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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수술실 CCTV 법제화는 근본적 해결책 아냐"
의료계 "수술실 CCTV 법제화는 근본적 해결책 아냐"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1.06.18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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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정치권·환자단체 참여 논의 기구서 추진 여부 결정" 제안
시도의사회장협, “법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히 해결 가능”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하기 위한 입법 추진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가 ‘법안 철회’를 촉구하며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의료계는 정부와 정치권, 환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논의 기구’를 구성해 충분히 논의한 뒤 정책 추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7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최근 불거진 대리수술 사건에 대해 깊은 사과와 함께 “수술실 내 CCTV 설치·운영만으로 대리 수술 및 의료사고 증거 보존 등의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의료계는 수술실 CCTV 설치가 의무화될 경우, 의료진이 '상시 감시 상태'에 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의료진의 집중력 저해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의료진에게 과도한 긴장을 유발해 의료행위의 질적 저하를 가져오는 역설적인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의협의 진단이다. 게다가 긴급 상황 발생 시 대처가 미흡하거나 최선의 진료를 방해해 최적의 수술 환경 조성이 불가능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의협은 "능동적·적극적이어야 할 수술이 의료진의 방어적·소극적으로 대처로 이어져 환자에게 심각한 위협을 끼칠 수 있고, 결국 환자의 건강권이 침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의료진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고 수술실을 잠재적 범죄 장소로 취급하는 것으로, 이는 환자에 대한 인권침해는 물론 같이 일하는 간호사 등 의료진의 인권침해와도 연결돼 결과적으로는 의료인과 환자 간의 신뢰관계 구축을 저해할 것”이라는 꼬집었다. 

특히, "당초 환자에게 예상 가능한 합병증·부작용이 발생한 경우나 정상적인 치료에 대해서도 불만족이 발생할 때마다 의료인의 과실을 입증하려는 의도로 촬영 자료 열람을 요청하는 것은 빈번한 의료분쟁 확대를 불러올 것"이라며 "이는 의료분쟁을 부추기는 역효과를 초래해 불신의 골만 깊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의협은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 대해 "의사의 환자 비밀 유지 의무와 환자의 개인 의료정보의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를 정면으로 침해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내놨다. 

이들은 “수술실은 환자의 환부, 나체와 같은 극히 민감한 사생활 영역이 의료행위를 위해 외부에 노출되는 장소이자, 개인의 사생활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실제 수술 진행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감추고 싶은 남녀 환자의 민감한 신체 부위가 빈번히 노출되는 장소인 만큼, 수술실에 CCTV가 설치·운영될 경우, 네트워크 전문가가 전무한 의료기관의 보안 취약성을 노린 악성 해커들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어 "N번방 같은 비밀 채팅방과 음란물 공유 사이트에 환자 신체의 일부가 노출된 수술 영상이 돌아다닐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면서 "영상 유출 우려에 따른 환자의 불안감 가중은 물론, 환자 본인의 사회적 명성이나 사생활 등에 심각한 침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수술실 내 CCTV 설치‧운영이 의무화될 경우, '외과계열 전공 기피' 현상도 더욱 심화돼 외과계 의사 부족 문제 해결은 더욱 요원하게 될 것이란 우려도 내놨다.

의협은 “수술실 내 CCTV 설치가 대리수술 등 문제를 근절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수술실을 운영하는 모든 의료기관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할 경우 설치에만 수천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세금이 투입될 수밖에 없어 이로 인해 국민들의 막대한 부담으로 다가올 것은 명약관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도 성명서를 내고 “정부와 의료계가 수술실 CCTV 설치·운영시 발생될 수 있는 부작용과 현안에 대해 해결방안을 먼저 찾는 것이 일의 순서”라며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 개정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협의회는 “수술실은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촌각을 다투는 응급 수술부터 예정된 수술 까지 다양한 수술이 이뤄지는 특수한 진료 현장”이라며 “이곳은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엄격하게 출입을 통제하고, 고도로 숙련한 의료진의 팀워크가 필요한 곳으로 수술 집중을 방해하는 어떤 환경도 용납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들은 “의사와 의료진의 기본적인 인권을 무시하고, 직업 수행의 자유를 침해하는 수술실 CCTV 설치가 과연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며 “환자가 최고의 의료를 제공받고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듯이, 이들의 고통과 아픔을 위해 헌신하는 의사와 의료진의 기본적인 인권 또한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무자격자에 의한 대리수술을 예방하고, 의료 사고 시 분쟁 해결의 증거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수술실 입구에 CCTV를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법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며 “법으로 정해야 할 일과 정하면 안 되는 일을 구분해 처리하는 것이 법률 제·개정권을 가진 국회와 정부의 역할”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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