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 통한 추가접종이 "대박 사건"? 의료계 "이대목동병원 교훈 잊었나?"
분주 통한 추가접종이 "대박 사건"? 의료계 "이대목동병원 교훈 잊었나?"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1.03.0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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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백신 폐기량 최소화되도록 배분", 정기현 NMC원장 "대박 사건 터질 듯"
미국 등 관련내용 알고도 시행 안 해···잔류량 부족, 의료진 스트레스 가중 등 우려
(사진=뉴스1)
(사진=뉴스1)

정부가 국내산 특수 주사기를 사용해 코로나19 백신 한 병(바이알)당 권고 인원보다 1~2명 더 추가 접종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효율적인 접종을 통해 조기에 백신 접종인원을 보다 늘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를 중심으로 아직 백신 자체의 안전성도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효율성을 따질 경우 자칫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 "최소잔여형 주사기로 추가 접종 가능"

국내에서도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 등 해외 제약회사들이 개발한 백신 접종이 지난 달 26일 오전 9시부터 시작됐다. 전 세계에서 104번째, 상대적으로 늦게 접종이 시작됐지만 정부는 접종 일정을 서둘러 오는 11월까지 전 국민에 '집단 면역'을 형성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최근 정부는 권고 인원 수보다 많은 접종이 가능하다며 이를 통해 조기에 예상보다 많은 인원의 접종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특수 주사기인 최소잔여형 주사기(Low Dead Space·LDS)를 사용하면 폐기되는 백신의 양을 줄여 한 병당 접종 권고 인원 수보다 많은 인원 수에 접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예방접종 대응추진단(추진단)은 지난달 27일 브리핑에서 이같은 내용의 백신 잔여량 처리 방침에 대한 공문을 전국 요양병원과 보건소 등 접종 진행 현장에 발송했다고 밝혔다.

현재 권고사항에 따르면 국내에 도입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경우 한 병당 10명, 화이자 백신의 경우 한 병당 5명에게 접종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11~12명에게, 화이자 백신은 6~7명에게도 접종이 가능하다. 

백신 접종에 쓰이는 일반적인 주사기는 피스톤와 바늘 사이의 공간인 잔류 기준 규격이 0.07㎖ 이하이지만, 국내 기업들이 개발한 최소잔여형 주사기는 이 공간을 최소화해 0.035㎖ 이하로 줄였다. 잔류양을 절반 이하로 줄여 백신 접종 인원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을 처음 제기한 곳은 국립중앙의료원(NMC)이다. 지난 27일 오전 화이자 백신 첫 접종 현장에서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 원장은 정세균 국무총리에게 “대박 사건이 하나 터질 것 같다”며 접종 권고 인원 수보다 많은 인원의 추가 접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후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한 바이알당 10명분이 들어있어 남는 폐기량 관리가 중요하다"며 "폐기량이 최소화되도록 백신을 배분하고, 만약에 백신접종을 못하게 되면 보건소에서 모아서 접종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의료계 "업무 과부하 상황서 스트레스 가중될라"

하지만 이같은 정부의 입장에 현장의 의료진들은 강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우선 백신의 잔류량이 예상보다 충분하지 않을 수 있고, 현장에서는 외국 같으면 의료진 10명이 담당할 접종량을 우리나라는 3명이 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업무가 과부하된 마당에 추가 분주로 인한 의료진의 스트레스까지 가중되면 자칫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앞서 6명 분량이 부정확하게 추출되면 7번째 분량은 충분히 확보되지 못할 수 있고 6명을 접종하고 남은 분량이 0.3㏄인지 아닌지도 눈으로 정확히 알 수 없다. 바이알당 접종자 수를 최대로 고정해 놓고 접종을 하면 안 된다”며 “백신 분주를 담당하는 의료진의 스트레스도 생각해야 한다. 오류가 생길 수 있고 (의료진의) 높아지는 피로는 또 다른 사고를 만든다”고 지적했다. 

백신 접종 권고 인원 수보다 실제론 더 많은 인원에게 접종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보다 먼저 접종을 시작한 외국에서 이러한 보고가 나왔지만 실제로 시행하지는 않았다.

지난해 12월 화이자 백신 접종을 세계 최초로 시작한 미국의 의료진들은 한 바이알당 최대 7회까지 추출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고했고 미 식품의약국(FDA)이 이 사실을 검증했다. 미 FDA는 “방부제가 없기 때문에 여러 병을 모아서 사용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미국뿐 아니라 벨기에, 핀란드, 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에서도 이미 추가 접종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보고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우리보다 먼저 백신 접종을 시작한 외국에서도 추가 분주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이를 현장에 적용하지는 않은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미 FDA는 LDS 사용 시 7회분이 가능함을 알고 있음에도 지난 25일 개정한 화이자 백신의 사용 지침에서 1병당 6회분이 들어있다고 명시했다. 이는 경우에 따라 추가 접종이 가능한 잔류량이 충분히 나오지 않아 백신 효과를 떨어트릴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의협, 정부에 명확한 입장 요구하며 '권고사항' 발표

국내에서 이처럼 백신 접종이 시작되자마자 '주사의 쥐어짜기'로 인한 유효성 논란이 일자 대한의사협회는 2일 질병관리청장이 접종현장에 대한 혼란과 의료인력에 대한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다며 이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입장을 요구하는 한편, 백신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마련한 권고사항을 발표했다. 

의협은 “기존 독감 백신과 달리 1바이알당 여러 명을 접종하게 되어 있는 코로나19 백신의 경우 충분한 연습과정을 통해 한 명이라도 더 접종하도록 의료인들에게 압박감을 주는 것은 안전한 백신접종 투여가 중요한 현 상황에서 과유불급”이라고 지적했다. 

의협의 대정부 권고사항에는 ‘단순 분주량보다는 실제 투여량을 고려해야 한다.’ ‘아무리 훈련된 의료인이라도 주사기를 다룰 때 안전사고가 발생될 수 있으므로 섬세하고 신중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특히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 주장대로 백신 접종 주사기 분주가 실제로 이뤄진다면 지난 2017년 말 지질영양제 주사기 분주로 인해 발생했던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이 재연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당시에도 효율성과 경제성을 이유로 암암리에 이뤄지던 현장의 분주 관행이 결국 의료사고로 이어졌고, 그 책임은 오롯이 의료진이 지게 됐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도 의료진들이 관행대로 주사기 분주를 하는 과정에서 균이 침투해 오염이 일어난 것이 원인으로 발표됐다”며 “정부는 과거 분주로 인해 어린 생명들을 잃는 뼈아픈 사태를 경험하고도 (자칫) 더 심각한 인명 피해 사태를 일으키려 하고 있다. 만약 분주로 인해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과거와 마찬가지로 의료진들에게 책임을 일방적으로 전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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