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편견이 진실을 가립니다.”
“언제나 편견이 진실을 가립니다.”
  • 전성훈
  • 승인 2021.01.1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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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06)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인간, 즉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수많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인간다운 특징은, 바로 ‘이야기’를 만든다는 점이다. 나름의 방법으로 의사소통하는 동물들도 있으나, 어떤 동물도 단발적인 의사소통을 넘어서 이야기를 만들지는 못한다. 수만 년 전의 원시인들도, 사냥감의 발견부터 집단적 협력을 거쳐 사냥의 성공까지의 이야기를 동굴벽화로 남겼다. 왜 그림으로 남겼을까?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만들고 전한 이유는, 처음에는 생존에 필요하거나 공동체를 위해 기억해야 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함이었다. 초기 불교 시기에 붓다의 생애와 가르침을 제자들이 이야기로 만들고 암기하여 다음 세대 제자들에게 전해 준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가 문자의 발명 이후 정보의 공유라는 역할을 문자에게 양보한 이후로는, 이야기의 주된 역할은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난 수천 년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보로 한나절 거리 바깥의 세상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고, 사회가 거의 변하지 않았기에,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과 재미있는 이야기에 항상 목말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깥세상 이야기는 너무 드물게 들을 수 있었고, 사람들은 항상 심심했다.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내용이 꼭 사실일 필요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미있는 거짓말’을 원하게 되었고, 이렇게 연극이 탄생했다. 연극은 수천 년간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았으나 시공간의 제약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이 해묵은 한계는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영화가 탄생함으로써 극복되었고, 이후 100년간 영화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제공해 왔다. 바야흐로 영화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영화는 인간을 둘러싼 모든 이야기들을 다루어 왔고, 여기에는 당연히 ‘법률’도 포함된다. 따라서 법률영화 역시 수많은 영화 장르 중 당당히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영화와 법정은 사람 사이의 갈등을 극적인 형태로 보여 주고 이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의사들과 같이 법조인들도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여 ‘의견통일’이 쉽지 않다. 따라서 법조인들의 과반수가 찬성한다면 이는 사실상 통일된 의견에 가깝다. 게다가 개인적 취향과 관련한 질문이라면 의견통일은 더 어려울 것이고, 그것이 개인적 취향이 더 강하게 반영되는 영화 선택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최고의 액션 영화’, ‘최고의 전쟁 영화’, ‘최고의 멜로 영화’ 등을 법조인 100명에게 묻는다면 50개쯤 되는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하지만 법조인들에게 ‘최고의 법률 영화’를 꼽으라고 묻는다면 ‘과반수가’ 이 영화를 꼽는다. 이런 불가능해 보이는 결과를 낳게 하는 영화는 바로 시드니 루멧 감독, 헨리 폰다 주연의 1957년작 미국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이다. 
 
빈민가에 사는 스페인계 18세 소년이 자신의 아버지를 칼로 찔러죽였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다. 12명의 배심원들이 소집되고, 판사는 배심원들에게 “유죄를 의심할 만한 ‘합리적 의심(reasonable doubt)’이 있다면 무죄(not guily)를, ‘합리적 의심’이 없다면 유죄(guilty) 평결을 내려야 합니다. 유죄는 곧 사형을 뜻합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12명의 배심원들은 양복을 입은 채로, 찌는 듯이 더운 여름날에, 만장일치로 평결 결과를 도출해 낼 때까지 선풍기도 고장난 좁은 평결실에 사실상 갇히게 된다.
 
12명의 배심원들은, 일단 시간과 장소 자체가 짜증나고 힘든 상황인데다가, 다들 각자의 사정이 있어 얼른 평결을 마치고 집에 가고 싶어 한다. 저녁에 뉴욕 양키스 경기를 봐야 하는 사람, 주식시세를 확인해야 하는 사람, 감기에 걸려 힘든 사람 등으로 상징되는 것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다. 이들은 얼른 이 번거롭고 부담되는 법적 의무를 끝내고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 때문에 배심원 중 11명은 쉽게 - 유죄 심증을 드러냈던 판사 때문에 더욱 쉽게 – 유죄 의견을 밝힌다. 그런데 쉽게 결론이 내려질 것 같았던 평결에 8번 배심원이 이의를 제기한다. 나머지 11명은 그를 ‘압박’하지만,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결국 쉽게 결론을 내는 것을 포기하고, 나머지 배심원들은 일단 그의 주장을 놓고 토론을 시작한다.
 
18세 소년의 목숨을 빼앗는 결정을 ‘집에 빨리 가기 위해’ 성급히 내리려던 처음의 분위기는 사라지고, 가열찬 논쟁과 설득, 험악한 고성과 욕설, 명·묵시적 지지와 방해가 오간다. 그러면서 11명의 배심원들은,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을 바탕으로 검사와 변호사가 놓친 사실들을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소년의 살인행위를 의심할 만한 ‘합리적 의심’이 있다고 주장하는 8번 배심원의 의견이 논리적임을 깨닫게 된다.
 
치열한 줄다리기와 시소게임 끝에 11명의 배심원들은 한 명씩 한 명씩 무죄로 의견을 바꾸게 되고, 마지막으로 2년 전 가출한 비행청소년 아들과의 관계를 이 사건에 투영하여 사적인 감정을 가지고 평결에 임하던 3번 배심원이, 아들의 사진을 찢으면서 울음을 터뜨리며 무죄 의견을 밝히면서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에 이르게 된다.
 
이야기의 대부분이 평결실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진행되고, 4, 50대 백인 아저씨들만 나오는 흑백영화인 이 영화가 지루할 것이라는 추측은, 나름 합리적이지만 명백히 틀렸다. 또한 이 영화는 법률영화이기 이전에, 중요한 집단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보여주는 집단구성원들의 ‘캐릭터’, 즉 눈치보거나, 고집부리거나, 시류에 편승하거나, 사적 감정을 감추며 그럴싸한 다른 이유를 대거나, 차분히 자신의 의견을 설명하는 등의 태도들을 전형적이면서도 탁월하게 그려낸 고전이다. 이 영화가 지루했다는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파편화되고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난무하고, 이를 검증할 의무가 있는 4,000여 개(!)의 언론 역시 별다른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이를 거들고 있는 것이 최근의 대한민국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 영화는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과 사실에 근거한 설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18세 소년의 목숨을 내세워 다시 생각하게 한다. 좋건 싫건 혼자만의 시간을 강요받고 있는 이 코로나 시대에, 허섭한 리메이크에 불과한 2019년작 동명 시리즈물이 아닌 ‘원작’을 감상하여 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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