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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에겐 소통의 회복이 필요하다.
[기고] 우리에겐 소통의 회복이 필요하다.
  • 아주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R4 조용혁
  • 승인 2021.06.02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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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월이 저물어 간다. 이제 곧 6월이고, 2021년도 벌써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시점이다. 4년차는 조금은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하루하루 닥쳐오는 일들을 허겁지겁 해 나가며 살고 있다. 5월부터는 전공의 수련실태 조사 준비를 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전공의 수첩을 기록하고 있다. 두툼한 전공의 수첩과 빼곡히 적어 넣은 기록들을 보니 스스로에게 '열심히 수련 받았다'라고 칭찬을 해주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괜히 전공의 수첩에 적지 못한 땀 내 가득한 나의 삶들이 아쉽다. 한 명의 수련의 신분의 초보 의사지만, 누군가에겐 '치료자'라고 불리우기에, 부족한 경험과 지식을 시간으로 채울 수 밖에 없어 번번히 밤을 샜던 날들이 생각난다. 막연한 연구자에 대한 동경으로 시작한 대학원으로 가뜩이나 바쁜 전공의의 삶에 연구까지 하며 지도교수님, 통계실 연구원 분들에게 늘 죄송한 마음이었던 날들도 생각난다. 그리고 전공의 맞벌이 부부로, 딸 아이의 아빠로, 양가 부모님의 아들이자 사위로 어떻게든 살아내려 발버둥쳤지만, 체력이 되지 않아, 마음의 여유가 없어, 결국 불안이 삶의 원동력인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기에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은 그 속상한 마음들이 생각난다.

그래도 매일이 전쟁 같았던 수련 과정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속상함 보단 뿌듯함이, 아쉬움보단 감사함에 미소 지을 수 있기에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애초에 이러한 삶을 적는 수첩이 아닌 것은 알지만, 부단히 애썼던 나의 삶을 무척이나 단조롭고 한정적으로만 적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전공의 수첩을 한 장 한 장 들춰보다 보니 불안, 우울, 환청, 망상, 자해, 자살 등이 가득한 기록들이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A씨의 우울과 B씨의 환청, 알고 나니 더 이상 기괴하게 들리지 않았던 C씨의 망상이 다시금 상기된다. 영혼의 신음을 토했던 그들, 그들을 지켜보며 애를 태울 수 밖에 없었던 보호자들은 잘 지내고 계시는지...

그러다, D씨의 기록에 시선이 머문다. 가정폭력으로 10대, 20대를 보냈던 그가 증오했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아버지를 향했던 분노는 갈 곳 잃었다. 그의 마음에선 아무것도 해결이 되지도, 정리가 되지도 않았는데 아버지의 죽음은 너무도 갑작스러웠고 그에겐 잔인하기까지 했다. 갈 곳 잃은 분노는 어디든 실컷 뿜어낼 곳을 찾아 헤맸고, 마음씨가 고왔던 그는 결국 그 방향을 자신에게 돌렸었다. 입원 치료뿐 아니라 개인 면담까지 했던 환자이나 더 이상 병원에 방문을 하지 않고 있어 잘 지내고 계신지 알 수는 없다. 행복하게 사시길 소망 해본다.

그러다 쉴 새 없이 이어진 기록이 뚝 하고 끊긴 2020년 8월이 눈에 들어온다. 비록 전공의 수첩에는 공백으로 기록될 기간이지만, 그 어떤 전공의 기간보다 더욱 치열했고 뜨거웠던 그 기간이 떠오른다. 당직 후 눈을 비비며 여의도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던 기억, 인터넷상의 기사 내용 하나, SNS의 댓글 하나에도 울고 웃던 기억들, 평소엔 이름만 어렴풋이 알고 지내던 선후배 전공의들과 함께 의견을 공유하고 목소리 높여 외쳤던 그 날들이 기억난다. 비장한 마음으로 동료 전공의들이 벗어놓은 가운을 옮겼던 일들, 걱정 말고 다녀오라며 응원을 해주시던 스승님들을 뒤로하고 피켓을 들었던 날들, 평소엔 무미건조한 의학 이야기를 주고 받았던 선후배들과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마음을 공감하고 위로해 주던 그 시기가 기억난다. 참 뜨거웠다. 하지만 이 때를 기억하면 늘 마음 한구석이 아리다.

우린 여전히 뜨거운데,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는데, 쏟아 내지 못한,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이 산더미 같은데 너무도 갑작스럽게 끝이 났다. 그리고 우리의 하나됨의 상실에 대한 충분한 애도의 기간도 없이, 우리는 마치 패잔병처럼, 그렇게 한 명의 전공의로 다시 수련의 현장으로 복귀를 했다. 갈 곳을 잃은 뜨거움은 무척이나 파괴적이었다. 이 정제되지 않았고 다듬어지지 않았던 뜨거움은 분노가 되어 무력한 자신을 향했고, 무책임한 서로를 향했으며, 신뢰가 깨어진 국민을 향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철저히 차가워진 마음이다. 개인과 집단에 대한 무력감, 국민과 정부를 향한 냉소적인 마음은 수련현장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짙은 패배의식에 ‘소의치병(小醫治病), 중의치인(中醫治人), 대의치국(大醫治國)’을 외치던 젊은 의사들의 입가엔 '역시 바이탈과는 하면 안되었다'라는 자조 섞인 쓴웃음만 남았다. 신입 전공의를 한 명도 뽑지 못한 바이탈과의 의국엔 한숨이 가득하다. 신뢰가 생명인 직업에서 온갖 언론의 호도에 국민과의 신뢰가 산산이 깨어져버리니 남는 것은 더욱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진료 행태이다. 무력감과 패배의식, 우울과 불안, 그리고 서슬퍼런 분노만이 남은 마음을 돌아보니 비교할 것은 못되겠지만, 이제는 D씨의 마음에 조금은 더 공명(共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괜히 전공의 수련을 잘 받고 있는지, 나는 어떤 수련을 받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질문을 해본다. 과연 빼곡히 무언가를 적어 놓은 저 전공의 수첩이 나의 수련기간이 성공적이었노라고, 한 명의 전문의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대변을 해줄 수 있을까? 문득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볼멘 소리가 생각난다. "너는 정말 재미있고 인간적인 친구였는데, 전공의 수련을 받으면서 재미도 없어지고 종종은 너무 뜨겁고, 종종은 너무 차가워졌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수련을 받았는데, 더욱이 정신과 수련을 받았는데, 재미도 없어지고, 너무 뜨겁거나 차가워졌다니 말이다. 나는 치열하게 보냈던 나의 수련 기간 동안 무엇을 놓치고 있었을까? 나는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놓쳤길래, 재미가 없어지고, 너무 뜨겁거나 차가우며, 공부나 할 줄 알았던 고기능 자폐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을까?

