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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향한 '사이다' 발언 대신, 평범한 시민이 공감할 '소통'해야
의사 향한 '사이다' 발언 대신, 평범한 시민이 공감할 '소통'해야
  • 곽경훈('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저자)
  • 승인 2021.04.13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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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기획 Ⅰ] '대중(大衆)에 다가서는 의사들' ⑤
의사집단을 둘러싼 오해들, 대부분 알고 보면 '소통 부족'이 원인
지지 호소하면서 훈계한 것은 아닌지···좋은 설명은 '간결한' 문장
곽경훈 응급의학과 전문의

흡연과 과도한 음주는 건강을 위협한다. 애연가와 애주가조차, 심지어 담배회사와 주류회사도 이 사실을 부정하지 못한다. 응급실에서 마주하는 질환의 원인도 흡연과 음주일 때가 적지 않다. 만성 폐쇄성기관지염과 급성 췌장염, 위식도정맥류처럼 흡연과 음주가 직접적인 원인일 때도 있고 심근경색, 뇌졸중처럼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때도 있어 환자 혹은 보호자에게 환자가 얼마나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지 묻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환자와 보호자 대부분은 두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다. 특히 술과 관련한 질문은 더욱 그렇다. 술을 마시느냐는 질문에 '술을 끊었다'고 단호하게 대답하나 자세히 물어보면 고작 며칠 동안 마시지 않았으며 그마저도 자신의 의지로 술을 끊은 것이 아니라 몸 상태가 악화하여 도저히 술을 마시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또 매일 소주 1명을 마시노라 대답한 사람은 실제로 매일 소주 2~3병을 마시고 매일 소주 2~3병을 마신다고 대답한 사람은 깨어 있는 시간 내내 취해 있는 사례일 때가 많다. 이렇게 환자와 보호자가 음주량을 정확하게 대답하지 않는 이유는 '자기합리화' 때문이다. 자랑스러운 일은 부풀리고 부끄러운 일은 숨기거나 조그맣게 알리려는 성향은 인간의 고유한 특징이다. 

또 인간은 이런 자기합리화와 함께 강한 호기심을 지닌다. 산 너머에 살고 있을 사람, 바다 건너에 자라는 식물에 대한 궁금증부터 시작하여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이유와 낮과 밤이 교대하고 계절이 바뀌는 방법까지 인간의 호기심은 끝이 없다. 응급실을 찾은 환자와 보호자도 마찬가지다. 왜 그런 질환이 발병했으며 어떻게 치료할 것이며 치료의 결과로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은 무엇인지 환자와 보호자의 물음은 끝이 없다. 의사가 그런 물음을 해결하지 못하면 환자와 보호자는 해답을 찾으려고 유사의학에 의존하거나 인터넷의 근거 없는 정보를 따른다. 

그래서 응급실에서 진료하는 의사에게 소통하는 능력은 아주 중요하다. 교육 수준, 직업, 사회경제적 수준, 종교, 성별, 나이 같은 개별적 특징과 앞서 언급한 자기합리화란 인간의 공통적 특징을 충분히 감안해야 환자와 보호자로부터 치료에 꼭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 환자가 마주한 의학적 상황을 환자와 보호자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인간은 호기심이 강한 존재라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자칫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 사이에 오해가 쌓이고 큰 감정의 골이 생겨 비극으로 치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앞서 언급했듯, 환자와 보호자가 유사의학과 음모론에 휘둘릴 가능성도 있다. 

따지고 보면 COVID-19 대유행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도 '소통의 부족'이 만든 재앙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기관과 전문가 집단은 처음부터 정보를 비교적 투명하게 공개했고 적극적으로 설명했으나 평범한 시민이 쉽고 정확하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적지 않았다. 바로 그런 틈을 음모론 지지자와 선동가가 파고들어 방역과 백신을 둘러싼 온갖 논란을 만들었다. 

나아가 의사 집단이 평소에 마주하는 많은 오해 역시 대부분은 '소통의 부족'이 원인이다. 가까운 과거만 봐도 그런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2020년 여름 '정부의 공공의대 설립 추진과 그에 반발한 의사들의 파업', 최근에 불거진 '의사면허 관리 강화법' 등등 모두 ‘소통의 부족’으로 인해 상황이 악화했다.

공공의대 법안과 의사면허 관리 강화법, 모두 인기몰이에 집중한 몇몇 정치인과 시민단체로 인해 과도하게 관심을 받았지만 정작 시민이 누릴 현실적 이익은 크지 않으면서 의사의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그런 부분을 시민과 소통하여 알리는 것에 실패해서 큰 곤경을 겪었다. 심지어 해당 법안의 문제를 알리는 과정에서 의사 집단이 선택한 '전교 1등 카드뉴스'나 ‘코로나19 예방접종 보이콧 협박’ 등은 일반 국민들로부터 반발을 불러오는 부작용을 낳았다. 시민에게 공감과 지지를 호소해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우월한 태도로 훈계하고 심지어 전문가의 특수한 지위를 이용하여 일반 국민을 협박한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의료계가 소통에 한층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진료할 때 좋은 설명은 온갖 의학용어를 사용하여 의사인 내가 만족하는 장광설이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가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간결한' 문장이다. 마찬가지로 COVID-19 대유행 같은 의학적 문제든, 공공의대와 의사면허 관리 강화법 같은 제도적 문제든, 여론을 이끌려면 의사인 우리의 답답함을 후련하게 해결하는 표현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물론 그런 표현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일, 그러니까 평범한 시민과 소통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필자도 의학에세이를 비롯하여 몇 권의 책을 내면서 그 때마다 독자의 뜨거운 반응을 기대했으나 작가 자신이 만족하는 '좋은 글'과 많은 사람이 감동하는 '멋진 글'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을 좁히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작가와 독자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것을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의사와 환자, 의사와 평범한 시민 사이에 존재하는 소통의 간격을 줄이는 것도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 틀림없고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필자도 의학에세이를 비롯한 글쓰기를 통해서 그런 소통의 간격을 줄이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창간 61년을 맞이하는 의사신문이 이런 의사와 시민의 소통강화에 한층 큰 몫을 담당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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