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상하게 하는 감정
감정 상하게 하는 감정
  • 전성훈
  • 승인 2021.01.2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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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08)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감정’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뭐가 떠오르는가?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끼는 기분’, 즉 감정(感情)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법조인들은 대부분 ‘사물의 특성이나 참과 거짓, 좋고 나쁨을 분별하여 판정함’, 즉 감정(鑑定)을 떠올릴 것이다.

특히 재판에서의 감정은 ‘재판에 관련된 특정한 사항에 대하여 그 분야의 전문가가 의견과 지식을 보고하는 일’이다. 대표적으로 의료 감정, 즉 의료 소송에서 의사가 감정인으로서 전문적 의견을 제출하는 절차를 꼽을 수 있다. 그리고 감정의견은 재판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쉬운 예로 최근 의료계를 분노케 한 ‘장폐색 환자 장정결제 투여 사망 사건’에서 의사인 감정인의 의견이 같은 의사인 피고인의 구속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것을 들 수 있다.

이렇게 의료 감정은 피고인이 처벌될지, 피고에게 손해배상이 인정될지 등을 좌우하는 중요한 절차임에도, 현행 의료 감정 절차에 대해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다.

많은 의사들은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해 ‘나는 감정인으로 지정되어 있지도 않은데, 나하고는 상관없지 않나’라고 생각할 것 같다. 하지만 의사로 일하는 이상 의료 과오 소송의 피고가 될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이 때 반드시 거쳐야 할 의료 감정 절차가 불합리하다면 불합리한 판결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한 번 생각해 보자.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법조인들이 지적하는 현행 의료 감정 절차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법조인들이 입을 모아 지적하는 첫 번째 문제점은 이것이다: “너무 오래 걸린다.”

의료 소송에서 감정은 환자의 ‘신체’와 ‘진료기록’에 대해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원고 측이나 피고 측은 감정신청서와 감정사항, 즉 의사에게 물어보고자 하는 사항을 정리하여 재판부에 제출한다. 그러면 재판부는 이를 감정기관(종합병원급 이상)에 우편발송하여 감정을 촉탁한다.

이 중 신체감정의 경우 원고(환자)와 감정기관(의료기관)이 감정일정을 조율한 후 시행되므로, 적어도 언제쯤 회신 받을 수 있을지 예상이 가능하다. 편차가 크기는 하지만, 보통 3~4개월 정도면 감정의견을 회신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진료기록감정의 경우, 감정인에게 감정을 촉탁하고 서너 달이 지나서 이제 회신 받을 것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받은 것은 감정의견이 아니고 ‘바빠서 할 수 없다’, ‘해당 감정의가 휴직 중이다’ 같은 ‘반송 통지’이다. 이것을 보면 변호사도 감정(感情)이 상한다. ‘아니 이런 사유면 받자마자 반송하지, 왜 몇 달씩 들고 있어?!’

감정을 억누르고, 변호사는 다른 감정기관을 지정하여 다시 촉탁을 신청한다. 운이 좋으면 한두 달 안에 회신을 받을 수 있지만, 보통은 운이 좋지 않기에,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 변호사가 공들여 작성한 감정사항은, 감정기관의 무관심 속에 마치 탁구공처럼 똑딱거리며 여기저기를 오간다. 감정에만 3년 걸리는 의료 사건이 심심치 않게 있고, 이런 사건은 보통 재판 중에 판사가 바뀐다.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 판사는 가만히 있나? 가만히 있는다. 진짜로 그렇다. 판사는 감정이 지연되는 이런 상황에 이미 익숙하고, 무엇보다 감정의견 없이는 판결문을 쓸 수도 없으므로, ‘감정의견 회신되면 다시 합시다’라고 하고 재판 기일조차 잡지 않고 ‘신경 끈다.’ 기다리는 변호사의 목은 늘어나서 학처럼 된다.

법조인들이 지적하는 두 번째 문제점은 이것이다: “복불복이 너무 심하다.”

오랜 시간 기다려서 겨우겨우 받아본 감정의견이지만, 그 편차가 매우 심하다. 과도하게 충실한 경우 아무 문제되지 않으나, 과도하게 부실하다면 심각한 문제이다. 해당 전문과목의 전형적 이슈에 대해 물었음에도 ‘A질환일 수도 있고, B질환일 수도 있다’라고 답변하거나, (감정인의 전문과목이 아닌) 타과의 이슈이기는 하나 일반의도 충분히 답할 수 있는 ‘극히 원론적 내용’을 물었음에도 ‘답변할 수 없다’라고 답변하기도 한다. 이것을 보면 변호사도 매우 감정(感情)이 상한다. ‘이거 수련의가 대신 쓴 거 아냐?!’

이런 경우 변호사는 감정보완촉탁을 신청하거나, 사실조회를 보내 기존의 감정의견을 보충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 경우 첫 번째 문제점인 ‘세월아 네월아’가 반복된다. 그리고 기다리는 변호사의 목이 학을 넘어서 기린처럼 늘어난 후, 보충의견조차도 부실하게 회신되면, 드디어 변호사는 감정(感情)이 폭발한다. ‘재판장님, 감정인을 증인으로 신청하겠습니다!’

그럼 이런 상황이 오롯이 감정인의 탓인가? 그건 아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여, ‘너무 낮은 감정료’가 이런 문제점들의 근본원인이다. 신체감정료는 40만 원, 진료기록감정료는 60만 원인데, 감정인인 대학병원 교수나 전문의들의 노동가치에 비하면 너무 낮다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 이를 상식적 수준으로 현실화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감정료가 높아질수록 상대적으로 환자들에게 부담이 되므로 의료 소송에서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심화된다는 반론에 막혀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다른 상황의 ‘데자 뷰’ 같지 않은가? ‘수가 정상화’라는 상식적 요구가 ‘국민 부담 증대’라는 반론에 막히는 상황 말이다.

의협은 ‘의료 감정은 의사의 책임 하에’는 당연한 명제와, 의협에 의뢰되는 감정건수가 연간 2,500건에 이르는 현실을 반영하여 2019년 의료감정원을 설립했다. 신설된 기관은 최초에 안착이 어려운 법인데, 현재까지 무난하게 운영되고 있어 매우 다행스럽다. 하지만 공공기관인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역시 산하에 ‘의료사고감정단’을 두고 감정단 내에 10개의 감정부, 9인의 상임감정위원을 두어 감정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감정업무 확대·강화를 위하여 인력과 예산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법률까지 제정하여 설립한 공공기관이 없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므로 의협이 설립한 의료감정원은 공공기관인 의료분쟁조정중재원과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밖에 없다. 신속성, 전문성, 공정성을 강화하고, 나아가 국민에게 더 편리하고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객관적 수치로(evidence-based) 증명함으로써, ‘의료 감정은 의사단체에게 온전히 맡겨라’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기대한다. 그 때가 되면, 더 이상 감정(鑑定) 때문에 감정(感情) 상하는 변호사는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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