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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의 일탈, 행정편의적" VS "더이상 감시 못미뤄"
"0.001%의 일탈, 행정편의적" VS "더이상 감시 못미뤄"
  • 박승민 기자
  • 승인 2021.05.26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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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복지위, 국회서 수술실 CCTV 설치법안 관련 공청회 개최
의료계 "자정 노력" 주장에 환자단체 "수술실 내부에 설치해야"
26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공청회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을 놓고 환자단체와 의료계가 다시금 국회에서 격돌했다. 의료계는 CCTV 설치 문제는 법적으로 강제할 것이 아니라, 자정적인 노력을 통해 의사와 환자간의 신뢰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환자 단체는 의료범죄 척결을 위해선 어쩔수 없이 수술실을 감시해야 할 단계라고 주장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6일 오전 10시 ‘수술실 영상정보처리기기 설치 관련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공청회를 국회 본청에서 개최했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은 지난 2013년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이래 8년이 지나도록 지지부진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처음 발의됐을 당시엔 수술실에서 폭행 당하는 ‘의료진 보호’에 초점이 맞춰졌다가 지난 2014년 가수 신해철씨가 수술 도중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환자 보호’로 관심이 옮겨가게 됐다. 특히 최근엔 인천의 한 전문병원에서 행정직원이 수술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언론 보도가 나와 논란이 확산됐다. 

현재 보건복지위 법안소위에는 지난해 김남국, 안규백, 신현영 등 여당 의원들이 지난해 발의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를 담은 의료법 개정안 3건이 계류돼 있다. 이날 공청회는 법안 처리에 앞서 의료계를 비롯한 각계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마련됐다. 

◆의료계 “CCTV 설치 능사 아냐···노력할 기회달라”

이날 공청회에서 의료계는 수술실 CCTV 설치의 단초를 의사들이 제공했다는 사실에 책임감을 느낀다면서도 수술실 CCTV 설치로 얻을 득실을 고려할 때 득이 많다는 데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신뢰 회복을 위한 기회를 달라고 말했다. 

김종민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

김종민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는 “연간 수술 건수는 170만에서 200만건 사이지만 지난 2013년부터 2018년 8월까지 총 68개월 동안 대리수술 적발 건수는 총 112건으로, 이는 (전체의) 0.001%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극히 드물게 일어나는 사례를 일반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김 이사는 “수술실 내 CCTV 설치에 가장 중요한 논점은 환자 신체 노출에 대한 인권침해 부분”이라며 “CCTV 설치에 대한 화제성 때문에 영상 보안에 대한 문제점과 영상노출에 대한 대책 등은 지금까지 세밀히 진행되지 않았다. 민감한 자료가 한 건이라도 노출되면 한 개인의 인권은 심각하게 침해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주형 대한병원협회 회원협력위원장(경희대학교병원 병원장)은 수술실 CCTV 설치로 인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 발생을 우려했다.

오주형 대한병원협회 회원협력위원장

오 위원장은 “경희대병원의 경우 코로나 역학조사에 대비해 직원식당 안에 동선 확인 목적만으로 CCTV 21대를 설치해야 했다. (이런 식이면) 대학병원엔 과연 몇 대를 설치해야 하냐”며 “단순히 1대 설치로 목적을 이룬다는 것은 현장을 모르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어 “수술 전체과정에 대해 일거수일투족을 CCTV로 감시 당한다면 아마도 심리적 위축으로 (의사가) 사고 위험성이 높은 수술을 거부하거나 또는 환자에게 다른 방식으로의 진료를 유도할 가능성이 생길 것”이라며 “수술실 내부에는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들 외에도 마취과 의사, 간호사와 이들을 포함한 많은 인력이 근무하고 있어 부정 의료행위나 성범죄 발생이 어렵고, 설사 발생하더라도 이를 숨기거나 비밀로 묻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의료계는 다른 대안에 대한 제도적인 개선 노력 없이, 수술실 내에 CCTV 한 대만 설치하면 의료 불법행위를 막을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은 ‘행정편의주의’라고 지적하며, 자체적으로 대리·유령 수술 근절을 위한 확실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종민 이사는 의협이 추진 중인 구체적인 방안들로 △면허관리기능 강화를 위한 의사면허관리원 추진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 운영 △기존 수술실 출입관리 규정 보안 및 강화 △회원 기관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 감독 및 적발시 처벌강화 △공익제보 독려 및 제보자 보호 강화 등을 소개했다. 

◆환자단체 “환자 안전 지키는 ‘최소한’의 조치”

자정 노력을 통한 해결을 강조한 의료계에 맞서 환자단체 등은 이제는 더 이상 수술실 CCTV 설치를 미룰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이날 수술실의 특성인 ‘은폐성’을 언급하며 “수술실에서의 환자 안전과 인권 보호를 위해서는 수술실 CCTV 법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CCTV는 수술 실 ‘입구’가 아닌 ‘내부’에 의무적으로 설치·촬영되어야 하고, 환자의 동의나 요구 외에 의료인 동의까지 받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원칙”이라며 “수술실 내 모든 범죄행위와 인권 침해를 100% 예방하거나 사후 증거로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술실 내 환자의 안전과 인권을 지키는 최소한의 조치”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또 “의료기관의 수술실 입구에는 CCTV가 60.8%나 설치되어 있고, 응급실에는 CCTV가 100% 설치되어 있지만 환자나 보호자 또한 환자 및 의료인의 안전과 범죄 예방을 위해 수용하고 있다”며 “응급실에서의 CCTV 설치는 허용되지만 수술실에는 안 된다는 논리는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대리수술’의 피해자 (故) 권대희씨의 어머니인 이나금 환자권익연구소장도 이날 공청회에서 공동체의 신뢰를 스스로 훼손한 의료범죄자를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의 필요성에 대해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 소장은 “형법상 상해, 중상해, 살인미수, 살인죄로 처벌되어야하는 의료범죄가 방치되다보니 한국의 수술실 상황이 야만적으로 지속되고 오늘날 수술실 CCTV 설치 논쟁으로까지 이어졌다”며 “의료범죄를 척결하기 위해 어쩔수없이 공동체 구성원들이 수술실을 감시해야 할 단계가 됐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 후 이어진 국회 복지위원들의 질의응답에서는 대다수의 의원들이 국민들이 의료계에 가지고 있는 불신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면서도 올바른 진료를 하고 있는 의사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무소속 전봉민 의원은 “의료인들은 환자들에게 신뢰를 줘야 하는데 신뢰가 무너진 것이 문제”라며 “CCTV 설치 의무화를 반대하더라도 환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명확한 방법을 제시하면서 반대해야 한다. 일부 소수에 의해 전체가 희생 당하지 않도록 심도 있으면서 형식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야 해결될 듯하다”고 말했다. 

의사 출신인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료행위에 대한 신뢰가 붕괴되어 안타깝다”며 “의료계 일부에서 일어난 비윤리적 행위로 인해 일방적으로 환자가 피해를 보는 수술실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유령·대리 수술 근절에 대한 제도개선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신 의원은 “여전히 존경할만한 의사가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며 “의사가 존중되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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