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북한산 12성문을 돌며
[산행기] 북한산 12성문을 돌며
  • 의사신문
  • 승인 2021.06.1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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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5.9. 화창한 봄날에
뿌리신경외과 이창명 (광진구)
이창명 광진구의사회 사업이사(뿌리신경외과의원)
이창명 광진구의사회 사업이사(뿌리신경외과의원)

산행일시: 2021-5-9

산행코스: 북한산성 매표소-대서문-의상봉-가사당암문-용출봉-용혈봉-증취봉-부왕동암문-나월봉(우회)-나한봉-청수동암문-문수봉-대남문-대성문-보국문-대동문-동장대-용암문-위문-북문-원효봉-서암문(시구문)-북한산성 매표소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을 2년째 맞이하고 있는 상황에서, 계절의 여왕 5월을 맞아 화창한 봄날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켜가며 북한산 12성문 종주를 진행하였다. 코로나-19로 인해 그동안 당연시 여겼던 생활방식에 많은 변화가 왔고, 이로 인해 자연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북한산성 성문은 일반적으로 16개로 보는 시각이 맞다고 한다. 12성문에다가 북한산성의 중심위치에 행궁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중성문과 중성문 옆의 시구문, 수문터, 그리고 대서문 옆 계곡쪽의 수문터를 합쳐서 16성문이 된다. 16성문을 다 종주하려면 산행코스가 꼬이게 되어 일반적으로 12성문 종주를 많이 하는 것 같다.

북한산 12성문은 시계 방향 또는 반시계 방향으로 종주를 하게 되는데, 북산산성 매표소에서 대서문을 거쳐 의상봉으로 올라 가사당암문 방향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종주를 하거나, 반대로 시구문을 거쳐 원효봉으로 올라 백운대 위문방향으로 시계방향으로 종주를 하게 된다. 이번 산행에서 우리는 대서문에서 의상봉으로 오르는 반시계 방향으로 종주를 하였다.

북한산성 매표소에서 산행 채비를 하고, 대서문을 지나 몸을 풀 겨를도 없이 의상봉으로 바로 치고 올랐다. 급경사 오르막 암릉이 연이어 나오자, 산행 시작부터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허벅지가 초반부터 뻑뻑해진다. 의상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너무 급경사라, 의상봉으로 바로 오르지 않고, 대개는 국녕사를 거쳐 가사당암문으로 오르는 코스를 많이 이용한다. 가사당암문은 조선 숙종37년(1711년)에 북한산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만든 8개의 암문중 하나로, 현재 백화사가 위치한 의상봉길에서 북한산성으로 오르는 길목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했다고 한다.

의상봉을 지나면 국녕사에서 가사당암문으로 오르는 길과 만나게 되며, 연이어 용출, 용혈봉이 울퉁불퉁한 남성의 골격미를 느끼게 한다.

가상당암문, 용출, 용혈, 증취봉을 지나 편안한 오솔길같은 숲길을 지나면 부왕동암문에 이르게 된다. 부왕동의 의미는 신혈사라는 절에서 고려 현종임금을 구한적이 있다하여, 왕을 도운 계곡이란 뜻으로 부왕동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부왕동암문을 지나 의상능선의 울퉁불퉁한 나월봉, 나한봉 능선을 지나다보면 우측으로 북한산의 비봉능선, 응봉능선이 눈에 들어오고, 좌측으로는 삼각산이라 일컫는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와 더불어 염초봉, 노적봉까지 북한산의 위엄을 장쾌하게 드러낸다.

멋진 경관에 취해 가다보면 나한봉을 지나 청수동암문에 다다른다. 청수동암문은 나한봉과 문수봉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탕춘대성과 비봉에서 성 안쪽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했다고 한다.

청수동암문을 지나 문수봉에 이르면 사방으로 조망이 트이면서 산사나이의 맘을 시원하게 해준다. 문수봉에서 서쪽으로 비봉능선을 바라보면 먼 옛날 신라 진흥왕때 세워진 진흥왕 순수비가 있는 비봉이 오똑하게 눈에 들어온다.

삼국시대 고구려, 신라, 백제가 치열하게 영토싸움을 벌였던 현장이 바로 여기라고 생각하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최초로 백제 개로왕 5년(132년)에 위례성 도읍을 지키는 북방의 성으로 북한산성이 축성되었다고 한다. 이후 근초고왕때 백제의 북진정책에 따라 북정군의 중심요새가 되었고, 장수왕의 남진정책, 이에 따른 나제동맹, 이후 나제동맹의 와해 등의 역사적인 상황을 거치면서 이곳은 삼국의 치열한 분쟁지역이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북한산은 천해의 요새이자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일 수밖에 없는 지리적, 지형적 특성을 띠고 있다고 생각된다. 한마디로 진산인 것이다.

