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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비급여’ 신고 의무화, 정부의 '편향된 시각'이 문제다
[기고] '비급여’ 신고 의무화, 정부의 '편향된 시각'이 문제다
  • 오동호 중랑구의사회장
  • 승인 2021.04.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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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호 중랑구의사회장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든 요즘, 영양수액이라도 맞겠다는 환자는 의원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반가운 고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환자들마저 흔쾌히 받아들이기 어려워질 지도 모르겠다. 정부가 사실상 거의 모든 비급여에 대해 신고의무를 부과하면서 사소한 비급여 업무에 대한 행정처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비급여 진료비 공개 대상이 의원급까지 확대되면서 개원의들도 오는 6월1일까지 심평원에 비급여 진료비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특히 올해부터는 공개 대상 항목도 기존 564개에서 616개 항목으로 확대됐다. 병원급 이상에서는 이미 시행 중이라고 하지만, 행정처리를 위해 별도 인력을 둘 수 없는 소규모 의원급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의원급 일차의료기관들도 비급여 진료를 할 경우 환자에게 그 내용을 고지하고 있다. 정부는 환자의 선택권을 위해 자료를 제출하라고 하지만, 이미 환자 입장에서는 본인이 원할 경우 충분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비급여를 바라보는 정부의 편향된 시각이다. 마치 비급여를 통제하고 없애나가야 할, 해악(害惡)이 가득한 제도로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비급여는 의학 발전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환자의 선택권을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의료계와 상생(相生)하기 위해 필수적인 제도라 하겠다.

먼저 비급여는 아직 전국민 건강보험에 적용하기 전에 임상적인 효과를 늘리기 위한 선구적이라 할 수 있는 치료에 적용된다. 이를 적용할지 여부는 환자가 선택한다. 즉, 급여 진료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환자가 기존 진료급여 외에 비급여 적용을 받는 새로운 진료를 먼저 경험하고, 이에 관한 의학 기술이 축적되면 급여로 전환돼 결국 전 국민에게 그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정부가 감당하기 어려운 임상 진료 분야를 일정 부분의 민간의료가 개척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더 많은 이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소비자(환자)의 욕구(더 좋은 치료를 받고 싶다는)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비급여는 시장(市場) 원리를 통해 의료 생태계를 보다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비급여 진료비 신고 의무화 조치는 비급여 진료를 위축시키고 의사들을 방어진료로 이끌 것이 자명하다. 이는 결국 의료 소비자들로부터 새로운 의료기술에 대한 ‘선택권’을 빼앗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환자의 선택권을 보장해준다는 정부의 주장과 정반대 결과를 낳는 셈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 입장에서 굳이 많은 대화가 필요하지 않았던 독재 정권 시절에 만들어진 탓인지, 건보제도는 의료계와 환자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를 수렴하면서 발전하기보다는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운영돼 왔다. 의료계 안팎에서 건정심 개혁에 대한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번번이 외면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이끌어가려 하다 보니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동반자여야 할 의료계를 적으로 돌리고, 온갖 책임을 의료계에 지우려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식의 선악 이분법은 진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정부는 결국엔 실패로 드러날 것이 뻔한 비급여 공개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여선 안 된다. 대신 새로운 의협 집행부와 충분한 논의를 거친 뒤 진정으로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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