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17:46 (수)
다시 만난 ‘싸이코’ 소녀
다시 만난 ‘싸이코’ 소녀
  •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 승인 2021.01.19 06:0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릉역 2번 출구' 〈1〉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대학생인 딸아이가 모처럼 인터넷에서 마음에 드는 글을 찾았다며 내게 노트북 화면을 쓱 보여 주었다. 한 의대생이 임상 실습을 하면서 경험했던 일이라고 한다. 혹시 아빠에게도 그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지 않을까 살짝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벌써 세월이 꽤 흘렀군요. 그때 전 의대 본과 3학년 학생으로 정신과 실습을 돌고 있었습니다. 어느 병원이나 정신과 입원실은 병동 입구를 완전히 봉쇄하고 안쪽으로는 널찍한 공간을 마련해 놓는 폐쇄병동 시스템으로 운영합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글은 당시 그 의대생이 배정받았던, 조금 특별한 환자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귀여운 외모의 여고생 환자는 말투가 아주 독특했단다. ‘시어’를 연상시키리만치 예쁜 단어들을 골라 썼고 어쩌다 남들이 욕하는 걸 들으면 금세 눈 주위가 발개지고 눈물을 글썽거렸다는데, 뜻밖에도 이 아이에겐 우리말로 ‘색정광(erotomania)’이라 번역되는 망측한 병명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실습 나온 의대생들에게 걸핏하면 “당신이 나 좋아하는 것, 다 알아요. 우리 결혼할까요?” 하면서 여러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는 게 그런 진단의 주된 이유였었나 보다.

몇 줄 읽지 않았음에도 나는 마치 신내림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순식간에 글의 내용을 전부 다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이야기는 모두 의대생 시절에 내가 실제로 겪었던 일이었고, 군의관 시절에 한줄 한줄 직접 타이핑했던 문장들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인터넷처럼 화려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그때도 전화선 모뎀으로 연결되는 SNS, 곧 푸른 화면이 정겨운 ‘PC 통신’이 있었다. 군인아파트에서 잠이 안 올 때마다 난 끼릭끼릭거리는 모뎀의 힘겨운 기계음에 묘한 위로를 받으며 PC 통신 게시판에 잡문을 올리곤 했다. 그 가운데 하나였던 본과 3학년 때의 단상을 딸아이가 어디서 용케도 찾아낸 것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예전엔 정신과 실습이 끝나갈 무렵 병동에서 의대생, 간호대생들이 환자들과 함께 간단한 파티와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가지는 게 전통이었다. 스케치북에 익숙한 단어들을 죽 적어놓고 하나씩 넘기며 재치 있는 설명으로 자기 파트너가 정답을 맞히게끔 하는, 소위 ‘스피드 퀴즈’란 게임을 할 때였다. 내 환자였던 소녀가 간호학과 학생에게 설명하는 차례가 되었다. 스케치북에 매직으로 크게 쓴 ‘어린이’란 낱말이 나타나자 소녀는 잠시도 머뭇거리는 기색 없이 반사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어른의 아버지!”

간호대생은 즉시 “할아버지”라고 외쳤다. 오답임을 알리는 ‘땡’소리와 함께 충격이 밀려왔다. 물론 그 자리의 다른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렸고 난 그때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웃음 속에 ‘역시 쟤는 정상이 아니야.’ 하는 냉소가 상당 부분 깃들어 있었음을.

내가 충격을 받았던 이유는 그 아이의 엉뚱한 설명이 저 유명한 영국의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구였기 때문이다. 그게 고등학교 때 영어 교과서에 실렸던 워즈워드의 명시 ‘무지개’의 한 부분임을 그때의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노라면 내 마음 뛰노나니’로 시작되는 그 시의 마지막 연에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란 구절이 등장한다. 순수한 마음으로 자연과 더욱 가까워지고 싶었던 시인은 어린이의 때 묻지 않은 심성을 그렇게 표현했을 것이고, 내 소녀환자 역시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시인처럼 늘 동경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저는 한동안 회의에 빠지게 되었지요. 저렇게 아름다운 생각들이 머리에 가득 차 있는 아이를 가리켜 누가 미쳤다 하고 누가 싸이코라 손가락질하는가. 과연 스스로 정상인이라 믿으며 때론 뭇사람들을 비방하고 헐뜯기에 욕설도 마다 않는 나는 참으로 정상인인가. 아아... 그때의 복잡했던 제 머릿속에는 자꾸만 외눈박이 원숭이들 마을에 어쩌다 길을 잘못 들게 된 두 눈 달린 원숭이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지금 보니 일종의 자아성찰로 끝나는 마지막 부분이 조금 진부한 것 같다. 눈길을 끌기 위해 ‘예쁘게 미쳤던 한 싸이코 소녀를 그리며’라는 선정적 제목을 붙였던 것도 다소 민망하다. 그래도 딸아이 덕분에 인터넷의 바다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그 소녀는 오래 잊고 있었던 시심과 동심을 일깨워주었기에 참 반갑다. 비록 딸아이는 아직도 인터넷에 익명으로 떠돌고 있는 그 글이 젊은 시절 아빠의 작품이란 걸 미심쩍어하지만. 

 

※ 이번 호부터 홍영준 원자력병원장이 진료 현장 등에서 느낀 소회를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칼럼 '공릉역 2번출구'를 부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공릉역 2번출구'는 필자가 근무하는 원자력병원으로 향하는 출구입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출구가 '희망으로 향해 가는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신영길 2021-01-21 03:25:19
세 개의 액자를 봅니다.
- 딸의 눈에 들어온, 어느 의사의 칼럼
- 문학청년인 의대생의 눈에 비친 환자 소녀의 마음
- 소녀의 안에 가득한 시심(詩心)

처음엔, 뭐지 하며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읽고 또 읽다보니
조금씩 조율이 되었고, 마침내 세 가닥의 현은
정갈하게 화음을 이루며 한 음이 되어 갔습니다.

처음 읽을 때 이해가 잘 되지 않은 것은
결국 내 마음속 틀 때문이란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안도가 됩니다.
저런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고 싶습니다.

우리가 타인의 겉모습이라는 틀에 걸려
오해와 갈등을 하지만
그 틀을 걷어내면
누구에게나 통하는 하나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과연 희망으로 가는 길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옥규 2021-01-19 11:41:41
드디어 글 연재 시작하셨군요.

역시 글 내용이 너무 좋습니다.

여러계층의 분들이 호감할 수 있는 내용 같습니다.

저도 학창시절에 들었던 기억이 있네요.

어른의 아버지 "어린이"

많은 뜻을 내포한 말이네요.

궁금하네요.

그 소녀는 지금쯤 현실을 잘 이해하고 사회속에서 동화되어 잘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 소녀 입장에서만 보면은...
자신만의 세상도...

정신병자는 이기주의자가 아닌가 합니다.

너무 남 생각을 안하죠.

정신병원에 갈 사람들 많은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