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으로 고름 덩어리를 뽑아내는 마법
대변으로 고름 덩어리를 뽑아내는 마법
  • 전성훈
  • 승인 2021.04.0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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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16)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사극에서 재판을 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관청 중앙에 사또가 앉아 있고, 아전들이 옆에 둘러서 있으며, 죄인(으로 의심받는 사람)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다. 옆에는 창을 든 포졸들이 둘러서 있다.
 
‘네 죄를 네가 알렷다!’라는 사또의 추상같은 호령이 떨어지자, 죄인은 ‘억울하옵니다 사또’를 연발한다. 몇 번 묻지도 않고, 사또는 ‘에이 고약한 것! 그런 죄를 짓고도 뉘우치는 기색이 없구나! 끌어내라!’를 외친다. 죄인은 식은땀을 흘리며 똑같은 대사만 되풀이하면서 질질 끌려 나간다.
 
이러한 사극에서의 재판 모습은 극적 효과를 위하여 많은 부분이 왜곡되어 있다. 하지만 현대의 재판과 비교하여 이 부분은 정확히 일치한다. 그것은 ‘죄질이 좋지 않거나 반성하지 않으면 엄벌한다’라는 것이다.
 
반성과 관련하여 쉬운 예를 보자. 수사나 재판을 받게 되면 많은 경우 변호인의 조력을 받게 된다. 특히 구속된 피고인 등에게는 국가가 변호인을 선임해 주는데, 이것이 국선변호인이다. 의외일 수 있으나, 국선변호인이 피고인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자백하시죠’라는 말이다. 심지어 자백하라는 국선변호인과 싫다는 피고인 사이에 언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니 변호인이 피고인에게 자백을 권하다니 말이 되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섣부른 무죄 주장은 피고인에게 매우 불이익하다. 첫째 증거를 살펴보면 무죄 주장이 무의미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둘째 무죄 주장은 범행 부인을 의미하고, 범행을 부인하면 반성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저는 억울합니다만, 어쨌든 반성합니다’라는 말은 판사가 가장 싫어하는 말인데, 이렇게 말하겠다는 피고인들이 상당히 많다. 그래서 변호인은 ‘그렇게 말하면 형량만 높아진다. 차라리 자백하고 선처를 빌자’라고 설득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런 죄’ 즉 죄질도 중요하다. 죄질은 ‘행위에 대한 비난가능성’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똑같이 사람을 때려도 30세 남성을 때린 것과 70세 여성을 때린 것은 비난가능성이 다르다. 의료 관련 사건에서도 죄질이 논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통상 판사로부터 죄질이 나쁘다는 질타를 받는 경우는, 비의료인에게 반복적으로 무면허의료행위를 시키거나, 의료과오를 숨기기 위해 증거를 은폐하거나, 의료인에 대한 신뢰를 이용하여 범죄를 저지른 경우 등이다.
 
그런데 ‘죄질 불량’ 사건들 중 어떤 것은, 변호사들이 ‘판결문에서 판사의 침이 튄다’고 농담할 만큼 판사가 피고인을 크게 야단치는 경우가 있다. 최근 선고된 어떤 사건의 판결문을 보니, 판사의 침이 ‘비 오듯 튀는’ 느낌을 받았다. 이는 한의사들이 암환자들로부터 억대 금품을 편취한 사건이었다.
 
한의사 A는 2012년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부정의료업자) 등으로 유죄판결을 선고받아 한의사면허가 취소되었다. 그럼에도 A는 2015년까지 한의사 B가 운영하는 한의원에서 연구원장이라는 이름으로 환자들을 계속 진료했다.
 
B는 A가 한의사면허를 취소당한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A와 공모하여 한의원에 내방하는 환자들 및 한의원 홈페이지에 이런 광고를 했다: ‘암세포를 없앨 수 있는 효능을 가진 약을 개발했다’, ‘재발 없이 암의 사이즈를 줄이는데 효과를 보이는 한약들을 연구해 왔는데, 그 결과 특정 약재들에서 강력한 암세포의 사멸을 유도하는 효능을 발견하여 이 약을 만들었다’, ‘암세포의 성장을 막아 인체 전방의 균형 바로잡는 치료법’ 등등. 물론, 당연히, A와 B가 투약한 약에는 이런 효능이 없었고, 심지어 독성 물질이 검출되었다. 그리고 A와 B는 환자들로부터 수억 원대의 치료비를 받았다.
 
어이없음을 넘어 황당함을 자아내는 것은, A와 B가 공모하여 암환자의 가족에게 ‘전에는 소변으로 고름을 뺐는데, 지금은 대변으로 덩어리가 나오게 하는 기법을 쓰고 있다. 2년 전에 개발한 특수약을 쓰면 고름 덩어리를 대변으로 뽑아낼 수 있다.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으니 환자를 데려오면 특수약을 써서 90% 이상 완치시킬 수 있다. 3개월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비용은 한 달에 5000만원이다’라고 한방 암치료를 권유한 점이다. 심지어 A가 ‘암독’을 푼다며 환자에게 사용한 온열기는, 암세포를 파괴하기 위해 의료계에서 사용하는 고주파온열 암치료장비가 아닌, 가정용 원적외선 전기온열기(=전기장판)인 것으로 밝혀졌다.
 
재판부는 ‘절망적인 상태의 말기암환자와 가족들의 절박한 심정을 이용해 마치 그들을 완치할 수 있을 것처럼 거짓말해 폭리를 취했다’, ‘자신의 무면허한방의료행위 범행을 은폐하고자 후배 한의사를 통한 증거위조 교사행위까지 나아갔다’, ‘효능이 명백하게 입증되지 않았고, 심지어 해롭게 작용할 수도 있는 한약과 한방치료법을 마치 말기암 완치에 효능이 있는 것처럼 널리 광고했다’, ‘권위 있는 기관의 로고를 임의로 도용해 분석자료를 제시함으로써 마치 위 효능이 객관적으로 증명된 것처럼 일반인을 현혹시켰다’, ‘검증되지 않은 한방치료를 시행해 오히려 환자들이 금방 사망해 버렸음에도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은 채 책임을 회피하는 등 죄질이 극도로 불량하고 비난가능성이 매우 크다’라고 질타하면서 A와 B 모두를 실형에 처했다. 이 정도로 판사의 침이 비 오듯 튀는 판결문은, 변호사로서도 흔히 보기 어렵다.
 
또한 이 판결이 ‘죄질 극히 불량’의 예시가 될 수 있는 판결임과 별개로 의료적·법적으로 중요한 판결인 이유는, 재판부가 ‘A와 B가 환자들에게 시술한 혈맥약침술은 한의사의 면허범위 내에 속하는 한방의료행위라고 볼 수 없다’라고 명시했다는 점이다. 만약 대법원에서 이러한 판단이 확정된다면, 향후 모든 한의사들이 혈맥약침술을 시술할 수 없게 된다.
 
혈맥약침술의 문제점이 지적된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당국의 미온적 대응과 법원의 신중한 접근이 합쳐져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의료법상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대하여 대법원이 명확한 입장을 밝힘으로써, 이러한 혼란이 종식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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