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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이여, 신문고를 쳐라!
의사들이여, 신문고를 쳐라!
  • 전성훈
  • 승인 2021.07.06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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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27)

의사가 일하면서 환자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무엇일까? 아마 ‘아프다’와 ‘불편하다’라는 말일 것이다. 변호사 역시 의뢰인으로부터 가장 많이는 아니지만, 상당히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그것은 ‘억울하다’라는 말이다.

사람의 감정은 동서양과 인종을 막론하고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억울하다’는 말은 어느 언어에나 있다. 하지만 우리만큼 이 말을 자주 쓰고, 이 감정을 자주 호소하는 민족은 없는 것 같다. 개인적 이해관계에 관한 내용임에도 ‘억울하니 사방에 알려달라’면서 회원수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열심히 글을 올리는 것이나, 심지어 이익단체임에도 ‘대통령님은 억울함을 살펴 달라’는 내용의 광고를 내거나 현수막을 거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런 ‘억울함의 범람’은 우리에게 최근에 갑자기 생긴 일은 아니다. 강한 자존심과 독립심에 더하여 강한 평등의식까지 가진 덕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억울함을 많이 느꼈다. 그리고 이를 풀지 못하면 분사(憤死), 즉 앉아서 ‘끙’하고 죽거나, ‘억울하옵니다’를 남기고 자살했다. 자칭 명예로운 죽음이라는 ‘할복’이 있는 일본보다, 조선의 명예자살이 훨씬 많았던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래서 과거 백성들은 억울한 일, 즉 민원(民怨)이 생기면 즉시 관청으로 달려가 억울함을 호소했고, 따라서 국정을 담당하는 왕과 관료들에게 백성들의 민원 해결은 항상 중요한 과제였다.

고려시대의 민원 처리에 관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를 경시해서라기보다는, 아마 기록들이 대부분 없어져서 그럴 것이다. 반면 민본주의를 표방하며 건국된 조선은 초기부터 거의 완벽하게 민원 처리 절차를 확립했다.

민원이 있으면 민원인은 일차적으로 거주하는 지역의 수령에게 이를 제출할 수 있었다. 수령의 민원 처리에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 그 억울함을 담당공무원(서울)이나 관찰사와 암행어사(지방)에게 제출할 수 있었는데 이를 ‘소원(訴冤)’이라고 했다.

관찰사 등은 소원을 받으면 해당/인근 지역 수령에게 다시 이관하여 엄정하게 조사·보고할 것을 명했다. 관찰사 등의 처리를 거쳤어도 억울함이 있으면 사헌부(=감사원)에 소원을 다시 제출할 수 있었다. 그래도 억울함이 있으면 마지막으로 왕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었다. 무려 4심제를 운영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민원 절차는 성별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보장되었다.

왕에게 직접 호소하는 제도로는 잘 알려진 신문고 제도가 있다. 그런데 잘못 알려진 부분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북을 친다고 하여 매번 왕이 나온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단 북을 치면 의금부 당직청(=공수처 당직실)에서 나와서 북을 친 민원인의 소원이 무엇인지 확인하는데, 이 때 내용이 반역, 국가기강, 살인 등이 아니면 접수도 안 했다.
 
억울하면 죽어버릴 만큼 자존심이 강했던 우리 선조들이, ‘당신의 억울함은 왕이 신경쓸 정도는 아니니 그냥 돌아가시오’라고 하면 그냥 곱게 돌아갔을까? 그럴 리가 있겠는가. 신문고 제도를 만든지 100년도 안 되어, 신문고 제도를 대신하여 상언(上言) 제도와 격쟁(擊錚) 제도가 ‘자연’발생했다. 제도가 자연발생했다고? 그것은 상언과 격쟁 모두 왕의 행차길에 어가 행렬을 막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러한 행위가 반복되자 부득이 이를 제도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상언은 문서로 호소하는 방식이어서 양반들이 선호했는데, 상언이 반복되자 왕의 행차에 아예 상언별감을 두고 이를 접수하게 하여 제도화했다. 반면 ‘징을 친다’는 의미의 격쟁은 말로 호소하는 방식이었는데, 백성들이 궁궐에 난입하거나(!) 왕의 행차를 가로막고 징, 꽹과리 등을 쳐서 이목을 집중시킨 다음 억울한 사정을 왕에게 호소했다. 이 때문에 격쟁은 상언과 달리 왕을 소란스럽게 한 죄목으로 붙잡혀 가서 먼저 곤장을 심하게 맞은 후에 억울한 사정을 호소할 수 있었다. 조선 후기에 이러한 상언·격쟁이 얼마나 활발하였느냐 하면, 정조 재위 25년 동안 기록된 상언·격쟁만 무려 4,304건으로, 1년 평균 172건이다. 당시 인구가 지금의 1/3이었음을 생각해 보라.
 
이렇게 자칫 불경죄로 목이 날아갈 수도 있거나, 곤장을 맞은 후에야 한마디 할 수 있었음에도, 우리 선조들은 양반, 상민, 노비를 가리지 않고 ‘억울하옵니다’를 외치면서 거침없이 왕의 행차를 가로막았다. 역시 우리 민족은 억울한 것은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에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억울한 것으로 말하자면 의사들도 빠질 수 없다. 정부도 인정하는, 원가의 70%에 불과한 저수가를 기반으로 외줄을 타듯이 의료기관을 운영하고 있지만, 지금 지고 있는 다양한 행정적 부담에 더하여 제도적 압박은 늘어만 간다. 불합리한 점들을 호소해도, 결국 ‘의사는 그래도 고소득 아니냐’라는 메아리로 되돌아 온다. 그리고 의사에게는 두드릴 신문고도 없다.
 
그래서 정부가 해결해 주지 않는 13만 의사들의 억울함을 해결하기 위해,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3일 ‘대한의사협회 회원권익센터’ 개소식을 가졌다. 회원의 권익보호와 민원해결을 목적으로 하여 설립된 ‘회원권익센터’는, 회원의 민원을 단순민원, 심층민원, 협업민원으로 분류하여 처리한다. 단순민원의 경우 중앙 및 각 시도의사회 회원권익센터, 담당 실무부서에서 답변한다. 심층민원의 경우 담당 실무부서에서 해결할 수 없는 면허정지, 행정처분 등의 정책적인 사안에 대하여 회원권익위원회 중앙실무위원회에서 기획조사를 진행해 처리한다. 그리고 협업민원의 경우 중앙실무위원회와 시도의사회 간의 협업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 각 시도의사회장과 중앙실무위원회 간사 간의 논의를 통해 처리한다.
 
의료 정책은 사회상을 반영하므로 정답이란 것이 있을 수 없고, 의사의 노동에 대한 대가 역시 시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다. 하지만 불이익도 참을 만해야 하고, 억울할 지경에 이르러서는 안 된다. 의사의 모든 억울함들을 즉시 해결하기는 어렵겠지만, ‘가능한 것을’ ‘꾸준히’ 해결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의료계의 미래는 어둡다. 대한의사협회 회원권익센터에 대한 많은 관심과 이용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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