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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병원 절반은 산부인과 전공의 1명 이하, 이들마저 빠져나가면 어쩌나
수련병원 절반은 산부인과 전공의 1명 이하, 이들마저 빠져나가면 어쩌나
  • 이필량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
  • 승인 2020.12.05 09: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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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화되는 의료대란, '내외산소'는 숨쉬기도 버겁다] ④
산부인과 수련병원 81곳 중 10%는 1년차 전공의 1명도 없어
매년 5~10%가 중도포기, '악순환' 지속시 의료질 저하 야기

의사 국가고시 미응시 사태로 인한 의료공백 발생시 그로 인한 직격탄을 맞게 될 대표적인 진료과는 어디일까. 산부인과다. 이는 단순한 산수로도 추론이 가능하다. 

전공의 수련의 주력을 담당하는 상급종합병원에서 내과, 외과, 산부인과, 그리고 소아과는 현재 의료의 핵심이 되는 과이지만 의대생이나 인턴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다. 숫자로만 따지자면 이들은 전체 전공의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에 반해 소위 인기가 있는 과(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들의 전공의 수는 병원 전체 전공의 수의 20% 정도가 된다.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내년에 새로 배출되는 의사들이 인턴을 마치고 내후년에는 대부분 인기과로 전공의 지원을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경쟁률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이들 중 상당수가 인기과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즉, 산부인과와 같은 비인기과에 돌아갈 몫은 별로 없다.

산부인과는 진료 내용의 특성상 당직 업무의 강도가 다른 과들에 비해 매우 높다. 한 예로 산후출혈 환자가 내원하는 경우 순식간에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진료 현장에는 동시에 여러 전공의와 인턴들이 서로 협력하여 각자 맡은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2020년 현재 산부인과 전공의를 수련시키는 병원은 81개 기관으로, 이 중 1년차 전공의가 없는 병원이 10%(8개 기관)에 육박한다. 고작 1명인 경우가 46%(37개 기관)에 달한다. 이렇게 전공의 수가 부족한데, 인턴마저 배치되지 못한다면 산부인과의 수련 체계가 급격히 무너질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기존에 있던 전공의들이 더욱 동요하면서 한 명, 두 명씩 진료 현장에서 이탈하게 될 것이고, 결국 이 병원의 산부인과는 인력 부족으로 인해 근무환경이 매우 열악한 곳이라는 낙인이 찍힐 것이다. 이로 인해 갈수록 지원자들의 외면을 받게 되면 향후 전공의 선발에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되는 악순환이 장기간 고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부에서는 국시를 거부한 2700명이 내후년에는 의사가 될 것이므로 인력 부족은 일시적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산부인과와 같이 근무 환경이 이미 많이 나쁘다고 알려진 과의 전공의에게 앞으로 2년간 인턴과 전공의 부족으로 인해 업무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견디기 어려운 조건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내년에 산부인과 전공의 1년차가 되는 의사는 인턴이 부족한 상태로 1년을 지내야 하고, 2년차가 되었을 때에는 1년차가 부족한 상태로 또 1년을 보내야 할 수 있다. 현재도 산부인과 전공의의 5~10% 정도가 매년 수련을 포기하고 있다. 많은 이유가 높은 업무 강도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들로 인한 것들이다. 이들이 전공의 수련을 포기하는 시기는 대부분 1년차 또는 2년차일 때다. 앞으로 2년간 근무 환경이 더욱 나빠진다는 것은 이들을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게 될 것이다.

전공의 부족에 대한 문제를 단순히 진료 인력의 부족이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안된다. 이 문제는 전공의에게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많은 대학에서 산부인과 전공 교수 요원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는 전공의 부족으로 인해 교수의 진료 업무의 강도가 한층 높아진 것이 주된 이유가 된다. 이들 대학에서는 산부인과 교수들이 교대로 주말, 야간 당직을 서고 있다. 이들은 진료로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연구와 교육에도 매진해야 한다. 교수의 부족은 학생 교육과 전공의 수련의 부실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낳게 한다. 정신이 맑지 않고 몸이 피곤한데 연구를 위한 창의성을 이끌어 내기는 더욱 어렵다.

문제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장기적으로 의료의 질 향상에 큰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모르거나 방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의 의료 인력으로 100명을 치료할 때에 현재는 1명의 환자가 사망한다고 가정하면, 의료 인력이 부족해지기 시작하여 초기에 2명의 환자가 사망한다면 사람들은 이것이 문제라는 것을 당장은 잘 체감하지 못한다.

의료 인력의 부족이 심해지고 장기화되면서 그 부족한 인력 폭이 커지면 사망자 수가 점차 늘어나게 되는데, 그 때서야 문제가 심각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지금 부족한 인력을 편법으로 채우려고 하거나 기존의 인력만으로 노동력을 더 짜내려고 하기만 할 뿐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전문 의료 인력을 양성하는데 소홀히 한다면 결국 5년, 10년이 지나면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이후의 세대가 큰 피해를 보는 것이다. 그 때가 되어서야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의료인력은 단기간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므로 국민 건강은 오랜 기간 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의과대학생의 국시 거부 문제에 대해 국민 정서가 관용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는 이 문제를 일시적인 문제로 생각하고 자존심을 내세운 기싸움에 치중해 제대로 된 해결책 마련을 외면하는 경우에는 결국 산부인과를 포함하여 현재도 여러 이유로 인력이 부족한 진료과는 그 존립이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 결국 이것이 국민 건강 수호에 적신호가 된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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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4 2020-12-06 10:54:55
교수님이 하셔야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