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큐, 모차르트
땡큐, 모차르트
  •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 승인 2021.06.22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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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준의 공릉역 2번출구 〈20〉

모차르트의 작품 전곡이 패키지로 판매된 것은 1990년에서 1991년 사이 네덜란드의 필립스 레코드가 발매한 CD 180장짜리가 처음인 것 같다. 1791년에 세상을 떠난 모차르트의 사망 200주년을 기념해서 만든 역작이었지만 가격대가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바람에 어지간한 골수팬이 아니고는 구입할 엄두를 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다행히 2006년, 그러니까 1756년에 태어난 모차르트의 탄생 250주년을 맞이한 해에, 역시 네덜란드 음반사인 ‘브릴리언트 클래식’에서 훨씬 저렴한 전집을 출시했다. 

오래 전 녹음된 모차르트 작품 중 이미 절판된 음원들을 재활용하고, 개런티가 높지 않은 무명의 아티스트들과 집중 계약하는 방식으로 원가를 대폭 낮춘 게 브릴리언트 클래식의 CD 170장짜리 모차르트 전집이다. 가격은 싸지만 필립스에 비해 완성도가 그리 떨어지지 않았다는 평가와 함께 국내에서도 꽤 많이 팔렸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몇 해 전 지인으로부터 이 전집을 선물로 받았을 때 나는 감사함보다 곤혹스러움이 앞섰다.

어릴 적 우리 집 책꽂이에는 다양한 전집(全集)들이 꽂혀 있었다. 계몽사의 오십 권짜리 <세계문학전집>과 열 권 쯤 되는 삼중당의 <김찬삼 세계여행기>, 그리고 민중서관에서 나온 36권짜리 어른용 <한국문학전집>에 영문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30권 세트 등등. 그 책들 중엔 물론 관심 가는 것도 있었지만 ‘전시용(展示用)’ 도서로서의 묵직한 위압감이 펼쳐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대체로 압도하곤 했다. 당시 학교 서가에는 문교부 주관의 이른바 ‘자유교양 경시대회’ 출전용 필독서라는 제목 아래, 동일한 초록색 표지의 세계 고전들이 빽빽이 진열되고 있었다. 집이건 학교건 그 많은 책들이 어느 날 죄다 ‘숙제’로 느껴지자 난 호흡곤란 증상이 살짝 나타나면서 ‘전집 포비아’에 걸리고 말았다.

철들고 나서 내가 구입한 전집이라고는 의대생 시절 남들 다 사는 ‘네터(Netter)’ 박사의 열 권짜리 도해서 ‘CIBA 컬렉션’뿐이다. 별로 펼쳐보게 되지도 않는데 부담만 느끼게 하던 그 육중한 전집을 버리던 날, ‘이딴 거 다신 사지 말자’ 다짐하면서 책 이름 ‘CIBA(실은 제약사 이름)’를 여러 차례 되뇌던 기억이 난다. 이런 내게 졸지에 CD 170장이 뭉텅이로 주어졌으니 전집으로 인해 불편했던 옛 심경이 상기되었다. 빨리 CD를 다 듣고서 감상문까지 써야할 것 같은 강박감에, 주신 분께는 미안하지만 눈에 안 띄는 곳에 그걸 슬쩍 치워둘 수밖에 없었다. 

훗날 모차르트 전집이 다시 생각난 건 <쇼생크 탈출>이란 영화를 뒤늦게 보면서였다. 쇼생크 교도소의 죄수 ‘앤디’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피가로의 결혼(K.492)> 음반을 발견하고 그걸 허름한 스피커를 통해 감옥 곳곳에 다 들리도록 크게 틀어놓는 장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잊지 못할 명장면이다. 오페라 속 백작부인과 시녀가 부르는 여성 이중창, ‘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가 교도소 마당에 울려 퍼지고 앤디의 감방 동료 ‘레드’ 즉 배우 모건 프리먼의 나지막한 독백이 흐른다.

“아직도 난 그 이탈리아 여자 둘이서 무엇을 노래했는지 모른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다. 어떤 것들은 굳이 설명을 안 하는 게 제일 나은 법. 너무 아름다워서 말로 표현될 수 없는 어떤 것을,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이 아픈 어떤 것을 노래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 중략 – 그 짧은 시간 동안 쇼생크의 모든 사람들은 자유를 느꼈다.”

가사를 몰라도 감동적이었던 그 노래를 수없이 다시 듣던 그때가 개인적으로는 모차르트에 정식으로 입문하던 시간이었다. ‘전집’의 부담 따윌랑 일거에 떨쳐버리게 하는 ‘너무 아름다운 자유’를 모차르트의 아리아에서 체험하게 되자 바야흐로 모차르트 전집은 먼지를 털어내고 병원 내 방의 당당한 일원이 되었다. 디지털 음원 시대에, 구식 CD 플레이어를 즉시 새로 구입한 이후 지금까지 그걸로 오로지 모차르트 전집만을 재생하고 있다. 천재 작곡가에게는 불경스럽지만 170장 CD 커버마다에 내 나름대로의 별점을 매기면서 말이다.

모차르트 음악에의 관심은, 35년 일생 중 10년 이상을 유럽 순회공연에 나섰던 이 ‘아이돌’ 스타의 피곤했을 삶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그의 편지를 엮은 책이나 전기들을 열심히 읽게 되었고 난 점점 모차르트 팬이 되어 갔다. 그가 사망한 뒤 71년이 지난 1862년 루트비히 쾨헬은 모차르트의 모든 작품 목록을 정리하여 연대순으로 번호를 붙였는데 이게 그 유명한 ‘쾨헬 번호(K. 혹은 KV)’다. 간단한 숫자만으로 작품을 쉽게 검색하고 서로 소통하며, 작곡 당시 모차르트의 나이까지 짐작할 수 있으니 모차르트 애호가들에겐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작년 말 코로나로 어수선한 시기에 우리 병원은 어렵사리 보건복지부의 의료기관 인증심사를 받았다. 심사기간 중 병원장실을 활짝 개방해서 실무자들의 헤드쿼터로 사용하도록 했다. 물론 그 방의 배경 음악 DJ는 내가 맡았다. 회의 탁자에서 부지런히 수검준비를 하는 실무자들이 당황하지 말고 편안하게 대처하라는 의미로 초반에는 ‘클라리넷 협주곡(K.622)’ 같이 차분한 곡을 틀었다. 심사 둘째 날 흡연구역이 아닌 곳에서 다량의 꽁초가 발견되면서 깐깐한 조사위원들에게 망신을 당했을 때 나는 몹시 마음이 불편했다. 당연히 그날의 모차르트 음악은 하루 종일 ‘레퀴엠(K.626)’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야간 CPR팀 강화해라, 내시경실 오염방지대책 세워라, 임상시험약 철저히 관리해라 등등, 백상아리 같은 조사위원들의 온갖 지적사항이 쏟아졌지만 결국 늠름하게 4년간의 재인증이 확정되던 마지막 날, 내 방에서 흘러나온 음악은 4악장의 ‘알렐루야’가 유명한, ‘환호하라, 기뻐하라(K.165)’였다. 말로는 다 표현 못할 미묘한 인간의 감정을 이토록 섬세하게 드러낼 수 있게 해 준 모차르트에게 감사한다. 개성 강한 구성원들이 모였기에 삐걱거릴 때도 많지만, 잘 어우러져 점점 더 활기차고 유쾌한 병원으로 변해가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의 모차르트를 틀어본다. 마지막 소절 불협화음이 코믹한 K.522, ‘음악적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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