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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의료사고특례법도 좋지만 의사배상책임보험 도입이 먼저다
[기고] 의료사고특례법도 좋지만 의사배상책임보험 도입이 먼저다
  • 이인수 구로구의사회장
  • 승인 2021.01.29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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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의료사고 특례법’을 제정해달라는 청와대 청원이 올라왔다. 이와 관련해 생각해볼 점이 있어 글을 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는 당시 명의로 알려진 화타와 조조의 일화가 실려 있다. 화타의 형들이 질병 초기에 치료를 하고 병이 생기기도 전에 치료하는, 현대용어로 ‘예방의학’이나 ‘조기치료’ 개념이 있던 더 용한 의사였다는 얘기는 대부분이 아는 얘기다.

이에 비해 조조의 뇌병변치료를 위해 화타가 ‘개두술’을 권했던 이후 얘기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여기서 집중해야 할 부분은 자기를 죽이려는 걸로 오해한, 아마도 피해망상증이 생긴 조조가 화타를 감옥에 가두어 결국 죽였다는 대목이다. 

화타는 명의였지만 자신의 의술을 과신하고 곧이곧대로 말했다가 자신의 목숨도 부지하지 못했다. 이처럼 현명치 못한 처신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즉, 예나 지금이나 아무리 권위를 자랑하는 유능한 의사라도 오해로 인해 누명을 쓰고 투옥되거나 손해배상으로 파산 지경에 이르는 불행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 대한민국의 의사들은 굳이 ‘직언’을 하지 않더라도 자칫 감옥에 갇힐 위험에 처하곤 한다. 의료사고 발생시 과실이 없음을 법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민사 혹은 형사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은 때로는 무지와 오해, 심지어 금전적인 이유로 인해 빚어지기도 하지만 이를 통칭해 모두 ‘의료사고’라고 부른다.  

의료와 관련한 각종 소송이 잦은 미국에서도 의사가 중대과실도 없이 구속됐다는 얘기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의사배상책임보험(이하 의사배상보험)이라는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의사배상보험은 배상 의지를 입증하는 것이어서 의료사고를 일반상해 사건과 똑같이 취급해 의사가 구속되는 상황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는 자동차보험 가입자에 대해 교통사고시 중과실이 아니면 구속하는 경우가 드문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교통사고의 경우 보험가입이 전제된 자동차사고특례법이 선의의 운전자를 추가적으로 보호해주고 있다. 

일본의 사례나 교통사고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의료사고특례법 제정이 현실화되려면 진료의사가 먼저 의사배상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자구 노력이 전제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전제 없이 특정한 신분이나 계층에만 적용되는 면책권은 사실상 입법이 불가능하다. 

필자는 1998년 12월부터 내과개원의협의회 활동을 하면서 내과개원의를 위한 경호경비를 제공하는 의사배상보험을 기획해서 만들었다. 이듬해 3월엔 산부인과와 정형외과 등 다른 과에서도 각자 실정에 맞는 의사배상보험을 도입하게 되었다.

의사배상보험의 가입은 법률적 대응을 비롯한 경제적, 절차적 위험을 보험회사에 전가할 수 있는,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물론, 분만을 하는 산부인과나 사고율이 높은 바이탈과 등 상대적으로 높은 보험료 부담을 안고 있는 과 입장에서는 특례법을 통한 선처가 더욱 절실할 것이다. 

이번 특례법 제정 요구를 계기로 그동안 변화한 진료환경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의사배상보험을 도입한 지 23년이 지나는 동안 누군가 이를 개선해주기를 기대했지만 구의사회장을 맡아 다시금 현장을 돌아보니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는 달라진 환경에 맞게 소송 위험에 대한 보장을 강화하고 시대에 맞게 새로운 기능을 가미한 의사보험의 기획과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구체적으로 모든 의사의 보험료를 똑같이 책정한 일본의 예를 참고해 기존 의사배상보험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자동차보험에 책임보험과 종합보험이 있듯이 의사배상보험도 이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 이는 현재 의사조직의 최우선 목표가 되어야 할 의사의 신분 안정과 밀접히 관련된 이슈이기도 하다. 

의료계 내부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모든 의사가 책임배상보험에 가입하면 보험료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또 별도의 퇴직연금이 없는 개원의들을 위해 퇴직연금 기능을 추가한 의사종합배상보험을 만들어 필요한 사람만 들게 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이를 의사협회비와 함께 수납하도록 하면 회비납부율을 끌어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선 현재 개원의사회와 의협으로 분산된 의사 보험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의협이 책임보험을 맡고 지역의사회와 개원의사회가 역할분담을 한다면 의료계 내부 단합과 결속을 다지는 한편, 결과적으로 바이탈과의 부담을 줄여줘 동료의사들의 고통을 함께 해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직은 목표가 없으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모든 의사회 조직은 ①의사신분의 안정, ②조직역량 강화, ③회원편익 제공이라는 3대 목표를 달성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내부적으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불협화음을 내는 의사단체들을 규합하는 데 있어서 ‘교수-전공의-개원의’ 모두가 가입할 수 있는 의사배상책임보험의 도입은 이상의 3대 목표를 동시에 가능케 하는 ‘만능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의료사고특례법을 추진해 신분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것이다. 

 

◇ 필자 약력 
- 57년 서울생 내과전문의
- 고려의대/연대보건대학원병원경영학석사
- 애경내과원장/구로구의사회장
- 전)세계한인의사회설립준비위/사무총장
- 전)자유선진당 의료조직분과위원장
- 전)서울시의사회총무이사
- 전)내과/대한개원의협의회 무임소/사업/법제이사

 

※ 외부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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