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게'를 살리려면
뒤집힌 '게'를 살리려면
  •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 승인 2021.03.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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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역 2번 출구' 〈8〉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역주행’은 위험천만한 불법행위지만 가요계에서만큼은 색다른 의미다.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노래가 어떤 계기로 인해 갑자기 새로운 유행을 타는 현상을 말한다. 요사이 가수 아이유가 10년 전 불렀던 <내 손을 잡아>란 곡이 음원 차트에서 맹렬히 역주행하고 있다.

아이유가 생애 처음으로 작사 작곡해서 차승원, 공효진 주연의 2011년 드라마 <최고의 사랑> 삽입곡으로 썼던 상큼한 노래다. 그 뮤직비디오 중 “사랑이 온 거야. 너와 나 말이야. 네가 좋아, 정말 못 견딜 만큼”이란 가사 부분의 동영상이 짧게 편집되어 SNS에서 젊은이들의 애정 고백용으로 공유되기 시작한 게 폭발적 역주행의 계기인 것 같다. 어쨌든 아이유는 이 노래에서 끊임없이 외친다. ‘마음 가는 그대로, 지금, 그냥’ 자기 손을 잡으라고. 

누군가의 손을 잡는다는 것. 형식적인 악수 말고 오랜 벗이나 연인의 손을 꼬옥 쥐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물리적인 감촉을 넘어 뭔가 특별하고 신비한 에너지가 오고 간다는 것을. 그 에너지는 예외 없이 서로의 심장에까지 도달한다. 이런 경험이 제법 쌓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문구가 있다.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 80년대 대학로에서 혜화동으로 향하는 골목에 있었던 작은 카페의 이름이다.

당시 의대생들의 아지트였고 우리는 그곳을 줄여서 <손마음>이라 불렀다. “이따가 수업 끝나고 <손마음>에서 만나”라는 게 아주 흔한 인사였지만 그 이름에 깃든 따뜻한 위로와 든든한 믿음을 사람들로부터 체험한 것은 철이 좀 더 들고 나서였다. 물론 소설 <은교>의 명문장 ‘남자에게 연애는 감각으로부터 영혼으로 옮겨간다’의 의미를 깨달은 것도 그때였고.

서론이 좀 길어졌지만 말하고 싶은 본론은 빈센트 반 고흐가 폴 고갱과 룸메이트로 함께 살 때 그렸다는 ‘게(crab)’ 그림 이야기다. 요리는 고갱이 도맡았고 고흐는 시장에서 이것저것 식재료 사 오는 일을 주로 했다고 한다. 그러니 가끔 어물전에서 사다 먹었을 게를 모델로 정물화 한 번씩 그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첫 번째는 게 한 마리를 그렸고 그 작품의 제목은 ‘뒤집힌 게(Crab on its Back)’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로 비슷한 그림을 그렸을 때 그는 게 한 마리를 더 그려 넣었고 ‘두 마리 게(Two Crabs)’란 제목이 붙었다. 이번엔 뒤집힌 한 마리 옆에 온전한 자세로 웅크린 게 한 마리가 나란히 있다. 첫 번째 그림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이, 두 번째 그림은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다.

미술평론가들은 뒤집힌 게를 ‘죽음’으로 해석한다. 뒤집혔다가 다시 몸을 돌려 원위치로 갈 수 없는 게는 움직이지 못해 결국 그 자리에서 버둥거리다 잡아먹히거나 말라죽을 운명이다. 뒤집힌 게는 당시 절망에 빠져있던 빈센트 자신이고 옆에 올바로 서 있는 게는 그의 동생 ‘테오 반 고흐’를 의미한다는 설이 유력하다. 정신병에 걸린 자신을 평생 돌봐주며 수백 통의 살뜰한 편지를 주고받던 동생 테오를 형은 어쩌면 그림에서나마 바로 곁에 두고 싶었나 보다.

고흐의 뒤집힌 게 그림은 몇 년 전 대한민국에서 반짝 주목을 받았다. 여당의 유력 여성 정치인이 그 그림을 들고나와, 훌렁 뒤집혀 복원력을 잃었고 도저히 자생하기는 힘들어 보이는 게가 마치 우리나라의 검찰 같다고 SNS와 방송에서 일갈했기 때문이다. 난 그때 뒤집힌 게를 보면서 검찰보다는 우리 기관이 슬며시 떠올랐다. ‘암(癌)’이란 영어단어 ‘cancer’의 어원이 ‘게’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karcinos’고 우리도 과거에 게 그림을 기관의 로고(logo)로 썼던 적이 있다. 서양인들이 즐겨 따지는 12개 별자리 중 게자리 역시 ‘Cancer’라 일컫는다. 바로 그 ‘Cancer Center’인 우리 병원에도 몸이 뒤집힌 채 몹시 숨 가빠하는 직원들이 있는 게 눈에 보였던 것이다.

입사한 지 1년을 채 못 채우고 사직서를 던지는 간호사들, 밤낮 없는 업무에 치여 극도로 예민해진 전공의들, 쏟아지는 민원 때문에 장기휴직을 고민하는 대민업무 부서원들. 곳곳에서 신음이 들려왔고 힘껏 몸을 돌려 한시바삐 자세를 바로잡지 않으면 뒤집힌 게처럼 언제 위태로운 지경에 이를지 모르는 직원들이 꽤 많아 보였다. 그때부터 나는 고흐의 게 그림을 슬라이드로 준비해서 신규 간호사 오리엔테이션, 전공의 워크숍, 직무 연수교육 등등을 쫓아다니며 청중들에게 보여주었다.

“우리 주변을 한번 둘러봅시다. 이 그림의 게처럼 뒤집혀서 발버둥 치고 있는 동료들이 보이시나요? 혹시 어쩌면 자신이 이런 상태인가요? 이들을 살리고 또 내가 살아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손을 내밀자고 제안했다. 뒤집힌 게는 스스로 복원력을 회복하기 어려워도 누군가 내미는 손이 있다면 그걸 붙잡고 다시 몸을 바로 세울 수 있다. 힘들어하는 동료들에게 적극적으로 먼저 손을 내밀고, 또 내가 괴로울 때 주저 없이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청한다면 모두가 훨씬 쉽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꼬옥 맞잡은 손은 이내 마음까지 연결되어 삶의 희망과 용기가 된다. 나는 우리 기관이 공릉동의 거대한 <손마음> 카페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그 카페에 어울리는 음악은 단연 아이유의 <내 손을 잡아>가 될 것이다.

‘느낌이 오잖아 떨리고 있잖아 / 언제까지 눈치만 볼 거니 / 네 맘을 말해봐 딴청 피우지 말란 말이야 / 네 맘 가는 그대로 지금 내 손을 잡아’

잠시 시간을 내서 스마트폰으로라도 이 역주행에 동참해 보자. 아 좋다. 젊어지는 기분, 그리고 따뜻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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