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mortem pro medico
post mortem pro medico
  • 전성훈
  • 승인 2021.03.0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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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12)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post mortem”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after death”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자연사 또는 병사가 아닌 사망을 변사라 하고, 변사한 시체를 변사체라 한다. 변사에는 범죄가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변사체를 발견하면 이를 검사하여 사망원인을 밝혀야 한다. 외표검사 등 비관혈적 방법으로 시체를 검사하는 것을 검안, 시체를 해부하여 검사하는 것을 부검, 총칭하여 검시(檢屍, post mortem)라고 한다.
 
그리고 검시 참관은 연수중인 새파란 사법연수생을 지도검사가 골탕 먹이는 관행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카데바에 익숙한 의대생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책만 들여다 본 법대졸업생에게 변사체는 끔찍한 상대였기 때문이다.
 
의외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검시 제도는 600년이나 되었다. 조선 건국시부터 검시 제도가 존재했으며, 세종 24년(1442년) 중국 법의학서인 ‘무원록(無冤錄: 원통함을 없게 하는 책)’을 근거로 하여 정비되었다. 조선시대에 피살자, 변사자, 수감중 사망한 자 등을 검사하던 관원은 검관(檢官)이라고 했다. 검시는 보통 2회 시행되어 ‘크로스 체크’ 되었다. 만약 두 검시 결과가 일치하지 않으면 3검, 4검까지 시행하는데, 5검까지 한 사례도 있었다. 이미 매장된 경우에는 검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필요한 경우 무덤을 파고 시체를 꺼내어 검시했다. 검관들은 검시 결과를 1436년에 배포된 기준 양식인 검시문안(檢屍文案)으로 정부에 보고했다.
 
또 한 번 의외일 수도 있겠지만, 조선시대에 검시는 아주 철저하게 이뤄졌다. 현재 보존되어 있는 조선말기 자료로 확인되는 것만도 10여 년간 572건이다. 인구가 1/3도 되지 않고, 국가의 행정력도 비교도 되지 않던 시기에, 1년에 50건 정도의 검시가 이뤄졌던 것이다. 억울한 죽음이 없게 하겠다는 조선 건국자의 약속은, 이와 같이 500년 이상 진지하게 지켜졌다.
 
대한민국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충분치 못한 부분도 있다. 그 중 하나가 검시 제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검시 제도가 왜? 국과수가 알아서 잘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제 우리도 과학수사 하고 있지 않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많이 부족하다. 2013년의 ‘지향이 사건’을 생각해 보라. A녀는 20살에 결혼하여 지향이를 낳았다. 곧 남편과 파경을 맞은 A녀는 지향이를 데리고 나와 다른 남자와 동거를 시작했고, 동거남의 아이를 또 임신한다. 지향이를 잘 돌보지 않던 A녀는, 지향이가 두 번이나 넘어져서 머리에 충격을 크게 받았고 이마에 탁구공만한 혹이 나고 구토까지 하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무슨 이유인지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결국 지향이는 의식을 잃었고, A녀는 그제서야 병원에 급히 데려갔지만 지향이는 ‘급성 외인성 뇌출혈’로 사망했다.
 
이런 경우 당연히 검시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A녀와 동거남은 검시 없이 지향이를 화장할 수 있었다. 이는 어떤 개인병원 의사가 25만 원을 받고 지향이의 사망원인을 ‘단순 뇌출혈’로, 사망의 종류는 ‘병사’로 기재한 시체검안서를 발급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묻힐 뻔한 지향이 사건은, 지향이 할아버지의 친구가 경찰에 알려 수사가 시작됐고, 결국 A녀는 유기치사죄로 징역 4년을. 의사는 허위검안서작성죄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2016년에도 충북 증평에서 80대 노인이 사망하자 병사로 판정된 후 장례까지 마쳤지만, 이후 유족들이 CCTV 영상을 확인하면서 노인이 누군가에게 살해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사건이 있었다. 이런 사건이 벌어진 이유는, 시체검안서를 (명의가 기재된 의사가 아닌) 대진의가 작성하면서 제대로 살피지 않고 사망원인을 ‘알 수 없음’, 사망의 종류를 ‘병사(자연사)’라고 기재했기 때문이다.
 
2016년에 발각된, 2년 반 동안 전체 수용인의 10%인 129명이 사망한 ‘대구시립희망원 사건’은 어떤가. 추후 관계자 진술 등으로 파악된 실상에 따르면 수용인들의 사망원인은 다양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들의 사망원인은 예외 없이 ‘병사’로 판정되었다. 심지어 독감에 걸린 수용인이 증상이 악화되자 3차 의료기관(대학병원)으로 보내졌는데, 패혈증으로 발전하여 악화되자 2차 의료기관으로 전원되는 믿기 힘든 일도 벌어졌지만, 검안의는 아무 잘못도 지적하지 않았다.
 
위 사건에 연루된 의사들은, 범죄 관련성을 충분히 살피거나 확실하지 않다면 부검을 의뢰하지 않고, 사망원인을 쉽게 ‘병사’로 기재하는 실무 관행에 기대었기에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개인적 잘못보다 더 심각한 제도적 문제는, 시체검안서가 발급되는 경우 대부분 수사기관이 이를 의심하지 않고 검시를 생략하게 되므로 시체검안서는 극히 중요한 서류임에도, 이를 민간 영역에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3만 원이라는 어이없는 보수와 함께 말이다.
 
조선시대만도 못한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가칭 ‘검시법’을 제정하여 검시의 대상, 검시를 전담하는 법의관의 직무 범위와 권한, 유가족의 비용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공시소(morgue)의 전국 설치 등을 규정할 필요가 있지만, 이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근무 중인 법의관(의사)을 대폭 충원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일 텐데, 많지 않은 보수에 1년에 300건을 검시해야 하는 열악한 근무 여건으로 의사들은 지원을 꺼린다. 그것이 53명밖에 되지 않는 정원의 절반 정도밖에 충원되지 않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보건복지부 역시 ‘검시관 인력에 충원될 수 있는 법의학, 병리학, 해부학 전공의 숫자가 굉장히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대책 마련을 미루고 있다.
 
상식적인 처우와 독립적 권한을 보장한다면 책임감 있고 지적 호기심이 강한 우리나라 의사들이 이를 마다할 리 없지 않은가. 한해 3만 명의 변사자 중 9,000건의 검시를 수행하는 법의관들은 우리나라 과학수사의 최일선에 서 있다. 그리고 과학수사는 인권보호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우리가 수많은 희생과 함께 쌓아온 아시아 최고의 인권국가라는 명성을 지켜나가기 위해, 검시(post mortem) 제도가 의사를 위해(pro medico) 개선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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