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리얼돌, 법원
인간, 리얼돌, 법원
  • 전성훈
  • 승인 2021.04.27 10:10
  • 댓글 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18)
전 성 훈변 호 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성훈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생물은 자기보존 본능이 있다. 식물조차도 생존에 불리한 환경을 피하여 자리잡고 성장한다. 하물며 이동 및 행동이 가능한 동물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자기보존 본능 중 개체적 보존 본능인 식욕과 종족적 보존 본능인 성욕은 동물의 양대 욕구이다.

인간 역시 동물이므로 본능의 지배를 받는다. 인간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식욕을 안정적으로 충족하기 위한 자연과의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식욕이 어느 정도 충족되면, 당연히 성욕의 충족을 추구해 왔다.

하지만 식욕과는 달리 성욕은 상대방이 필요하다. 그리고 식욕 충족의 결과물은 약간의 번거로움을 주는 배설물인 반면, 성욕 충족의 결과물은 엄청난 번거로움을 주는 ‘자식’이다. 그래서 그 결과물이 굳이 필요 없거나 있어서는 안 되는 상황인 경우, 성욕 충족 행위와 그 결과물을 분리하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졌다. 그래서 피임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만큼 오래되었다.

비슷한 수준의 욕구 충족 행위를 반복하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지능이 있는 인간은 반복적 충족에서 더 나아가 더 큰, 더 많은, 더 빈번한 욕구의 충족을 원했다. 성욕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인간은 성욕 충족의 상대방을 구하기 어려운/귀찮은 상황을 자주 겪거나, 그 결과물로 인해 혼쭐이 나는 경험을 한 후, 자연스럽게 상대방 없는 성욕 충족 방법을 고안해 냈다. 바로 ‘성인용품’이다. 그래서 성인용품의 역사 역시 인간의 역사만큼 오래되었다.

오랜 기간 사회를 주도한 것은 남성들이었기에 남성용품이 크게 발달해 왔을 것 같지만, 현대 이전에는 의외로 남성용품은 변변한 것이 없었다. 미혼 남성의 사회적 계급을 기혼 남성의 그것보다 낮게 보아 왔던 점을 고려하면, 이는 남성이 성인용품을 사용하는 것은 ‘가지지 못한 자’로서 수치스러운 상황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인 것 같다. 무엇보다 남성은 신체구조상 특별한 물건이 필요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반면 여성용품은 다양하고,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독일에서는 3만 년 전 구석기시대에 만들어진 여성용품이 발굴되었다. 2,000년 전 클레오파트라는 나무통 안에 집어넣은 벌들의 진동을 이용한 세계 최초의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하기도 했다.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는? 경주 안압지에서는 1,500년 전 신라시대 목각 여성용품이 발굴되었다. 매우 직관적인 이름으로 불린 이 여성용품은, 손때가 많이 타 있는 점을 볼 때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의 착각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도 여성의 성인용품 사용이 그리 심각한 터부가 아니었음은, 조선말까지도 방물장수가 시장에서 버젓이 여성용품을 판매했던 점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현대에 들어 자본주의경제와 대중소비사회가 완성되자 성인용품의 수요와 공급은 모두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따라서 시중에서는 매우 다양한 것들이 제조·판매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이른바 리얼돌이다. 지나친 성의 상품화라는 주장과 신체 일부만 상품화한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데, 이에 대한 반응은 크게 셋 중 하나이다. disgusting / interesting / unconcerne.

법은 리얼돌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이에 관한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이 불과 1개월 전에 내려졌다.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에 대한 법의 판단이니, 이를 통해 성인용품 전반에 대한 법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A는 헬스케어 제품 등의 유통업, 수출입업 등을 영위하는 회사이다. A는 리얼돌을 수입하면서 이를 세관에 신고했는데, 김포공항세관장은 ‘성인용품 통관심사위원회’의 심사 결과에 따라 ‘이 사건 물품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방법에 의하여 성적 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 또는 묘사한 것으로 성풍속을 해친다’는 사유로 통관보류처분(=수입불허처분)을 내렸다. 이에 A는 소송을 제기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법원은 ‘통관보류처분은 위법하므로 이를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이 설시한 이유를 요약하면 이것이다: ① 법이 규율하는 ‘음란’이란 개인의 내밀한 사적 영역이 아닌 사회나 공중 영역에서의 일탈을 문제 삼는 것이다. ② 이 사건 물품이 사회나 공중 영역에서 사용된다면, 그 사용 공간, 환경, 용도에 따라 음란성이 문제될 수 있고, 그 경우 개별 법령에 따라 형사처벌이나 행정제재 등을 가할 수 있다. ③ 이 사건 물품이 사적 영역에서 성기구로 사용된다면, 개인의 내밀한 사적 공간에서 개인적 욕구 충족이라는 지극히 개인적 활동에 이용되는 것이다. ④ 관련 법령은 성기구를 그 자체로 곧바로 음란물이라고 보고 있지 않으며, 청소년 내지 학생의 보호 등을 위하여 제한된 영역에서 규제를 할 뿐이고, 사적 영역에서 성인에 대하여는 규제하지 않는다. ⑤ 따라서 이 사건 물품이 어떻게 사용될지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그 형상만을 기준으로 성풍속을 해친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한 줄로 요약하면, 어른이 혼자 성인용품 쓰겠다는 걸 왜 막느냐는 것이다.
 
1993년 개봉한 영화 ‘데몰리션맨’은 머리에 ‘Teledildonics’라는 기구를 착용하고 ‘보건위생상’ 이유로 ‘체액교환’ 없는 성관계를 맺는 것이 보편화된 미래를 그리고 있다. 또한 영화 ‘AI’나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VR 기술을 이용한 가상성관계상품을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상상들은 이미 현실화되어 있다. 더 나아가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는 인공지능 홀로그램 제품인 여성 조이가 리플리컨트 남성 케이를 사랑하게 된다. ‘AI’가 자의식을 갖추고 ‘복제인간’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성인용품이나 인간관계에 관한 위와 같은 인간의 상상들이 제지되어야 하는지 또는 장려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은 모두 다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들의 인식은 변해가고 있고, 법은 이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은 사람들의 상식 위에 떠 있는 배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리얼돌에 관한 위 판결을 보면, 우리는 ‘거대한 위선의 시대’의 마지막 자락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4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ㅁㅇㄴㄻㄴ 2021-04-28 19:54:05
캬 명문에 무릎을 탁치고 갑니다.

어피치 2021-04-27 18:35:40
공감합니다~

어퓨굿맨 2021-04-27 14:53:51
멋진글이예요~

이성규 2021-04-27 10:42:58
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