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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을 대신 따주는 사람
하늘의 별을 대신 따주는 사람
  • 전성훈
  • 승인 2021.04.20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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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17)
전 성 훈변 호 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성훈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몇 년 전 한 유명 여배우가 ‘유명 병원에서 지방종 제거 수술을 받다 의료사고를 당했다’면서 자신의 SNS에 글을 올린 사건이 있었다. 유명 여배우였기에 세간의 관심을 끌었는데, 그녀의 집도의는 과실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환자가 배우여서, 흉터가 드러나지 않도록 지방종과 조금 거리가 멀지만 옷으로 가릴 수 있는 부위를 절개해 종양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피부가 손상되었다’고 해명했다.
 
이후 특별한 소식이 없었던 것을 보면, 피해보상 등에 관해 원만히 합의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피해자가 유명 여배우였기에 뉴스가 되었지, 특별할 것이 없는 의료사고였다.
 
하지만 이후 일부 단체는 ‘환자가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이었다면 병원측이 이렇게 신속히 과실을 인정하고 피해 보상을 약속했겠느냐’라면서 ‘환자 불평등 문제’를 들고 나왔다. 게다가 위 여배우 사건을 계기로 ‘의료사고 피해자가 병원과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을 완화해 달라’는 여러 국민청원들까지 등장했다. 이 국민청원들에서는 ‘의료분쟁 소송을 일반인이 승소한다는 건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렵다’, ‘의료사고 승소율 1%가 안 되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인가’와 같은 불만이 쏟아졌다.
 
의료라는 전문 영역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 의료소송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의료소송에서 환자가 승소하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렵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첫째 의료소송에서 환자가 승소하는 것이 하늘에 별을 따는 것보다는 훨씬 쉽고, 둘째 하늘의 별을 대신 따주는 사람, 즉 변호사들이 우리나라에 3만 명이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에서의 여러 분쟁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원칙인 ‘법’을 만들었다. 그런데 원칙만을 간략히 적어놓다 보니, 필연적으로 그 해석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법의 해석과 적용을 담당하는 직군, 즉 법률가라는 직업이 법의 제정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발생했고, 수천 년간 이어져 왔다.
  이렇게 오래 전부터 소송이라는 제도는 기본적으로 법률가의 조력을 받을 것을 전제로 운영되어 왔다. 물론 비법률가인 당사자가 직접 법정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본인소송’이 과거에도 없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는 ‘억울하옵니다’ 수준의 소송에서나 그러했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요한 재산과 신분 관계 소송에서는 법률가의 조력이 필수였다. 비록 조선은,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활발하게 활동하던 조선판 변호사, 즉 외지부(外知部)를 성종 때부터 400년이나 금지하여 ‘사또 재판’이 횡행하도록 만들었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위와 같이 ‘의료소송에서 환자의 승소가 어렵다’는 주장들을 보면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각자 원하는 무기(=변호사)를 들고 나와서 싸워도 좋다고 법으로 정해진 경기장에 굳이 맨손으로 들어와서 ‘맨손이라 이기기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변호사를 쓰려면 돈이 드니까 사실상의 제약이 된다’라고 한다. 하지만 법으로 정한 변호사비용은 승소하면 상대방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 심지어 상대방은 돈을 떼어 먹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의사 아닌가? 또한 혹자는 ‘의사가 이미 진료기록을 조작해 놓았을 것이어서 소송을 걸어도 못 이길 것이다’라고 한다. 하지만 이 정도로 모든 것을 의심하는 음모론 신봉자는 법과 제도가 조력할 방법이 없다. 변호사가 ‘진료기록 조작은 처벌되므로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고, 변호사가 조력하면 과실을 증명할 수 있다’라고 설득해도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알려줘도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는 경우는, 소송을 해도 승소하기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변호사는 쓰기 싫고,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은 더 싫기 때문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사 잘못을 환자가 증명하는 것은 어려우니, 의사가 잘못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게 해 달라’는 요구가 나온다. 대법원이 대법원 설립 이후부터 ‘의료소송이라 하더라도 의료과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기본적으로 환자측에 있고, 의사의 과실로 인한 결과발생을 추정할 수 있을 정도의 개연성이 없는 경우까지 의사의 무과실책임을 부담시킬 수는 없다’는 일반원칙을 반복하여 강조해 왔음에도 말이다.
 
얼마 전 여당의 한 국회의원이 의료사고에서의 입증책임을 의사 등이 전적으로 지도록 하는 내용의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제출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개정안은 ‘의료인의 의료사고로 환자가 생명·신체 및 재산상 피해를 입었을 경우 의료기관 개설자가 배상책임을 지고, 다만 의료인과 의료기관 개설자가 과실 없음을 스스로 증명했을 경우에는 배상책임을 면한다’는 내용이다.
 
위 개정안의 제안이유는 ‘의사 과실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이 매우 어려워 그 피해를 입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고, ‘의무기록을 확보하더라도 용어, 자료해석, 판독 등 모든 요소가 고도로 전문화되어 일반인이 전문가인 의사를 상대로 과실을 입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늘의 별을 나 혼자서 따려고 하는데 따기가 너무 어렵다’는, 예전부터 자주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이미 말했듯이, 대한민국에는 하늘의 별을 대신 따주는 3만 명의 변호사들이 있다.
 
‘의료사고 승소율 1%가 안 되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인가’라는 불만을 뒤집어서 생각해 보자. 공정하게 판단하려 노력하는 최고의 지성인인 판사들이 보기에도, 환자가 소송까지 걸어서 의사의 잘못을 따지는 수많은 사건 중 환자 말이 전부 맞는 사건이 1%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게다가 위 불만은 크게 과장되어 있는데, 환자 전부승소는 1% 남짓이지만, 일부승소는 20% 이상 된다. 일반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승소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모든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하늘의 별따기’에 비유하지는 않는다.
 
국민들에게 돈을 주는 경제적 포퓰리즘은, 수치로 리스크가 예측되니 논쟁이 쉽다. 하지만 전문 분야의 대원칙을 손상시키면서 법과 제도를 뒤틀어 놓는 제도적 포퓰리즘은, 우리 아니면 자식들이 무형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논쟁도 없이, 엄청나게 큰 대가를 말이다. 의사와 환자의 유불리 같은 좀스러운 내용을 논하기 전에, 헌법에서 권한을 부여받은 입법기관의 책임감 있는 태도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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