문수봉은 비봉능선과 의상능선이 만나는 분기점으로 여기부터는 대남문 방향으로 산성주능선을 타게된다. 산행 초반부터 의상, 용출, 용혈, 증취, 나월, 나한봉으로 이루어진 의상능선을 탔더니 허벅지도 뻐근하고 체력소비도 상당하여 우리는 대남문에서 조금 일찍 점심을 먹기로 했다. 대남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하고 대성문으로 향했다.

대남문에서 대성문, 보국문, 대동문, 용암문까지는 산성주능선을 따라 햇볕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군데군데 서울시 서북부 지역을 조망하면서 걸을 수 있다. 대남문, 대성문, 대동문은 12성문 중 산성 능선상의 대표적인 성문이고, 보국문은 초기에는 동암문으로 명명되었으나, 이후 보국사가 창건되면서 현재까지 보국문으로 불리고 있다.

보국문을 조금 지나면 아주 멋진 조망터가 한곳이 나오는데, 그 바위 위에 올라서면 동북쪽으로 백운대, 동쪽으로 수락산, 불암산, 남쪽으로는 멀리 검단산, 남한산성, 청계산, 관악산, 서쪽으로는 멀리 인천 계양산과 서해바다까지 아주 멋진 조망을 감상할 수 있다. 잠시 휴식 겸 멋진 조망 감상을 하고, 대동문을 향했다.

대동문은 초기에는 소동문으로 불리워졌다고 한다. 주위에 터가 넓어서 많은 사람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동문을 지나 동장대에 다다르면 지나온 의상능선, 산성주능선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장대에 이어 용암문을 지나고 위문(백운봉암문)에 이르는 동안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대와 인수봉, 만경대, 노적봉을 바라보면서 걷노라면 산객의 입을 쩍 벌어지게 하는 풍광들이 연신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북한산 사령부라 불리우는 삼각산 세 봉우리를 보며 경치에 취해 가다보면 위문(백운봉암문)에 다다른다. 우리는 12성문 종주에 의미를 두었기 때문에 이번 산행에서는 백운대 정상은 오르지 않기로 하고 위문에서 원효봉 북문을 향하여 무릎이 고달픈 돌계단 내리막길을 나선다. 12성문 중 단 2개만 남겨놓은 산객에게, 위문에서 북한산성 매표소로의 지리한 내리막길은 잠시나마 산객을 시험대에 들게한다. 그냥 편하게 원효봉을 패싱하고 북문과 서암문은 담에 들러고 싶어지게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애초 산행계획을 세울 때 12성문 종주를 하기로 한만큼 비록 힘이 들지라도 처음에 계획한 대로 종주하기로 했다. 그런데 원효봉 정상에 오른 순간, 정말 원효봉을 포기 않고 오기를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북문은 현재 문루는 남아있지 않고 초석만 남아있는 상태다.

원효봉 정상에서 바라본 백운대 북벽의 위엄은 과히 북한산 사령부의 사령관 느낌 그대로이다. 주위에 거느린 염초봉, 만경대, 노적봉과 어우러진 백운대의 위용은 북한산의 최고봉답다. 이런 진산이 천만 수도 서울에 있다는 건, 축복이다. 백운봉암문에서 고달픈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오느라 고생한 무릎의 통증이 원효봉에 오르는 순간 씻은 듯이 날아갔다. 우리가 걸어온 의상능선, 산성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니 힘들었지만 가슴 뿌듯한 산객의 감회가 남다르다.

그렇다!. 이 맛에 산에 오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주변조망에 취해 있다가 원효봉을 뒤로하고, 마지막 남은 서암문(시구문)을 향해 하산하였다.

서암문은 숙종 37년(1711년) 북한산성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8개의 암문중 하나이다. 암문은 주로 적의 공격이 예상되는 취약한 지점에 설치하였다 하며,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로 이용되었다 한다. 특히 서암문은 성내에서 생긴 시신을 내보내는 문이라 해, 시구문이라고도 불렀다한다.

이렇게 대서문에서 출발하여 서암문까지 북한산성 12성문 종주를 하면서 북한산성의 역사적 의미와 지리적 특성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북한산성 복원사업이 제대로 완성되어, 우리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있는 북한산성이 후대에 제대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아울러 이번 산행을 함께 해주신 서울시의사산악회 회장님, 임원진 및 회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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