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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동산’의 짜장면
‘희망동산’의 짜장면
  •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 승인 2021.01.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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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역 2번 출구' 〈2〉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병원 로비 리노베이션 공사가 한창 진행될 때였다. 이비인후과 선생님이 아이디어를 냈다. 로비 외벽 유리창 한 부위를 유럽 성당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스테인드글라스로 화려하게 장식하자고 했다. 거기까지는 상식적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햇빛이 그 성스러운 창을 관통해서 들어올 때 빛이 도달하는 지점에 기도의 공간을 만들자고 하면서부터 이야기가 좀 이상해졌다. 로비의 구조나 가용예산, 혹은 예상되는 내외부 고객들의 반응 등등에 대한 현실적 고민 따위는 거의 없었다. 오직 동틀 녘이나 황혼 녘 은은한 햇살이 영험한 기운이 감도는 스테인드글라스를 거쳐 광선검처럼 내리꽂히는 장소에서 환자들이 기도하면 어떤 난치병도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와락 생기지 않겠느냐 하는 신비로운 주장만 펼쳤다. 물론 후속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산부인과 선생님이 홍보실을 맡았을 때는 ‘생명나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생명나무를 은유와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가 병원 마당 적당한 곳에 큰 나무를 심고 실제로 생명나무라 칭하자는 아이디어로까지 번졌다. 그런 나무 아래 환자들이 소원을 주렁주렁 써 붙이면 그 또한 완치의 희망을 줄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비범한 생각이었다. 이 아이디어 역시 ‘서낭당 프로젝트’란 빈정거림을 들으며 실행되지 못했다.

그 대신 병원 주차장과 인근 아파트 경계에 있는 언덕에 작은 정자 비슷한 시설물이 들어섰고 거기에 ‘희망동산’이라는 문패가 걸렸다. 희망동산으로 인해 우리 병원 환자들은 산책 범위가 넓어졌다. 답답한 병실에서 나와 마당을 거닐다가 희망동산 마루에 걸터앉아 잠시 쉬었다 오는 코스를 즐기는 환자들이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희망동산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는 환자가 목격됐다. 지금처럼 배달 라이더들이 많아지기 훨씬 이전임에도 예나 지금이나 날씨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우리의 철가방 아저씨들에게 병원 마당 야외 배달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로 희망동산에서 암 환자와 보호자분들이 짜장면을 시켜 함께 다정하게 드시는 모습은 심심찮게 마주치는 풍경이 됐고 특별한 상념을 불러일으켰다. 병원 식사가 별로 맛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겠지만 어쩌면 그분들은 배달 음식을 시켜 드시는 과정에서, 건강했던 옛 일상이 잠깐이나마 회복되는 기분을 느꼈을 것 같다. 조만간 고통스러운 투병의 시간이 지나가면 평범하면서도 소중했던 자신의 본래 삶을 되찾을 수 있으리란 믿음이 짜장면으로 인해 다져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그릇의 짜장면은 환자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주는 데 있어서 기도실이나 서낭당 나무보다 훨씬 효과적인 매개체였음이 분명하다.

일찍이 “짜장면은 희망이다”라는 어록을 남겼던 분이 있다. 빚 때문에 서강대교에서 한강으로 투신하는 극단적 선택을 했지만, 운명은 그를 다리 아래 밤섬으로 몰고 갔다. 일종의 무인도라 할 수 있는 그곳에서 하루하루 비루하게 삶을 연명하며 계속 죽음만을 생각하던 그에게 희망이 생긴 건, 버려진 짜장라면 봉지 속에서 온전한 스프 하나를 발견하면서부터다. 그 스프를 넣어 쓱쓱 비벼 먹을 수 있는 짜장면 면발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강렬한 목표가 생긴 것이다. 그에게 짜장면은 잃어버린 일상의 회복이었고 죽음의 길목에서 찾아낸, 삶의 새로운 의미였다. 영화 <김씨 표류기>(2009)의 주인공 김씨는 마침내 새의 배설물에서 씨앗을 찾아 땅에 심고 거기서 자란 옥수수로 눈물의 짜장면을 만들어 먹는 데 성공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기어이 희망의 싹을 틔운 것이다. 영화 속 김씨의 간절한 눈빛과 아주 비슷한 것을 희망동산에서 짜장면 드시던 우리 암 환자분들에게서도 보았다고 하면 실례가 되려나.

희망동산은 이후 병원 일대 도로변 정비공사를 하면서 없어졌다. 경사진 언덕에 산책로 정도만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 근처를 지날 때면 어디선가 “짜장면 시키신 분”을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돌이켜보면 과학적 사고와 객관적 근거에 입각해서 환자를 돌봐야 할 의사들이 암 치료를 위해 신비한 빛이 내리쬐는 기도실을 만들고, 치성을 드릴 수 있는 나무를 심자고 제안하는 게 적절한 일이었냐고 힐난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주사와 먹는 약만으로 도저히 처방이 안 되는 ‘희망’이란 성분을 암 환자들에게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어 했던 괴짜 의사들의 진심 어린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한다. 희망동산의 짜장면과 오롯이 맥락을 같이 하는 셈이다.

희망동산이 그리워질 때마다 떠오르는 옛날 신문기사 하나가 있다. 1960년대 중반 우리 기관의 공식명칭은 ‘방사선의학연구소 부속 암병원’이었다. 국민들은 그냥 줄여서 ‘암병원’이라고 불렀다. 당시에는 대한민국에 암병원 혹은 암센터라 불리는 다른 곳이 하나도 없었으니 헷갈릴 이유도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한 일간지는 우리 병원을 소개하며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우리 곁에 암병원이 있는 한, 암을 초기에 발견하면 거의 치료받을 수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언젠가 암이 완전히 극복될 것이라는 희망이 생긴다.” 희망동산은 사라졌지만, ‘희망’이야말로 원자력병원의 오래된 또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오늘따라 문득 짜장면이 몹시 먹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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