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화분의 관계
눈물과 화분의 관계
  •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 승인 2021.04.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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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역 2번 출구' 〈10〉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유대인 수용소의 사령관 뮬러는 한쪽 눈이 의안이었다. 독일의 탁월한 기술력이 자신의 의안마저 진짜를 능가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었다고 자랑하던 그는 한 번씩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유대인 포로를 불러내 심통을 부렸다. 자신의 두 눈 가운데 어느 쪽이 가짜인지 맞혀보라는 질문을 한 것이다. 정답을 말하면 순순히 돌려보냈지만 틀리면 그 자리에서 총으로 쏴버렸다. 어느 날 ‘야곱’이라는 유대인이 이 죽음의 퀴즈 자리에 끌려 나왔다. 사령관의 질문에 야곱은 조심스럽게 왼쪽 눈이 가짜라고 말했다. 정답을 너무 빨리 알아맞힌 게 신기했던 뮬러는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다. 야곱의 대답은 이랬다. “왼쪽 눈빛이 더 따뜻했습니다.”

주제가의 선율이 지독히 오래 머릿속에 맴도는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한 장면이다. 2차대전 중 유대인이 경영하던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레스토랑에 독일군 장교들이 식사하러 들이닥친다. 그들은 한때 친구였던 식당 주인에게 유대인 농담이라도 좋으니 어디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보라고 거만하게 요구한다. 그에 대한 답으로 주인이 들려준 게 바로 이 ‘의안’ 조크다. 영화 속에서 좌중을 일순 긴장하게 만들던 이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욕실에서 세수하고 거울을 보는 내 머릿속에 불쑥 떠올랐다.

거울에 비친 눈꺼풀 주위 염증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우리 병원 안과 과장이 진찰하면서 눈썹도 몇 개 뽑고 많이 곪은 부분은 째고 짜고 했는데도 그렇다. 안과에서는 거창하게 ‘마이봄샘 염증(meibomitis)’이라고 부르지만 그게 그냥 흔한 속다래끼라는 소리. 어쨌든 이것 때문인지 눈이 뻑뻑하고 자주 충혈된다. 거울에 비친 내 눈빛은 피곤하고 흐리멍덩하기가 얼린 명태를 연상시킬 것 같다. 탁하고 찐득한 안연고까지 수시로 발라대니 설상가상이다. 사람의 눈빛에서 온도를 감지했던 유대인 수용소의 야곱이 보았다면 아마 독일 나치의 냉혹함을 넘어 타노스 같은 범우주적 빌런의 분위기를 느끼지 않을까.

속이 상했다. 어릴 적 사진 속의 내 눈빛은 별처럼 초롱초롱 빛나고 시냇물처럼 맑은데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사실 억지로 무슨 ‘마이봄샘 염증’ 같은 걸 핑계 삼고 있지만 영롱했던 눈빛이 사라진 이유를 난 잘 알고 있다. 눈물이 말랐기 때문이다. 반짝반짝 사랑스러움이 넘쳐나는 아기들의 눈빛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간다. 울고 싶을 때 언제든 한바탕 눈물을 쏟아낼 수 있는 아기들은 늘 눈가에 여분의 눈물이 돌고 있다. 그러기에 호수같이 촉촉한 눈빛을 지니는 것이다. 하지만 아기가 자라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울고 싶다고 다 울면 안 되고, 어지간하면 참아야 한다는 걸 배우면서부터 눈물이 마르기 시작한다. 그 결과 준비된 눈물은 점점 소진되고 이내 어린 시절의 그 맑고 영롱한 눈빛을 잃는다. 나도 그렇게 된 거다.

‘눈물이 마르면 화분 하나를 사요.’

우리 진단검사의학과 여선생님들과 병원 앞 중국집에 점심을 먹으러 나가던 어느 날, 매번 지나던 길가의 작은 꽃집 유리창 글귀가 새삼 눈에 들어왔다. 사랑과 정성을 쏟을 수 있는 대상으로 화분을 들여놓으면 사라졌던 감성이 되살아나면서 눈물 역시 조금씩 회복된다는 뜻 아닐까. 일단 말랐던 눈물샘이 회생한다면 나의 퀭한 눈빛도 생기를 찾을 것 같은 희망이 보였다. 꽃이건 선인장이건 화분을 하나 사야겠다는 충동이 막 피어오르려는 찰나 우리 과 한 여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이 급작스러운 실망감을 안긴다.

“저게 말이죠. 식물을 키우면 걔가 실내 습도를 높여서 안구건조증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뜻이에요. 흐흐, 나름 과학적인 마케팅이네요.” 그러나 안구건조증 치료목적으로 화분을 들여놓으라는 설득에는 별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기에 꽃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스스로 방구석 식물 키우기의 달인이라 생각하는 여선생님으로부터 이과 출신다운 설명을 들었지만 나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었다.

이후 인터넷 검색을 통해 꽃집 유리창의 문구가 함선영이라는 분이 펴낸 시집의 제목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러니까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화분을 산다’는 행위에는 ‘시심(詩心)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는 문학적 목적이 어느 정도 들어있었음이 틀림없다. ‘파도가 넘쳐서 너의 발을 적신 건 / 고래도 가끔씩 울기 때문일 거야’라는 식으로 가슴을 파고드는 두 줄짜리 시가 가득 담긴 작은 시집. 파도를 보며 고래의 눈물을 떠올린 함선영 시인을 생각하면 왠지 내 눈에 눈물을 다시 솟게 하는 방법을 알 것도 같았다.

다 큰 어른이 한 번씩 남 눈치 안 보고 실컷 우는 데는 병원이 괜찮은 환경이다. 우리 같은 암병원에서는 곳곳에서 분노와 기쁨, 낙심과 안도가 교차하기에 눈물이 흔하다. 매일매일 삶과 죽음의 기운이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까닭에 복도에서 벽을 붙잡고 눈물 흘리는 분들도 자주 볼 수 있다. 나 역시 우리병원에서 좋아했던 의사 선후배들을 먼저 보낸 적이 있다. 작년에는 아버지도 이곳에서 돌아가셨다. 그런데 그때마다 마음은 찢어지게 아팠으면서 눈물은 조금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울음을 삼키려 애를 쓴 까닭이었고 그럴수록 내 눈빛은 흐려져 갔을 것이다.

만성 마이봄샘 염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눈빛이 독일군이나 우주 악당 닮았다는 소릴 듣지 않기 위해서도 이제부터 눈물을 좀 더 활발히 생산해 내고 싶다. 화분이 실내 습도를 높여 만성 안구건조증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아주 조금만 사실이다. 화분 속 작은 꽃송이 하나, 난초 이파리 하나가 영혼의 샘을 건드리고 그 울림이 눈물로 이어지기에 뻑뻑했던 눈이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분명히 멋진 음악도 화분과 동일한 패스웨이(pathway)를 따를 것이라 믿기에 노래 한 곡을 크게 틀어본다. 헨델의 ‘울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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