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의 이익, 진료의 이익
소송의 이익, 진료의 이익
  • 전성훈
  • 승인 2021.03.2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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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14)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소송이라는 제도는 매우 오래되었다. 인구가 늘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많은 경우 분쟁은 피를 불러왔다. 그래서 피를 흘리는 것을 막기 위해 권위 있는 자의 판단이라는 형식을 빌어 분쟁을 해결하는 소송이라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사람들이 소송을 하는 이유는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화가 없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송을 하는 이유는 간단히 말해 물건(화폐제도 도입 이후에는 ‘돈’)을 받아 내거나, 나에게 피해를 끼친 놈을 벌 받게 하거나, 이 남자/여자와의 지긋지긋한 생활적 결합을 끝내기 위한 것이다.
 
소송은 사회적 제도이고, 따라서 소송을 하려면 사회적 비용(돈, 시간, 노력)을 치러야 한다. 따라서 소송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은, 소송에 치러야 할 비용과 소송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비교하게 된다. 그래서 소송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지 않다면 대부분은 소송을 통한 문제 해결을 포기한다. 그리고 이것은 상식적인 결정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이익 없는 소송이 될 것으로 판단되어 변호사가 소송을 포기할 것을 권유한 경우에도, 소송의 이익에 상관없이 꼭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의뢰인이 있다. 아래와 같은 경우도 그러한 사건이다(이 사건은 서울지방변호사회보에 실린, 다른 변호사님이 수행하신 실제 사례이다).
 
A는 조현병 환자인 30대 아들 B를 둔 노모였다. 조현병의 증상은 다양하지만, B는 공격성과 폭력성이 주로 가족에게 한정되어 표출되는 독특한 환자였다. 이미 고등학생 때부터 아버지와 누이의 목에 식칼을 들이댈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지만, 가족으로부터 이러한 위급상황을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는 매우 침착하게 대응하여 정상적으로 보였고, 오히려 경찰관이 신고한 어머니에게 ‘아들을 신고하다니 계모 아니냐?’라고 할 지경이었다.
 
문제된 이 사건이 발생하기 며칠 전부터도, B는 A에게 ‘죽어! 못 죽겠으면 내가 죽여줄까?’라고 하면서 증상이 심하게 악화되고 있었다. B의 증상이 극심해 지자 A는 늦은 밤에 신발도 제대로 못 신고 경찰서로 뛰어가 도움을 청했다. 경찰관은 사고가 발생한 것이 아니어서 해 줄 것이 없다고 했다가, A가 절대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티자 결국 아들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기로 했다.
 
다음날 오전 경찰관, 구급대원, 사회복지사 등이 B를 입원시키기 위해 모였다. B를 구급차량에 태운 뒤, A는 자신의 차로 따라가려고 했다. 최근 B의 상태를 보았을 때 B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B는 너무 멀쩡해 보였고, 그러자 경찰관은 A에게 B와 함께 구급차량에 동승할 것을 강권했다. A는 한사코 거부했지만, 이번에는 구급대원, 사회복지사까지 합세하여 A에게 동승을 강권했다. 실랑이가 계속되다가, 강권에 못 이겨 A는 구급차량에 동승했다. 그리고 B는 구급차량 안에서 주머니에 숨겨두었던 칼로 A의 목과 얼굴을 베었다.
 
A를 수술한 의사는 단 1㎜만 옆을 베었더라도 A는 사망했을 것이라고 했다. A는 목숨은 건졌지만, 얼굴에 긴 창상이 남았고 입이 돌아갔으며 청력도 손상되었다. 아들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자신은 목숨은 건졌으니 A는 만족했을까? A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호소를 흘려듣고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 경찰관, 구급대원, 사회복지사가 그들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A는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했다.
 
결코 순탄치 않았던 긴 재판 끝에 A의 청구는 일부 받아들여졌다. 얼마 되지 않는 액수였지만, A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단 한 명의 판사님이라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 주셔서 너무 기쁘다. 앞으로 조현병 환자의 가족들이 나와 같은 고통은 겪지 않았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당초 청구금액도 크지 않았기에 ‘이익 없는 소송’이 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A는 비상식적인 결정을 했고, 변호사는 의뢰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비상식적인 결정에 기꺼이 조력했다.
 
이렇게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결정의 이면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고, 뉴스 몇 줄로 전달되는 것처럼 세상사는 간단하지 않다. 대부분의 세상사에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음에도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상사 대부분은 최종적으로 ‘돈’으로 정리되어야 하므로, 수많은 ‘사연’을 ‘숫자’로 정리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논의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이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조력하기 위해 전문가인 변호사가 존재한다.
 
그런데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거나 빨리 얻기 위해, 누군가는 손쉽고 비겁한 방법을 취한다. 그것은 자신을 피해자로, 상대방을 가해자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선한 사람’이라고 말하면 자신을 검증할 것이기에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대신 ‘상대방은 나쁜 사람’이라고 몰아간다.
 
고 임세원 선생님은 정신질환자에게 피해를 입어 안타깝게도 유명을 달리했다. 그로부터 2년도 되지 않아 똑같은 사건이 또다시 발생하여 다른 정신의학과 의사도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정신의학과 의사들이 대책 마련을 요구하면서 진료를 거부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정신의학과 의사들은 ‘자신의 안전’이라는 당연한 이익을 앞에 두고도 ‘그래도 진료한다. 우리는 의사다’라는 의연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의사들은, 아니 거의 모든 의사들은 이처럼 ‘진료의 이익’을 고려하여 진료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의사들이 ‘진료의 이익’, 심지어 ‘돈’을 저울질하며 진료한다는 근거 없는 의심들은 유령처럼 온라인을 떠돌아다닌다. 그리고 이런 의심들에 부추김 받아, 의사들을 ‘나쁜 놈’으로 전제하는 여러 의료 관계 법안들이 발의된다.
 
‘나쁜 놈 프레임’으로 복잡한 논쟁을 회피하려는 방식은 그 자체로 비겁한 것이고, 사회적으로 볼 때에도 필수적인 논쟁을 일종의 시간낭비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사회가 가져야 할 건전한 ‘나이테’를 만들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이제 자타공인 선진국이다. 향후 의료 관계 법안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는 ‘나쁜 놈 프레임’을 벗어난 상식적인 논의가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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