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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선거를 하는가
우리는 왜 선거를 하는가
  • 전성훈
  • 승인 2021.03.16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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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13)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선거에 참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선거권을 몇 살부터 부여하느냐 하는 정도만 쟁점이다. 모든 선거에서 남성도 여성도, 부자도 서민도, 서울사람도 제주사람도 똑같이 1표를 행사하고 1표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세상에 ‘당연히’ ‘그냥’ 되는 것은 없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지금은 당연히 여기는 여성참정권이 인정된 것은 100년밖에 되지 않는다. 최초의 국가총력전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에서 각국의 남성들이 대규모로 징집됨으로써, 후방의 군수품 생산, 보급, 행정 업무 등에 인력이 부족하게 되었다. 그러자 공장, 기업, 관공서 등에 여성들을 투입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통해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형태로 국가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후에야 여성참정권은 인정되었다.

조금 더 이전으로 가보자. 초기 선거제도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상당한 액수 이상의 재산 보유자만 참정권을 가졌다. 영국 최초의 노동자 운동인 ‘차티스트 운동’에서 요구한 것은 보통·비밀선거, 선거구 평등화, 의회의 매년 소집, 피선거권의 재산요건 폐지 등이다. 지금 보면 모두 당연한 것들이지만 당시에는 ‘초초초급진적인’ 주장으로 매도되었고, 이를 위한 운동은 탄압되고 처벌되었다. 50년 이상 싸운 끝에, 별다른 재산 없는 서민도 투표할 수 있는 보통선거 제도는 여성참정권보다 불과 50년 앞서서 도입되었다.

세상에 이유 없이 생긴 결과는 없다.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 역시, 최초에는 모든 전문가단체가 그러했듯이, 대의원총회에서의 간선제였다. 그러다가 2000년 의약분업 이후 보다 강력한 투쟁을 위해 회원들의 강력한 결집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2001년 직선제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이상은 높았지만 협회가 전국에 기표소를 설치하고 관리할 능력이 없었기에, 투표방법을 ‘우편투표’로 한정했다. 이에 대리투표 논란과 선거의 유효성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자, 2012년에는 대의원과 선거인단이 회장을 뽑는 간선제로 선거를 치렀다. 하지만 간선제 선거는 1회에 그쳤고, 다시 2014년부터 직선제로 변경했다. 그리고 금주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3일간 의사들은 자신들의 대표인 제41대 협회장을 뽑는다.

간혹 의사단체의 존재 의미나 회장의 차별성에 대해 의문을 가진 의사를 만난다. ‘의사단체가 하는 일이 뭐 있냐?’ ‘누굴 회장으로 뽑아도 거기서 거기 아냐?’ 대부분 젊은 의사이거나, 대학에 재직 중인 의사이다.

한 가지 사례를 보자. 서울특별시의사회는 2015년부터 교통방송(TBS) 라디오를 통해 국민들에게 의료정보를 제공하는 공익광고를 시행하고 있다. 한의사단체, 치과의사단체는 오래 전부터 공익광고를 하고 있었는데, 의사단체는 뒤늦게 뛰어든 것이다. 지지하는 의사들이 훨씬 많지만, ‘TBS가 정권편향적인 방송이기 때문에’ 왜 거기에 광고비를 주느냐면서 공익광고를 그만두라거나, 다른 방송사로 옮기라는 의사들도 있다.

일단 TBS가 정권편향적인 방송이라는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가정해 두고, 거꾸로 생각해 보자. 정권편향적인 방송을 듣는 정권편향적인 국민들이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의사에 대한 막연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는 것은 의사단체의 중요한 목표가 아닌가? 게다가 청취율이 높고 광고비가 다른 방송사의 1/2 수준이라면 어떤가? 정권을 싫어하는 회원이라면, 정권편향적인 방송에 자비로 광고하기는 싫을 것이다. 하지만 의사단체가 같은 이유로 이를 거부하거나 외면한다면 이는 얘기가 다르다.

회원의 정치적 자유를 위해 단체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정치적 중립을 의심받을 때 치러야 하는 정치적 대가는 크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3년 동안 뼈저리게 느껴왔다. 여권 유력인사 자녀의 부정입학 의심에 목청 높이는 것이 의사 회원에게 (정서적 쾌감 외에) 별다른 실익이 있을까? 협회장이 된다면 의정협의체에서 정부와, 그리고 ‘면허강탈법’을 발의한 국회와 바로 협상에 나서야 될 텐데 말이다.

또 한 가지 사례를 보자. 의사들에 대한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차기 협회장은 경륜가·협상가여야 한다는 의견이 73.3%로, 투쟁가여야 한다는 25.3%를 압도했다. 지난 3년간의 투쟁 우선 노선이 내부적인 지지를 얻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역시 13만 의사를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 회장의 머리카락은, 빡빡 밀어서 결기를 보여줄 때 쓰이기보다는, 멋지게 기름을 발라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을 만날 때 쓰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직업상 협상 중인 당사자를 자주 조력한다. 협상의 성패는 당연히 협상력의 크기에 영향받는데, 이때 대외적 협상력은 대내적 협상력에 좌우된다. 즉 외부적으로 협상에 성공하려면, 내부적으로 협상에 나선 대표가 회원들에게 ‘말빨’, 즉 회원들이 인정할 만한 경력과 맨파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의사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 그리고 이를 정부여당에 관철하기 위해 ‘협회장’ 직함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경력과 맨파워가 있는 회장과, 이것이 없는 회장은 직함만 같다. 의자가 사람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왜 최고의 전문가 단체인 의사단체가 전문적 이슈에 대해조차도 주도권을 쥐지 못할까? 그것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마저 빼앗길 까봐 10년째 말로만 ‘투쟁’을 외치면서 ‘수비’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원가의 90%가 참여하는 투쟁을 할 수 없다면,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국민들은 투쟁을 외치면서 수비만 하는 의사들을 보면서 ‘아직 의사들 살 만하네’라고 생각하고 있고, 이에 힘입어 정부여당은 의사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는 입법을 계속 시도할 것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시스템 안에 뛰어들어 개혁을 주장하고, 필요하다면 시스템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 지난 10년과 같이 참여와 개혁을 거부한다면, 의사들은 ‘삶아지는 개구리’가 될 것이다. 뒷다리가 성할 때에 뛰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 뛰어나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 고민하는 것이 의사단체와 협회장의 역할이다.

최선이자 유일한 개혁 수단은 선거뿐이다. ‘나는 왜 의협 회장을 뽑는가’를 한 번 생각해 보자. 그리고 휴대폰을 들어 투표에 참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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