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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8만여 의사를 내려친 `악법의 철퇴'
<시론> 8만여 의사를 내려친 `악법의 철퇴'
  • 승인 2005.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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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만여 의사를 내려친 `악법의 철퇴'

 

남소자<서대문구의사회장, 나산부인과>

 

 

 9월 29일 이날을 맞아 우리 8만여 의사들은 방성대곡(放聲大哭)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어느 나라가 정당한 의권(醫權)방어와 잘못된 의료제도개혁을 위해 투쟁한 의사에게 실형을 선고한 나라가 있었던가.
 법은 지킬 가치가 있는 민주주의의 꽃이지만 그 적용 잣대가 심히 부당하거나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졌을 때 저항권도 인정해야 하는 규범이라고 알고 있다.
 지난 9월 29일 대법원은 의권 쟁취투쟁에 앞장선 대한의사협회장 등 9명 중 3명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나머지 6명은 파기 환송했다.
 평생 환자 진료만 해오다 법률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필자가 법을 전공하고 법조계 최고위층까지 올라간 대법원판사님들과는 법 논쟁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당한 의권방어 투쟁에 실형 선고

 그러나 모든 인간사에 무조건 법을 들이댈 수도 없고, 그 적용에 있어서도 사건 이면에 존재하는 제반 사정을 연구해서 불편부당한 판결을 내려야 법의 정신이 바로 선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더구나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행위의 그 복잡하고도 전문적인 법과 제도의 잘못된 점에는 하나도 접근하지 않고 실정법만으로 재단한다는 것은 자칫 객관성을 잃을 우려가 있다.
 이번 유죄판결을 받은 의사협회장 등 9명은 잘못된 의료제도와 악법개폐투쟁을 벌이다 ①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위반 ② 업무방해 ③ 의료법 위반 등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법률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들 혐의로 최고 재판소가 판결한 법행위에 대해 그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법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고 사법권의 독립을 용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법적용과 해석이 아주 구차해 보인다.
 휴업불참을 원하는 일부 의사들에게 휴업에 동참하도록 강요했다는데 그 의사수가 몇 명이었는지 8만여 의사수의 몇 %나 되었는지의 판단은 없다.
 그리고 휴업 불참을 원했던 의사들도 자신의 권리를 지키자는 원론적 행동에는 찬성하지만 휴업결의는 주저할 수도 있었으며, 매우 소극적인 행위에 불과했음은 굳이 의사가 아니더라도 취할 수 있는 행위였음을 재판관이 간과했을 수도 있다.
 거기다가 모든 선출직 공무원이 단 30% 정도의 투표율에 1위를 차지했다고 해서 자랑스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현실에 의사들 거의 대부분이 참석하고 항의한 행위가 결과적인 법위반으로 다스려지고 업무개시명령에 불과한 행정명령을 어겼다고 실형을 선고한 것은 모기를 잡자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꼴밖에 안 된다.

구차한 법적용/해석...전과자 만들어

 이 나라에는 집회 결사, 언론의 자유도 없는 나라인가.
 관청에서 업무를 개시하라면 찍소리 못하고 복종해야만 되고 이들 악법과 잘못된 제도를 고치자고 몸으로 항의할 권리는 어느 단체에도 다 있는데 유독 의사만 파렴치범으로 몰아 전과자를 만든 것이 과연 옳은 판결인지 의문이다.
 법을 만들 때 최고통치자도 잘못 되었다고 장관을 질책하고 그 결과 국민이나 의료인 모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결과를 빚은 법과 제도를 고치자고 항의하고 최후의 무기를 들었다고 파렴치범으로 모는 근거가 정말 견강부회가 아닌지, 그것도 5년이나 뭉그적거리며 판결 내리기를 서로 미루고 주저하다가 판결한 것이 여론이나 정치색이 가미되지 않았는지도 의심스럽다.
 이젠 의사가 국민들로부터 지탄받고 제도와 법으로 핍박받아도, 자기 권리는 하나도 못 찾으면서 인술을 베풀어야 하는 로봇이 되어야 하는 현실을 만든 이번 판결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 지켜볼 일이다.
 후일 우리 후손에게 역사가 옳은 심판을 해 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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