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不癌) 산악회
불암(不癌) 산악회
  •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 승인 2021.02.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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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역 2번 출구' 〈4〉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양옥집 대문 앞에서 벨을 누르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다. 도저히 손이 닿지 않았기에 지나가는 소년에게 좀 눌러 달라 부탁했다. 노인의 사정이 딱해 보인 소년은 몇 차례 팔짝팔짝 뛰어서 간신히 벨을 눌러주었다. “띵동” 소리가 울렸을 때 노인은 갑자기 소년의 뒤통수를 때리며 이렇게 외쳤다. “야, 튀어!”

이 썰렁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노인의 이름은 최불암(崔佛岩)이다. 90년대 이른바 ‘허무개그’ 열풍을 일으켰던 최불암 시리즈 중 한 에피소드다. 벌써 팔순을 넘긴 이 노배우가 가끔 생각나는 건 그가 10년 이상 국토 구석구석을 누비며 풀어놓는 전통 밥상 이야기도 물론 좋아하지만 그보다 우리 병원 바로 옆에 그와 이름이 같은 ‘불암(佛岩)산’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 노원구와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에 걸쳐 있는 508미터 높이의 이 바위산은 정상의 봉우리가 멀리서 보면 부처님을 닮았다고 하여 ‘부처바위’란 뜻의 지금 이름이 붙었다는 게 정설이다. 불암산에 오르는 남쪽 입구에 ‘공릉산백세문’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데 아마도 노원구 공릉동쪽의 불암산 자락을 ‘공릉산’이라 일컫는 게 아닌가 싶다. 병원 내 방에서 공릉산백세문까지는 직선거리로 100미터가 채 안 된다. 직장 바로 옆에 가볍게 등산하기 좋은 산이 있으니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엔 가끔 병원 직원들과 휴일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했었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불암산이 왜 지금의 위치에 있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안내 팻말을 볼 수 있다. 원래 불암산은 화려한 금강산 그룹에 속한 봉우리였다. 조선왕조가 도읍을 정할 때 일단 한양을 선택하고 보니 북쪽에 북한산, 서쪽에 인왕산, 동쪽에 낙산이 자리 잡고 있어서 괜찮았는데 남쪽에만 그럴듯한 산이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불암산은 기왕이면 수도 한양을 대표하는 산이 되고 싶어 부리나케 달려왔지만 간발의 차이로 지금의 남산, 그러니까 목멱산에게 밀리고 말았다. 실망해서 돌아가던 불암산이 곰곰 생각해보니 금강산에 가더라도 배신자라고 왕따가 될 것 같았다. 마지못해 그냥 머물기로 했고 그때 발길을 멈춘 곳이 바로 지금의 장소다. 이런 사연 때문에 불암산은 전체적으로 서울을 등지고 있는 형세가 되었다고 한다.

전설만 놓고 보면 불암산은 부처님의 성정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공명심은 있으나 뭔가 우유부단하고 좀 소심한 느낌이랄까. 조선 초기 이후 잠잠했던 불암산의 공명심을 자극한 사건이 21세기에 또 한번 생겼다. 2009년 대한민국에서는 국립자연사박물관 유치를 위한 지자체들간의 경쟁이 뜨거웠다. 경기 화성시, 인천 강화군 등등 6개 지역이 경합을 벌였고 거기에 뛰어든 노원구는 불암산을 박물관 부지로 내어놓겠다고 발표했다. 졸지에 불암산은 중생대 쥐라기를 대표하는 기암괴석의 비경으로 자연사적 가치가 뛰어난 곳이기에 국립자연사박물관의 최적 부지라고 홍보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부족했을까. 갑자기 노원구는 방송인 최불암을 소환했다.

‘이름이 너무 커서 어머니도 한번 불러보지 못한 채 / 내가 광대의 길을 들어서서 염치없이 사용한 죄스러움의 세월, 영욕의 세월 / 그 웅장함과 은둔을 감히 모른 채 / 그 그늘에 몸을 붙여 살아왔습니다.’

최불암의 자작시 <불암산이여!>의 첫째 연이다. 이 시는 멋진 비석에 새겨져 불암산 등산로에 놓였다. 박물관 유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비장의 카드로 노원구가 최불암을 불암산 명예산주로 임명하고 시비 제막식 이벤트까지 벌인 덕분이다. 시를 통해 최불암은 본명인 ‘최영한’ 대신 불암산의 이름을 허락도 없이 오래도록 예명으로 사용한 데 대한 미안함을 노래했다. 하지만 노원구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 프로젝트는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더 지난 지금까지도 진도가 못 나가고 표류 중인 국가사업이 되어버렸다. 입신양명을 노리던 불암산의 두 번째 꿈 역시 그렇게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실망을 거듭한 불암산의 사기를 북돋워 주는 일은 뜻밖에 원자력병원에서 일어났다. 폐암 3기로 한쪽 폐를 절제했던 환자가 전이나 재발 없이 10년 이상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본 우리 흉부외과 전문의 한 분이 환자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수술 이후 날마다 꾸준히 하는 산행 덕분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신선한 충격을 받은 그 흉부외과 선생님은 아예 본인이 수술했던 폐암 환자들을 모아 산악회를 조직했다. 이들은 병원에서 가까운 불암산을 등산하기 시작했고 산악회 이름 역시 ‘불암 산악회’로 붙였다. 그런데 누군가의 아이디어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처바위’를 뜻하는 불암산의 원래 이름과는 한자를 달리했다. ‘아닐 불(不)’에 ‘암 암(癌)’, 그러니까 더 이상 암이 아니란 의미의 ‘불암(不癌)’ 산악회가 탄생한 것이다. 

폐암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모여 시작했던 불암 산악회는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점점 회원수가 늘어 현재는 대장암, 유방암 등 다른 암 환자들과 그들의 가족까지 수십 명이 동참하는 제법 큰 환우회로 성장했다. 코로나 사태로 사실상 모든 동호회 모임이 중단되기 전까지 불암 산악회는 의료진과 환자들이 정기적으로 산행을 함께하면서 건강도 챙기고 유용한 정보도 나누는 격려와 지지의 장이 되었다.

전설은 불암산을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산으로 묘사했고, 지자체들간의 과열 경쟁은 이 산을 어설픈 이벤트의 대상으로 만들었지만, 이곳을 오르며 발걸음마다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호흡마다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불암산은 뿌듯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불암 산악회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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