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섯다’ 중독은 의사에게로
‘섯다’ 중독은 의사에게로
  • 전성훈
  • 승인 2021.02.0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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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10)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이른바 구한말은 대혼란기였다. 강제로 개방된 아시아 끝의 ‘미지의 나라’로 서양 각국의 외교관, 선교사, 여행가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다양한 시각에서 우리민족의 특징에 대한 기록을 남겼는데, 다음 세 가지는 예외 없이 공통되었다.

체구가 크다. 대식가이다. 도박을 좋아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쉽게 수긍할 것이다. 우리는 현재에도 아시아 46개국 중 두 번째로 키가 크다. 그리고 우리는 3만 개의 치킨집을 가진 나라이다.

그러나 세 번째에는 갸우뚱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도박을 그렇게 좋아하나?’ 그렇다. 도박과 동의어인 ‘노름’이 ‘놀다’의 명사형인 ‘놀음’에서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세기말 외국인들의 눈에도 한눈에 띄었던 우리의 도박 사랑은 그 뿌리가 깊다.

대표적으로 삼국시대의 저포(윷놀이)는, 인도의 파치시(pachisi)라는 게임이 중국으로 통해 한반도와 일본에 전래된 것이다. 그런데 저포는 강한 도박성 때문에 중국에서는 놀이가 아닌 도박으로 간주되었고, 일본에서는 아예 금지된 반면, 삼국에는 빠르게 보급되어 귀족과 서민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윷 진 아비 같다’라는 속담은 ‘내기에서 자꾸 지면서도 또 하자고 달려드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인데, 이 역시 윷놀이의 강한 도박성 때문에 생긴 속담이다.

고려시대에는 역시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화를 거친 장기가 전래되는데, 우리는 다른 놀이들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도박화했다. 고려가요 ‘예성강곡’은 고려인 남편이 중국인 상인과 내기장기를 두다가 미모의 아내를 빼앗길 뻔한, 애절하고도 한심한 노래이다.

심지어 조선 초기에는 이런 사건도 일어났다. 성종 21년 관료들이 궁궐에서 술내기를 걸고 쌍륙(주사위놀이)을 하다가 싸움이 벌어졌는데, 싸우다가 화로를 발로 차는 바람에 불이 나서 결국 태조와 태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홀라당 타버린 것이다(!). 관료고 나발이고 당연히 목이 날아갈 사건이었지만, 같이 도박을 했던 사람 중에 왕실종친도 있었기에(!) 관료들은 파직되어 귀양만 가고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이런 우리의 도박 사랑은 조선 후기에 가면 혁명적 변화를 맞는다. 우리가 국사시간에 심드렁하게 외웠던 이앙법은 농업생산량을 100% 증가시켰다(당신의 월급이 100% 올랐다고 상상해 보라). 문제는 서민층의 주머니는 두둑해 졌는데, 놀거리가 마땅치 않았다는 것이다. 바둑, 장기, 윷놀이는 이제 지겨웠다. 게다가 농업생산 증대와 함께 화폐(상평통보) 보급이 늘어났기에, 도박금을 ‘장부’에 써놓았다가 끝나고 정산하던 방식이 ‘현금박치기’로 스릴 있게 변화되었다. 그리고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홀연히 ‘투전’이란 것이 조선에 전래되었다.

현대의 ‘섯다’와 거의 유사한 투전은, 간단명료한 방식, 강한 우연성, 빠른 승부라는 특징을 가졌기에 우리 기질에 딱 들어맞았다. 투전은 폭발적 인기와 함께 기존 도박들을 ‘싹쓸이’하고 순식간에 조선 도박계를 평정해 버렸다. 투전 열풍은 계층을 가리지 않았다. 정약용은 ‘관리가 공금을 축내고, 장교가 장물죄를 범하는 것은 대부분 투전 때문이다’라고 개탄했다. 사대부들이 투전에 빠진 심각한 폐해를 개탄하는 상소문이 올라가자, 정조는 ‘부모형제들은 안 말리고 뭐했느냐?’라고 묻는다. 조선 최고의 엄친아 정조는 도박꾼의 심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임금님, 그게 말려서 될 일인가요.

투전하는 자를 도적보다 중하게 처벌하겠다는 조정의 반복된 ‘투전 금지령’은 공허한 메아리였을 뿐이다. 그리고 1895년 갑오개혁을 통해 조정이 재차 투전을 금지하고 강하게 단속하자, 당시 일본인 거류지에 들어와 있었던 ‘화투’가 투전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최근 코로나 19로 인하여 ‘집콕’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온라인 도박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 따르면, 2020년 도박문제 상담자가 전년도에 비해 22%나 증가했고, 그 중 95%가 온라인 도박이라고 한다. 으슥하고 담배연기 가득한 골방에 모여서 도박을 하는 것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이제는 집안 쇼파에 편안히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도박을 하는 세상이다. 문제가 더욱 심각해 진 것이다.

개인이 도박장애에 빠지게 되는 원인은 쉽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최근의 여러 연구들은 적어도 그 결과로서의 도박장애는 단순한 습관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닌, 도파민 등 쾌락물질의 분비 및 조절과 관련된 뇌의 질병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도박장애(gambling disorder)를 질병으로 규정하고 있다.

흡연은 기호식품 섭취에 해당하는 개인적 행위지만 국가는 사회적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이에 개입하고 있고, 정부는 이를 보건의료적 문제로 보아 흡연/금연과 관련된 이슈는 보건복지부를 주무부처로 하고 있다. 도박 역시 즐거움을 위한 취미생활로서 개인적 행위지만, 지나치게 몰두하는 경우 사회적 부작용이 크기에 이 역시 국가가 개입하고 있다.

그러나 도박장애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매우 산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는 문화체육관광부, 강원랜드 중독관리센터는 산업통상자원부, 한국마사회 유캔센터는 농림축산식품부,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는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다. 이 중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는 이전의 ‘알코올상담센터’로서 알콜중독 대응에 중점을 두고 있어, 사실상 보건복지부는 도박장애 대응에서 빠져 있다. 한 마디로 도박장애를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 아닌, 상담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개인의 의지 문제’ 정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도박장애가 정신과적 질병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기존의 대응방법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상담 수준의 도움은 현재와 같이 다양한 경로로 제공하되, 상담을 넘어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이를 제공하는 프로세스를 의사단체 및 관련학회와 협의하여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정책 조율에 중점이 두고 있는 국무총리 산하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와는 별개로, 실질적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를 도박장애 대응 주무부처로 삼아야 한다. 이를 통해 산발적이고 중복적으로 운영되는, 그 효과가 의심되는 현재의 활동들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연예인이 심각한 얼굴로 ‘가족을 생각하세요’라고 권고하는 공익광고나, 단호하게 도박을 끊으라는 내용을 실소를 자아내는 멜로디에 실어 놓은 ‘단호박 송’을 열심히 트는 ‘정조식’ 접근방법으로는 도박장애는 근절될 수 없다. 도박장애는 질병이다. 그리고 질병은 의사가 다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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