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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형 입법, 인간형 입법
개구리형 입법, 인간형 입법
  • 전성훈
  • 승인 2020.12.21 2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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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04)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란 특수한 환경 하에서 생존에 적합한 형질을 지닌 개체군이, 그 환경 하에서 생존에 부적합한 형질을 지닌 개체군에 비해 ‘생존’과 ‘번식’에서 이익을 본다는 이론이다. 뒤집어서 ‘자연도태’라 일컫기도 한다. 이는 진화론의 핵심이다.
 
개체군을 구성하는 개체 하나하나가 개개 행위시마다 ‘이것이 진화에 적합하다, 아니다’를 판단하여 행위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개체가 모인 개체군이 보이는 행태는 ‘경쟁’에서 승리하여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해 일정한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그 개체군의 ‘진화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개체군의 진화전략은 로버트 H. 맥아서와 에드워드 O. 윌슨의 1967년 저서 ‘섬 생물지리학 이론(The Theory of Island Biogeography)’에서 ‘r/K 선택 이론’으로 모형화되어 있다. 어떤 개체군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r전략 또는 K전략을 선택하게 되는데, r전략은 개체군의 성장률(r)을 중시하여 되도록 많은 자식을 낳는 것이고, K전략은 개체군이 서식하는 환경용량(K)을 고려하여 적은 수의 자식을 낳되 살아남을 수 있도록 오랜 기간 양육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r전략은 ‘양’으로, K전략은 ‘질’로 승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암컷이 수천 개의 알을 낳으면 여기에 수컷이 정자를 뿌리고 간 후 알아서 부화하여 알아서 살아남는 개구리는 극단적인 r전략에 해당하고, 손가락에 꼽을 만큼 자식을 낳아 이를 10년 이상 돌보는 인간은 극단적인 K전략에 해당한다.
 
개구리라고 통칭하지만 생물학적으로 개구리목은 29과, 336속, 5,000여종으로 나뉜다. 반면 인간의 생물학적 분류는 ‘인간과’, ‘인간속’, ‘인간종’이다. 우리는 오랜 정치적·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인간의 ‘세부분류’를 일종의 금기로 여기고 있지만, 인종간 생물학적 차이가 있음까지는 부인하기 어렵다. J. 필립 러쉬튼은 흑인, 백인, 동아시아인의 비교집단을 설정하고 각각의 집단이 진화전략으로 r전략, 중립전략, K전략을 선택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내용의 저서 ‘인종, 진화 및 행동: 생애적 시각에서(Race, Evolution, and Behavior: A Life History Perspective)’를 1994년 출간했다. 그 내용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이 있었음을 전제로 하고, 내용 중 일부를 살펴보자.
  흑인은 적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백인은 그보다 더 추운 곳에서, 동아시아인은 가장 추운 곳에서 진화했다. 더운 지방은 의식주의 해결이 쉽지만, 미생물이 번식하고 매개되기 쉬워 질병이 많다. 추운 지방은 의식주의 해결이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질병이 적다. 즉 추운 지방에서 인간은 의식주의 해결이 중요했지만 이는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여 해결할 수 있었던 반면, 더운 지방에서 인간은 질병에 대한 대처가 중요했지만 현대의학에 이르기 전에는 이를 해결할 수 없었다. 따라서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자식의 생존률이 다분히 ‘운’에 좌우되었던 흑인이라는 개체군은, 되도록 많은 자식을 낳는 r전략을 선택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가혹한 환경에서 한정된 의식주 자원을 고려해야 했던 동아시아인이라는 개체군은, 적은 수의 자식을 낳되 양육에 힘쓰는 K전략을 선택했다.
 
구체적인 예를 보자. 남성과 여성의 개체수는 거의 1:1이므로, 남성이 r전략을 선택한다면 이는 여성을 둘러싼 남성들 사이의 싸움이 격렬해짐을 뜻한다. 이 경우 큰 체격의 남성이 유리한 형질을 가진 것이 되는데, 남성 신장/여성 신장 비율을 보면 흑인이 가장 크고, 백인, 동아시아인 순이다. 동물들도 그런가? 그렇다. 일부다처인 대부분의 동물들은 수컷이 암컷보다 체격이 크고, 일부일처가 원칙인 대부분의 동물들은 암수의 크기가 비슷하다. 또한 여성도 성적으로 조숙한 개체가 유리한데, 초경 시기 역시 흑인, 백인, 동아시아인 순이다.
 
또한 남성이 r전략을 선택한다면 정자경쟁이 치열해 진다. 정자를 만드는 고환의 무게는 흑인은 25g, 백인은 21g, 동아시아인은 9g이라고 한다(단 최근의 국내 연구에 의하면, 한국 남성의 고환 무게는 평균 18g이다). 만들어진 정자의 활동성도 차이가 있는데, 단적인 예로 일란성 쌍둥이 비율은 인종간 차이가 없지만 이란성 쌍둥이 비율은 흑인이 1,000명당 15~27명, 백인이 6~13명, 동아시아인이 3~7명이라고 한다. 최근 미국 에모리대의 인류학자들은 남성의 두뇌와 고환의 MRI 자료를 분석하여 ‘고환이 작은 아빠일수록 자식 양육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r/K 선택 이론은 현대에도, 우리나라에도, 그 중 21대 국회에도 적용되고 있다. 진화생물학 이론이 우리나라 국회에 적용된다고? 21대 국회가 개원한지 5개월 동안 발의된 법안 건수는 무려 6,000건이 넘는데, 이는 20대 국회와 비교할 때 2배에 가까운 수이다. 즉 매달 1,000개 이상의 법안이 발의되고 있고, 17개 상임위별로 나눈다 하더라도 각 상임위원회는 매달 50~70개의 법안을 심의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비정상적인 상황임은, 20대 국회를 기준으로 의원 1인이 검토해야 할 법안 건수가 인구가 조금 많은 프랑스의 20배, 영국의 90배이고, 인구 대비로 미국의 14배라는 점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법은 양보다 질이 중요함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대충 만든 법 10개가 있다고 하여 국민의 권리가 더 두텁게 보호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 당연한 상식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r전략’을 선택하는 이유는, 법안의 중요성과 질을 평가하는 것이 매우 어려우므로 정당의 공천심사나 시민단체의 의정활동평가에서 아직도 ‘발의 법안 건수’를 평가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 입장에서 볼 때 도무지 이런 입법을 왜 추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의 법안들, 예를 들어 ‘의사가 살인, 강도, 범죄단체조직 같은 특정강력범죄로 형이 확정되는 경우 면허를 취소한다’는 내용의 법안 등이 연속적으로 발의되는 이유도, 결국 국회의원들이 ‘r전략’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정부가 주요 입법을 주도했고 의원입법이 많지 않아 ‘국회의원이 법 안 만들고 논다’라는 비판이 있었기에 일단 입법의 ‘양’을 늘리는 방향으로 평가기준을 잡았다. 하지만 이제는 입법의 ‘질’을 중시할 때가 되었다. 5개월만에 100건의 법안을 발의한 의원은, 과연 그 100개의 법안을 깊이 있게 고민했을까? 무책임하게 싸지르는 ‘개구리형 입법’은 국민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멍청하고 부지런한 상사가 최악’이라는 속언은 입법에도 적용된다. 21대 국회가 이제라도 ‘인간형 입법’으로, ‘K전략’으로 변화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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