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19:45 (목)
현재와 과거의 대화
현재와 과거의 대화
  •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 승인 2021.05.31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릉역 2번 출구' 〈17〉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암 진료와 연구에 있어서 미국을 대표하는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MSKCC)와 우리 원자력병원이 매년 서울과 뉴욕을 왔다 갔다 하면서 몇 차례 공동 컨퍼런스를 이어갔던 적이 있다. 이 일의 시작은 국제협력을 담당하는 그곳 부원장님 일행이 먼저 우리 병원을 찾아 양 기관의 파트너십에 대해 논의하면서부터였다. 첫 미팅에서 우리 기관 소개를 내가 맡았는데 그 어떤 학회발표 자리보다 더 긴장됐다. 세계적인 암센터와의 학술교류를 꼭 성사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컸고 그러자면 첫인상이 좋아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다. 

나는 국내 독보적인 암센터로서 우리 기관이 보유한 각종 기록들, 그러니까 최초의 사이클로트론 개발, 최초의 사이버나이프 가동, 최초의 PET-CT 도입 등등 방사선의학 분야 여러 업적들을 자랑스레 보여주었다. 마지막 부분엔 일부러 전날 월드시리즈 야구 최종전에서 아깝게 진 뉴욕 양키즈를 위로하는 슬라이드까지 끼워 넣음으로써 폭소와 함께 큰 박수를 받았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좋아졌기에 우리 쪽에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가운데 곧바로 MSKCC 부원장님의 발표 차례가 이어졌다. 그날 그분의 자기 병원 소개는 지금까지도 기억에 생생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슬라이드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들 얼굴만 등장했다. 한 마디로 ‘MSKCC를 빛낸 분들’의 사진이었다. 시작은 20세기 초반 MSKCC의 원장을 맡아 그곳을 일류 암센터로 도약시킨 ‘유잉 육종(Ewing’s sarcoma)’의 그 병리학자, 제임스 유잉의 얼굴이었다. 발표 중간쯤에는 MSKCC가 라듐을 이용한 암 치료로 명성을 쌓아갈 무렵 그곳을 찾아 공동연구에 합류했던 마리 퀴리의 얼굴이 보였다. 마무리 부분에서는 발암성 레트로바이러스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해럴드 바머스, 당시 MSKCC 원장님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이사이에 의학 교과서에서 봤던 친숙한 이름의 사진들이 무수히 열거되었음은 물론이다.

나는 그때의 인상적인 깨달음을 요즘 우리 병원 전공의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종종 이야기한다. 역사는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사람의 이야기가 곧 역사라고. 그러니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장차 원자력병원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이야길 마치고 나면 대회의실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우리 기관 역대 원장님들의 사진이 다르게 보인다.

오래 전 우리 집 서재에 굴러다니다 요즘은 보이지 않는 책 중에 <속상한 원숭이>란 제목의 수필집이 있다. 글쓴이가 내과 의사라 레지던트 시절에 특히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저자가 1970년대에 원자력병원 2대 원장을 지내신 고(故) 이장규 박사님이란 사실을 상기하게 됐을 땐 이미 집에서 그 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절판된 지 오래라 재구매도 불가능했기에 나는 가끔 대회의실 벽면의 그분 사진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원장님,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그 원숭이가 왜 그리 속이 상했던 거였죠?”하고 묻곤 했다.

그러다 최근 우연히 이장규 원장님의 수필 여덟 편을 발견했다. ‘한국의사수필가협회’란 곳에서 작고하신 선배 의사 다섯 분의 대표작들을 모아 2015년에 펴낸 책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잃어버린 동화의 시절>이란 제목의 수필 선집에서 이장규 원장님의 지혜와 해학이 넘치는 글들을 다시 만났을 때 난 반가움에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정신없이 책장을 넘겼고 같은 글을 읽고 또 읽었다.

“그 노신사는 정부 예산을 주름잡는 주무장관이자 부총리인 T씨. 그의 권유에 따라 차관, 차관보, 국장, 과장까지 모두 건강 진단을 받았다. 그들 건강은 내가 요구하는 연구소 신축을 위한 서류에 도장 하나 찍을 만한 기운은 모두 가지고 있었다. - 중략 - 우리가 요구한 예산은 무참하게 깎여 나갔다. ’돈보따리‘들이 모두 사디스트로 보였다.”

<외상진찰>이란 수필에서 이 원장님이 겪었던 예산확보의 고충은 40년이 훨씬 더 지난 오늘도 똑같이 당하는 일이다. 나는 환자들을 염려하는 그분의 마지막 푸념에 울컥하면서 크게 공감했다. “아, 돈! 그게 도대체 무엇이기에 오늘 또 나는 그 가족들 팔에 매달려 있을 가련한 암 환자들의 모습을 보아야만 하는가.”

<심기불편>이란 글에서는 낚시를 좋아하던 이 원장님이 그토록 월척 낚기를 고대했건만 노상 피라미만 걸리는 바람에 친구인 성심병원장님으로부터 ‘공 박사’ 혹은 ‘허 박사’라 놀림 받는 장면이 나온다. 낚시는 늘 공치면서 허세만 부린다는 뜻이다. 성심병원장님이 월척을 낚아 만든 어탁에 분풀이하듯 ‘심기불편(心氣不便)’이라고 당신이 일필휘지해 버렸다는 에피소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원자력 병원장실에는 어탁이 없다. 참으로 심기불편한 노릇이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 에드워드 카의 명언이 이후로 줄곧 머릿속에 맴돌았던 나는 이장규 원장님의 사진 앞에 수시로 가서 여러 가지를 물었고 그분이 남긴 글을 통해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보려 애썼다. 공공병원의 경영난 타개책,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법, 말기 암 환자들을 대하는 자세 등등 두서없는 질문이었지만 사진 속 그분은 까마득한 40년 후배에게 최선을 다해 따뜻하게 대답해주시려는 것만 같았다.

얼마 전 입원의학과 전문의(hospitalist) 전담 병동 오픈 행사에 참석했을 때 의례적인 인사말 요청을 받았다. 삼행시 짓기를 즐기는 나는 ‘원, 자, 력’의 운을 띄우라고 부탁했다. “원, 원칙에 충실합시다. 자, 자율적으로 일합시다. 력, 그리고 언제나 우리의 ‘역사(歷史)’를 잊지 맙시다.”라고 말했다. 곧 창립 6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병원. 이곳을 발전시켜온 선배와 스승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 것. 이것이 우리 원자력병원 식구들이 가져야 할 역사의식 아닌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