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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중에 사라지는 것들
번역 중에 사라지는 것들
  •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 승인 2021.04.13 06: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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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역 2번 출구' 〈11〉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오래도록 소식을 몰랐던 초등학교 여자 동창생이 어느 날 지상파 방송 메인 뉴스의 앵커로 등장한다면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내 경우엔 놀라움에 이어 동창으로서 왠지 모를 뿌듯함이 잠깐 스쳤고 그다음엔 ‘아, 옛날에 좀 더 친하게 지낼 걸’ 하는 속물스러운 후회가 살짝 밀려왔다. 그렇게 레지던트 시절의 나를 당황시켰던 그 친구는 1~2년 남짓 방송에서 얼굴을 보여준 뒤 홀연히 사라졌다. 다시 20여 년이 훌쩍 지나 그 이름을 우연히 발견한 건 대형서점 신간 코너에서였다. 집어 든 책의 표지 안쪽을 보니 그녀는 미국 생활을 오래 하다가 귀국한 전문 번역가로 소개되고 있었다. 평소 별 관심 없는 분야의 책이었으나 반가움에 냅다 구매했다. 

이후 내게서 뭔가 갑작스러운 열정 같은 게 피어나는 걸 본 우리 과 전공의 선생은 이유를 묻더니 회심의 미소와 함께 출판사에 전화해 번역자 연락처를 문의하는 오지랖을 보여주었다. 물론 출판사가 그걸 알려줄 리 없었고 난 졸지에 스토커 비슷한 혐의를 받았을지 모르겠다. 실은 나 역시 평소 번역에 관심이 많았기에 늘 전문 번역가 멘토가 한 사람 있었으면 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오해받기는 싫어서 그냥 안정효 선생의 명저 <번역의 테크닉>을 바이블 삼아 교과서 같은 전문 의학서적이 아닌 첫 대중서 번역에 돌입했다.

물론 대중서라 해도 문학작품을 번역할 실력이 안 되는 나로서는 그저 미국 의사가 일반 대중을 상대로 쓴 책 중 맘에 드는 메시지가 담긴 원서를 골라야 했다. 첫 번역서의 제목은 <과잉진단(Overdiagnosis)>이었는데 이 책에는 무턱대고 건강검진을 과신하고 과용하다가 어떤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담겨 있다. 잘 아는 출판사 사장님이 흔쾌히 출판을 허락해주었고 발간 직후 당시 대한민국에서 세계 1위의 증가율을 보이던 갑상선암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 일부 의사 그룹이 권장 도서로 홍보해 주었다.

두 번째 책은 출판사의 요청에 의해 번역하게 됐다. 의사가 일반인을 위해 쓴 일종의 영양학 관련 서적으로 원제를 직역하면 <죽지 않는 법(How not to die)>이었다. 출판사 편집회의 끝에 번역판에는 <의사들의 120세 건강 비결은 따로 있다>라는 장황한 제목이 붙었다. 원서건 번역서건 제목에는 좀 과장이 보태졌으나 내용에는 실천 가능한 식이요법 팁들이 많았고 건강식품들에 관한 최신 의학 연구 결과들이 객관적 근거로서 제시되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주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번역 작업을 했다. 그게 시간을 알뜰히 활용하는 지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내게 친숙한 건강 분야 실용서들이라 해도 안정효 선생의 가르침처럼, 문맥에 가장 어울리는 단어를 고심해서 찾아내고 쉼표까지도 일일이 신경을 쓰며 문체마저 신중히 고민하다 보니 이 일은 조각조각이 아니라 따로 온전히 할애한 시간에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렇게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음에도 다시 읽어보면 번역해 놓은 결과물에서 원문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들이 제법 있었다.

‘번역 중에 사라지다(Lost in translation)’. 번역가들에게 유명한 이 말의 주어는 ‘시(poetry)’라고 알려져 있다. 확실한 근거는 찾을 수 없으나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남긴 말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튼 원문에 비해 번역된 시의 감흥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경험한 사람은 이 말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특히 어순도 압운도 상이한 우리말과 영어의 경우 번역하는 순간에 사라지는 것들이 적지 않기에 시는 번역이 아예 불가능하다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영화 <대부>의 감독 프란시스 코폴라의 딸 소피아 코폴라는 이 ‘Lost in translation’이란 문구를 자기가 직접 만든 영화의 제목으로 사용했다.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한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우리말 제목을 재치 있게 붙였지만 내용과 제목이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중년 유부남과 젊은 새댁이 일본 여행 중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애틋하게 끌리는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장면이다. 동경 거리에서 남자가 여자를 끌어안고 귓속말을 한다. 당연히 관객들에겐 들리지 않고 자막으로도 번역되지 않는다. 귓속말 후 둘은 ‘쿨’하게 헤어진다. 도저히 번역이 안 되거나 번역 중에 의미가 사라지기 일쑤인 불완전한 우리의 언어를 뛰어넘어 마음으로 전달되는 진실이 있다는 것. 감독은 그걸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정의상 번역은 서로 다른 언어 간의 의미전달이지만 같은 언어 내에서도 정확한 번역이 필요할 때가 있다. 영화에서 다루었듯이 속마음을 번역하는 것 말이다. 종종 오해와 답답함이 크다면 그 상황 역시 ‘Lost in translation’에서 기인하지는 않을까. 매달 접수된 ‘고객의 소리’를 담당자가 요약해서 병원장에게 보고하는 문서를 보면 이걸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원무과 접수창구에서는 대기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번호표를 발행한다. 직원이 그걸 받아서 곧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는 게 기분 나쁘다고 항의한 환자가 있다. 병원 현관에서 코로나 방역을 위해 문진하는 직원들은 앉은 자세로 서 있는 고객들을 상대한다. 그러다 보니 눈을 치켜뜨게 되는데 이를 째려본다고 느낀 보호자의 민원도 있다. 수술 후 상처가 아물지 않고 피부염까지 생겼지만 주치의가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고 울분을 토한 환자도 있다. 분명 우리말이었으나 당사자들의 마음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뭔가 사라진 것들이 있음을 나는 안다. ‘제발 나를 존중해 주세요’, ‘한 마디 따뜻한 위로가 필요해요’, ‘내가 많이 불안합니다’라는 사려 깊은 번역들이 마땅히 더 있었어야 했다.

나의 세 번째 번역원고는 아직 출간하지 못했다. 생뚱맞지만 ‘탁구의 철학’에 관계된 책인데 시장성이 별로 없다고 판단한 출판사에서는 난색을 보인다. 그 덕분에 혹시 번역 중에 사라진 것들이 초고에 없는지 검토해 볼 시간은 많아졌다. 어쨌거나 대략 이 정도 경력이면 초보는 면했으니 우리 전문 번역가 동창을 한번 만나봐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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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2021-04-18 19:33:31
구구절절 맞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