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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이혼 사건 수난사
필자의 이혼 사건 수난사
  • 전성훈
  • 승인 2020.10.20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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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97)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필자의 이혼 사건 수난사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필자의 이혼 사건 수난사

필자가 초면인 의사들에게 가끔 받는 질문이 있다. ‘변호사님은 어떤 분야쪽 일을 하세요?’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고르게 하는 편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이런 대답을 들으면 상당수의 의사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얼마지 않아 이유를 알았는데, 많은 의사들이 ‘의사의 전문과목 같이, 변호사도 전문분야가 나눠져 있을 거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후로는 이해가 쉽도록 ‘의료, 기업, 형사 사건을 주로 합니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고르게’ 하고 있지만 말이다.

사건 분야가 비교적 고른 편이지만, 필자가 맡을 때마다 고심하는 사건이 있다. 바로 이혼 사건이다. 수백 명의 양가 가족, 친척과 지인들 앞에서 ‘평생 잘 살겠다!’라고 선언한 남녀가 오죽하면 이혼까지 하게 되었겠는가. 변호사가 아무리 사건에 필요한 사실관계만을 들으려고 해도, 그 사실관계에는 상대방에 대한 해묵은 비난과 삭이지 못한 분노가 덕지덕지 붙어 나온다.

가령 상대방 대리인이 당사자의 막말을 고스란히 ‘받아쓰기’한 서면을 제출하여, 우리는 이를 점잖게 반박하면, 의뢰인은 ‘저쪽이 저렇게 나오는데, 우리는 왜 점잖게 하느냐. 더 세게(=막말로) 반박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재판부에 좋지 않은 인상을 준다’고 설득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소송 결과는 먼 일이고 상대방에 대한 분노는 눈앞의 일이다. 상대방측과도 싸우면서 의뢰인과도 싸워야 하니, 변호사는 곱으로 힘들다.

따라서 맡을 때마다 고심하지만,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이혼 사건들이 있다. 가까운 사람의 가족·친지의 이혼 사건이다. 만약 필자가 맡지 않으면, 인터넷에서 변호사 광고를 검색하여 일면식도 없는 변호사를 찾아가서, 변호사 얼굴은 재판 때 잠깐 보고 사무장과 사건을 진행하게 될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를 보아 도저히 그런 곳에 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혼 사건은 이런 이유로 맡게 된다.

그런데 불운한 것은, 필자가 이렇게 맡게 된 이혼 사건들 중 평이한 사건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이혼 사건임에도 몇 년 동안 진행되거나, 3심인 대법원까지 극렬하게 다투거나, 의뢰인이 필자에게 태연하게 거짓말해 뒤통수를 치는 등 필자를 고생하게 만든 사건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래 사건도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부득이 맡았지만, 필자에게 트라우마를 선사한 사건이다.
 
A남과 B녀는 모두 공무원이었는데 각자의 직장이 멀리 떨어져 있어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들을 둘이나 낳았으나 ‘성격차이’로 차츰 소원해 졌고, 직장 때문에 부득이 하게 된 별거 아닌 별거 생활은 성격차이에 기름을 부었다. 결국 협의이혼을 하면서 아들 둘은 아빠가 키우기로 합의했다. 왜냐하면 협의이혼 당시 B녀는 직장에서 만난 C남이 있었고, C남과 새 출발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C남은 B녀와의 ‘미래’까지는 그리지 않았는지, 막상 B녀가 아이들까지 내주면서 이혼하고 왔음에도 C남은 떠나 버렸다. 낙동강 오리알이 된 B녀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A남을 찾아와 ‘큰 애는 내가 키우겠다’라며 막무가내로 양육권을 달라고 했다.

아이 둘을 함께 키워야 아이들에게 좋다는 것은 A남도 알고 있었지만, ‘아들’ 둘을 키우기가 어디 쉬운가. 어머니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아들 둘을 키우면서 육아에 지친 A남은, B녀의 요구가 점차 거세지자 자의반타의반 큰 아들의 양육권을 B녀에게 양보해 주었다.

그리고 1년 이상 지났는데, 뜻밖에 A남은 B녀로부터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청구’ 소장을 받았다. 뜻밖에 C남과 헤어지고 자립하려니 B녀는 아마 돈이 부족했을 것이다. 이혼시 재산분할로 1억 원을 주어 B녀에게 전셋집을 얻어주었던 A남은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고, 필자를 찾아왔다.

필자는 이혼 사건을 가능한 맡고 싶지 않았기에 다른 변호사를 소개하려 하였으나, 들어보니 협의이혼은 마쳤고 재산분할청구만 들어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비난과 분노의 불쑈’는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고, 맡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물리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사건 수행을 승낙했다.

그런데 소송이 진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B녀는 갑자기 ‘부정행위에 기한 위자료청구’를 추가하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다시 키우게 된 큰 아들이 갖고 놀기 위해 A남이 썼던 중고휴대전화를 B녀 집으로 가지고 왔는데, 이 휴대전화에서 A남이 협의이혼 직전 별거 아닌 별거 생활을 할 때 눈이 맞은 D녀와 함께 찍은 남부끄러운 사진들이 여러 장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에 B녀는 엄청난 ‘분노’에 휩싸여 위자료청구를 추가한 것이다.

그러자 A남 역시 울컥하여 ‘자기가 C남 만나서 애 버리고 간 것은 눈 감아줬더니!’라고 ‘비난’하면서 ‘결사항전 모드’로 들어갔고, 결국 이 사건은 전형적인 ‘이혼 후의 이혼 사건’으로 변했다. 그리고 이런 사정을 전혀 모른 채로 이 사건을 맡았던 필자는, 피할 수 있을 줄 알았던 ‘비난과 분노의 불쑈’를 양쪽에서 정통으로 맞게 되었다. 그것도 3년짜리로.

3년의 소송 끝에, 법원은 상식적인 판결을 내렸다. 사건이 끝난 후 A남은 필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지만, 필자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만약 D녀하고 또 이혼하실 거면, 절대 저를 찾아오지 마세요.’

위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겨우 잊을 즈음, 최근 이런 이혼 사건을 또 맡게 되었다. X남과 Y녀는 7년 전 결혼하여 아들을 하나 낳고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직장이 각각 하남과 인천이어서 어쩔 수 없이 별거 아닌 별거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자주 보지 못하니 관계도 차츰 소원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Y녀가 심야에 배가 심하게 아프다고 하여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야겠다고 하였고, X남은 걱정되어 (오지 말라는 Y녀의 말을 무시하고) 응급실로 찾아갔다. 그런데 Y녀가 갑자기 ‘출산’을 한 것이다. 물론, X남의 아이는 아니다.

X남과 그 부모의 ‘멘붕’을 뭐라 표현하겠는가? X남이 ‘출산’ 원 펀치를 맞고 망연자실하던 차에, Y녀는 지인들을 동원하여 시부모댁에 쳐들어가서 시부모를 힘으로 제압하고 아들을 빼앗아감으로써 ‘애 뺏어가기’ 투 펀치를 날렸다. 그리고는 X남에게 먼저 이혼 소장을 날려 ‘이렇게 된 거 이혼해 달라. (X남과의 사이에서 낳은) 첫째와 (새로 낳은) 둘째는 모두 내가 키우겠다.’라고 주장하면서 피니시 블로우를 날리려 하고 있다. X남은 순식간에 아내와 아들을 모두 잃게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필자는 이 사건 역시 부득이하게 맡게 되었다. 필자의 이혼 사건 수난사는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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