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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근(近) 불가원(遠)··· 환자는 주는데 확진자 다녀갈까 ‘전전긍긍’
불가근(近) 불가원(遠)··· 환자는 주는데 확진자 다녀갈까 ‘전전긍긍’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1.04.13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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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기획 Ⅱ] 코로나가 바꿔놓은 진료실 안팎 풍경' ①
작년 1~3분기 의원급 내원일수 작년 동기보다 13%↓, 소청과는 45%↓
확진자 방문 의료기관 손실보상 예산 추경 편성했지만 실효성은 '글쎄'
(사진=뉴스1)
(사진=뉴스1)

서울 강북 지역에서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운영하는 A원장은 요즘 최근 줄어드는 환자 때문에 운영 중인 의원을 폐업하고 봉직의로 취직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저출산에 코로나19까지 겹쳐 환자 수가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무려 80% 이상 줄었기 때문이다. 2명이던 간호조무사 수도 1명으로 줄이고 대출에 의존해 버티고 있지만 하루 환자가 10명도 채 되지 않는 날이 허다하다. A원장은 “애초 소아청소년 환자가 많지 않다고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작년 초부터 대유행이 시작된 코로나19 사태가 1년 넘게 장기화되면서 A원장과 비슷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의료기관이 많다. 실제로 전국 의료기관들의 경영난은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2020년 3분기(1∼9월) 진료비 주요 통계에 따르면 모든 종별 의료기관의 지난해 3분기까지 내원일수는 7억423만8000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약 10.9%(8602만2000일)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의원급과 병원급 의료기관의 방문일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의원급의 2020년 3분기 내원일수는 3억5238만일로 전년 동기(4억538만3000일)보다 약 13.1% 감소했다. 같은 기간 병원급 내원일수도 전년 동기보다 약 14.7% 감소했다.

환자 내원일수 감소는 그대로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의원급 의료기관의 손실 규모’에 따르면 51개 의원급 의료기관의 지난 3월 요양급여 청구액과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각각 46.8%, 49.8% 감소했다. 월별 건보 청구액과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평균 1300만원, 2000만원씩 감소한 것이다.

특히 코로나 사태를 맞아 경영난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알려진 ‘소아청소년과’와 ‘이비인후과’의 환자 감소세는 수치상으로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진료비 주요 통계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의 2020년 1~3분기 내원일수는 1990만5000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절반에 가까운 무려 44.9% 감소를 기록했다. 요양급여비용 역시 전년 동기 대비 39.9%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부모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기를 꺼려하는 현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작년 3분기에 0∼9세의 내원일수가 전년 동기 대비 약 44.9%, 10∼19세는 약 29.5%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소아청소년과를 찾는 주연령대 환자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이비인후과의 경우도 같은 기간 내원일수가 3306만7000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29.8%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당장의 경영 악화도 문제지만 어쩌다 코로나19 환자가 다녀가기라도 하면 아예 병원 문을 닫아야 한다. 휴업하는 동안엔 보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의료기관 입장에선 '환자가 안 와도 걱정, 와도 (혹시 코로나 환자일까 봐) 걱정'이란 말이 나온다. 

종로구 B의원은 작년 초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간 뒤 확진자가 거쳐간 의료기관에 보상을 해 준다는 정부 얘기를 믿고 의원 폐쇄 후 전 직원이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당국에 보상 절차를 문의하자 돌아온 대답은 “대체인력을 투입하라”는 것이었다. 

차라리 '폐쇄명령'을 내려달라고 했지만 의료진만 있다면 병원 운영이 가능한 만큼 조건에 맞지 않는다며 거부 당했다. 이 의원 C원장은 “원장 1명과 간호조무사 2명이 일하는 동네 의원에 ‘대체 인력’(페이닥터)을 투입하라는 것이 말이 되냐”며 울분을 토로했다. 

현장에서 이런 식의 문제 제기가 잇따르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코로나19 환자 내원으로 피해를 입은 의료기관에 대한 손실 보상 예산 6500억 원을 포함한 보건복지부 추가경정예산 1조3088억 원이 지난달 25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를 토대로 정부는 ‘손실보상위원회’를 열고 코로나19로 인해 손실 규모가 큰 의료기관부터 ‘개산급(槪算給)’ 형태로 손실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확진자 발생으로 폐쇄명령을 받은 의료기관은 물론, 폐쇄되지 않았어도 의료인 자가격리 조치로 문을 닫은 의원에 대해서도 손실보상을 실시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하지만 일선 의료 현장에서는 “보상 기준이 미흡할 뿐만 아니라 의료기관에 실제로 발생하는 손해가 생각 외로 많아 충분한 보상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당장 이번 추경예산에 포함된 비대면 체온계 설치 지원을 위한 예산은 전국의 모든 약국에 우선적으로 배정됐고, 의료기관을 위한 예산은 최종적으로 제외됐다. 병원 직원이 가족으로부터 감염돼 자가격리됐을 경우 해당 부서가 폐쇄되더라도 손실보상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의료계 관계자 D씨는 “그동안 몇 차례 개산급 지급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정부는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인색한 모습을 보여왔다”며 “특히 추경 항목 외에 병원들이 감염 예방·치료를 위해 자발적으로 투입한 부분들에 대한 보상이 미흡했다. 앞으로도 이런 행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E원장은 “환자가 너무 없어 하루하루 피를 말리며 살고 있는 지경이지만 정부의 보상이나 대책에는 더 이상 큰 기대를 하기 힘들다”라며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기만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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