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증편향과 불신지옥
확증편향과 불신지옥
  • 전성훈
  • 승인 2021.06.0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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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22)
전성훈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믿는다. 하지만 확인한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어디서 들어본 듯도 하지만,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말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믿는데 왜 확인하는가. 그리고 확인하면서 왜 믿는다고 하는가. 결국 이 말은, ‘널 불신한다’는 말의 껄끄러움을 역설적으로 감싼 ‘하얀 거짓말’일 뿐이다.

‘타진요’ 사건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인기 연예인인 타블로는 스탠퍼드 영문학과에 입학해 3년 반만에 코터미널 과정으로 학석사를 동시에 취득했다고 데뷔 초기부터 밝혀 왔다. 그런데 연예인과 유명인사의 학력위조 사실이 연이어 터지던 시기, 한 네티즌이 ‘스탠퍼드 대학교 홈페이지에서 검색했는데 타블로의 본명이 없다’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타블로는 별달리 대응하지 않다가 그 네티즌의 발언이 도를 넘자 그 네티즌을 고소했다. 그러자 의혹 제기에 동조하는 일부 네티즌들이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모임(타진요)’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반발하기 시작했고, 사건은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아마 타블로가 졸업한 학교가 ‘그냥 그런’ 학교였다면 사건이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일부 네티즌들의 인식으로는 첫째 그 학교는 ‘너무 좋은’ 학교였고, 둘째 그는 연예인이었고, 셋째 통상 6년 걸리는 과정을 3년 반만에 마쳤다는 것이 이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캐나다 국적의 군미필자였고.

타블로측이 의혹에 대해 소명하는 과정에서 ① 미국 NSC가 발급한 학력인증서, ② 스탠퍼드 대학교 교무과가 발급한 성적증명서, ③ 스탠퍼드 대학교 지도교수가 작성한 확인서 등, 일반 소송이라면 하나만 나와도 판사가 ‘이제 재판 끝냅시다’라고 말할 만한 자료들이 계속 공개되었다. 하지만 타진요측은 위 서류들의 진정성립 자체는 인정하면서도(사실 이는 부인할 수 없다), ‘졸업장의 입학연도가 맞지 않는다’, ‘성적증명서의 씰(seal) 모양이 다르다’, ‘졸업 논문이 없다’, ‘확인서의 지도교수 서명은 위조된 것이다’라는 등의 의혹을 계속 제기했다.

이 길고 흥미롭다가 지리해진 논란은 2년 후 법원의 판결과 함께 일단락되었다. 재판부는 ‘대중은 관심의 대상인 연예인에 대해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연예인은 어느 정도 이를 감수해야 하지만, 피고인은 단순한 의견제시나 비판을 넘어 악의적·지속적으로 타블로와 그의 가족을 비방했다’, ‘객관적 증거가 나왔는데도 증거도 위조됐다고 주장하면서 아무런 사과와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고 피고인들을 질타했다. 그리고 재판부는 기소된 타진요 회원 8명에게 징역형을 선고하고 그 중 2명을 법정구속했다.

최근 한강공원에서 친구와 함께 술을 먹다가 불행히 유명을 달리한 의대생에 관한 논란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사건의 내용이 이례적인 데다가, 클릭수에 민감하고 받아쓰기에 능한 우리 언론의 속성 덕분에, 매일 수십 건씩 발생하는 여느 변사 사건과 달리 전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다. 의대생의 사망 과정에 동석한 친구가 개입했음을 강하게 의심하는 일부 네티즌들은 ‘반진사(반포한강공원 진실을 찾는 사람들)’라는 인터넷 카페를 만들고 수사기관 앞에서 집회까지 가졌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에서는 특이사항이 발견되지 않았고, 경찰은 조사 끝에 ‘특별한 범죄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발표했다. 여러 범죄심리학자들도 ‘타살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라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젊은 대학생의 갑작스런 죽음이 왜 안타깝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 확인되기 전에 무책임한 의혹을 퍼뜨리거나, 사실이 확인되자 무언가 사소한 불일치를 찾아내어 또 다시 무책임한 의혹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친구측 가족이 경찰 고위층에 아는 사람이 있다’, ‘친구측이 전문가들을 매수했기에 그런 의견을 밝힌 것이다’ 같은 것은 가짜뉴스 축에 끼지도 못한다.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은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을 말한다. 과거에 일어난 일을 사후에 조각조각 맞춰보면 일부는 내용이 부족하거나 서로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이는 어떤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지, 추후에 그 일의 경과를 제3자에게 설명하는 것이 행위 당시의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신이라는 확증편향에 갇히게 되면 그 사소한 간극은 바다 같이 넓게 보인다.

타진요 사건 당시 어떤 평론가는 ‘우리 사회에는 권위 있는 것들에 대한 총체적 불신이 있다’고 일갈했다. 아마도 자존심 강한 국민들 위에 정통성 없는 정부가 군림했던 역사적 경험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진정한 민주국가를 이룩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수사기관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은 접어둘 때가 되지 않았을까. 확증편향적 불신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일부 사람들 때문에 우리 사회가 불신 해소를 위해 써야 할 노력과 비용이 너무나 크다.

의료계로 고개를 돌려보면, 모든 수술 장면을 CCTV로 촬영하자는 기상천외한 법안이 계속 발의되고 있다. 혹자는 의사들이 대리수술을 못하게 되니 돈 때문에 반대한다고, 혹자는 의료사고 발생시 의료과실 증명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리수술 때문에 필요하다는 사람은 대리수술과 관련 없는 과들에서도 예외 없이 반대하는 이유에, 의료사고 때문에 필요하다는 사람은 1년간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약 200만 건의 수술 중 의료과실이 문제되어 소송이 제기되는 것은 약 800건(추정), 즉 0.04%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애써 눈감는다. 아무리 설득해도 움직이지 않는 불신의 확증편향의 전형적인 예이다.

‘사우론의 눈’ 같은 CCTV 렌즈 아래에서 본능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방어진료로 인해 더 많은 환자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의사들의 호소는, ‘믿는다. 하지만 확인한다’고 외치는 의료계의 ‘타진요’ 앞에서 난로 위의 눈송이 같다. 서로 못 믿겠다면서 서로의 발목을 잡고 모래구덩이 아래로 끌어내리는 개미지옥 같은 불신지옥을,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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