개인적으로 작년 8월을 생각해 볼 때, 소통을 해야 할 때, 소통하지 못했던 우리의 부족한 소통 능력이 아쉽기만 하다. 여러 정의가 있겠지만, 나는 의사란 의학지식을 통해 환자의 삶에 개입하고 소통함으로써 전혀 상관이 없었던 서로가 공명하는 직업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직업적 특성상 필연적으로 매일의 삶에서 누군가를 만난다. 환자뿐 아니라, 보호자, 간호사를 비롯한 여러 의료 종사자들, 때에 따라선 정치인이나 사회단체에 속한 사람 등 우리의 삶은 누군가와의 만남이 연속된 삶이다.

하지만, 나는 그리고 우리는 수 많은 만남들에 있어 얼마나 소통했을까? 누군가의 삶에 개입을 하려면, 그들 또한 내 삶에 내가 개입한 만큼 개입을 하게 됨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감정 소모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하얀 가운에 실려있는 권위로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들을 스스로 박탈시키진 않았을까?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겨우겨우 하루를 보낼 수 있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상황에서 후천적인 고기능 자폐 전공의, 의사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소통이 필연이고, 특기여야 할 의사에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시급히 필요한 것은 소통의 회복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수련 과정에서 또한 한 명의 전문의로서 성장을 해나가는 수련 기간 동안 얼마나 많고 다양한 환자를 보았으냐, 얼마나 성실히 학술 활동에 참여했느냐도 중요하겠지만, 얼마나 나 스스로와, 동료, 스승과 소통했느냐, 그리고 내 앞의 환자와 보호자들과 어떤 소통을 했느냐를 주목하는 수련으로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치료자로서 환자와의 치료적 관계는 어떻게 맺어야 할 지, 어떻게 치료적 경계를 유지하여 환자의 회복의 주인 됨을 침해하지 않을 수 있는지, 어떻게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지, 어떻게 하면 의료현장에서 그들의 마음과 공명할 수 있을 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이것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을 지, 이것에 대해 스승과 동료들에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을 지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부터라도 동료, 그리고 스승과 질병에 대한 논의만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나누고 환자와 소통한 경험을 주고 받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소통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환자와 보호자뿐 아니라 국민과 소통하고 그들과 함께 공명하는 신뢰의 자리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의료계와의 소통 또한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작년 8월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렇게 많은 의료계 내의 단체들이 있는지, 이렇게 복잡한 이해 관계로 얽혀있는지 알지 못했다. 크고 작은 회의에 참가하기 전까지 기본적인 회무나 안건의 처리 과정이 어떠한 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힘이 부치는 한 명의 전공의였을 뿐이다. 하지만 삶이 바쁘다고, 개인의 삶 가운데 누려야 할 것이 많다고, 보드만 따면 된다는 소시민적인 생각이 전공의를 의료 사회에서 당당한 피교육생에서 수동적인 피고용인으로 전락시켰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사회에선 전공의의 코로나 관련 업무 차출이나 PA 제도와 관련된 사안들이 기사화 되고 있지만, 오히려 논의와 고민은 커녕 관심조차 가지지 못하는, 가지고 싶어하지 않는 주변의 동료들을 볼 때, 속상한 마음뿐 아니라 위기감마저 든다. 과연 우리는 전공의로서 함께 공유하고 있는 거대 담론이 있을까? 얼마 후 더욱 치열한 사회로 나갈 텐데,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눈 앞의 손해 외에 우리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어떠한 정신을 공유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나의 전공의 수련 기간 중 2020년 8월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지금은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이 아리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 날이 없었다면 알지 못했을, 잊고 살았을 것들과 마주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언제까지나 패배의식과 자조적인 마음에 머무를 수는 없다. 의사의 의사됨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소통의 회복에 힘써야 한다. 그리고 이 회복은 젊은 의사에게 한정된 회복이 아닌 의료계, 그리고 우리 사회의 회복이길 소망한다. 스승과 제자가 질병, 연구, 보험제도 뿐만 아니라 환자와 소통했던 소중한 경험을 아낌없이 나누기를, 전공의들에게 지역의사회나 의료계의 여러 단체들에 대해 알고 경험 할 수 있는 기회들을 누리길, 마지막으로 전공의가 적극적으로 의료계의 크고 작은 사안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수련제도 내의 개선과 환경이 마련되길 소망한다.

우리의 소통이 회복될 때, 우리의 차가운 계절, 재뿐인 가슴에는 다시금 소의치병, 중의치인, 대의치국의 꿈을 꽃 피우는 봄이 오지 않을까 소망하며 못내 아쉬웠던 전공의 수첩의 빈 장을 이 곳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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