장해석될 가능성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또한 ‘성별’에 남성·여성 외에 ‘분류할 수 없는 또는 분류하기 어려운 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는데, 법률로서 국민적 공감대를 얻고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셋째 차별금지‘영역’이 너무 광범위하다. ‘차별금지법안’에는 ‘고용, 물품이나 서비스의 공급·이용, 교육·직업훈련, 행정·사법절차의 이용 등’으로 제한되어 있었는데, ‘평등법안’에는 이러한 제한도 없다. 국민들이 모든 일상생활에서 ‘자체검열’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차별금지나 평등이라는 이상은 좋으나 이것이 과연 가능한지 의문이다.
 
넷째 차별‘구제방법’ 및 ‘제재방법’이 지나치다. 방대한 현행 법체계는 ‘주장자(피해자)가 증명할 것’을 기초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법률안들은 주장자가 ‘너 차별했어’라고 주장하면, 상대방에게 ‘나 차별 안 했어’라는 사실을 증명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부작위의 증명은 이른바 ‘악마의 증명’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함부로 부과해서는 안 된다. 군사독재시기에 악용되었던 ‘당신이 간첩이 아닌 걸 증명해 봐라’와 다르지 않다.
 
달성하려는 목적이 정당함을 강조하면서 그 수단이 적절한지, 다른 사람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지는 않는지,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은 없는지 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목적이 정당해!’만을 외치면서 밀어붙이는 입법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다. 의료계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의 ‘수술실 CCTV 법안’처럼 말이다.
 
우리는 부작용에 눈 감고 ‘일단 해!’ 방식으로 다른 나라들이 200년 걸린 성취를 50년만에 이뤄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의 일부 구성원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차별과 희생을 감당할 것을 강요했다. 최근 들어 이를 바로잡고 일정한 보상을 하고 있지만, 돈만으로 이들이 받은 오랜 차별과 희생이 충분히 보상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제 자타공인 선진국이다. 부작용에 눈 감고 ‘빨리 빨리’만을 중시하여 업무를 추진하는 방식은 이제 효율면에서도 적절한 방식이 아니다. 국민들의 의식 수준은 높아졌고, 국가의 결정을 맹신하지도 않으며, 돈으로만 보상받는 것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런 식의 막무가내형 입법은 반드시 부작용을 남기고, 그 부작용의 피해자는 국민이 된다. ‘차별은 나쁜 것’, ‘평등은 좋은 것’이라는 초등학생 수준의 당위만 앞세우기에는, 이 법률안들이 그대로 입법된다면 앞으로 사회에 미칠 영향이 너무 크다. ‘수술실 CCTV 법안’이 의료계에 미칠 영향이 큰 것처럼 말이다. 이에 대한 차분한, 충분한, 깊이 있는 논의를 희망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룰루랄라 2021-07-13 11:43:28
정말 중요한 글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2021-07-13 11:37:03
멋진 분이시네요! 독자들을 위해, 차금법과 평등법이 폐해를 쉽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