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화장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화장한다, 고로 존재한다
  • 전성훈
  • 승인 2020.12.0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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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02)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연산군. 조선왕조 희대의 폭군으로 일컬어지는 그를 둘러싼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다. 그 중 그가 전국에 채홍사와 채청사를 파견하여 미녀를 간택해 오게 했다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 가장 예쁘거나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을 뽑아 “흥청”이라고 불렀으며, 이것이 “흥청망청”의 어원이 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연산군이 채홍사와 채청사에게 내렸던 지시 중 흥미로운 것이 있다. 그것은 “분칠한 것을 어찌 참 미모라고 할 수 있겠느냐? 앞으로 간택할 때는 분칠을 못하게 명하여 그 진위를 가리게 하라”는 것이다. 즉 화장빨 없이 생얼로 인물을 판단하라는 것이다. 이는 연산군의 높은 기준(?) 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도 여성들에게 화장이 일반화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 종족보존에 유리하다는 것은 모든 동물에게 공통된 사실이고, 인간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에 더해 인간은 ‘희귀한 것은 값진 것’이라는 본능적 경험에 따른 시각에서 희소성 있는 외관(예를 들어 풍만한 신체, 하얀 얼굴 등)을 아름다움으로 인식하여, 나름의 미적 기준을 만들고 유지해 왔다. 그래서 예상보다 화장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화장의 역사는 10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적지에서 조개껍데기에 담긴 노란 색, 붉은 색 파우더를 발굴했기 때문이다. 화장이 처음으로 역사에 기록된 것은 수천 년 전 고대 이집트의 무덤 벽화이다. 당시 이집트의 미술품들을 보면 남녀 공히 눈화장을 짙게 하는 것이 일반적임을 알 수 있다. 그 유명한 클레오파트라가 화장을 잘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녀는 매부리코와 같은 자신의 외모의 단점을 뛰어난 화장 기술로 보완했으며, 우유로 목욕했고 알로에로 피부에 수분을 주는 등 지금의 스킨케어라고 볼 수 있는 행위도 했다고 한다.

중국 역시 수천 년 전부터 화장을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손톱에 칠한 매니큐어를 보고 여성의 신분을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여성들은 대석이라는 광물을 갈아 물에 개어 눈썹을 그렸고, 붉은 안료에 기름을 섞어 만든 립스틱을 사용하였으며, 꽃잎을 이용하여 볼을 붉게 물들였다.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인간은 얼굴을 하얗게, 입술을 붉게 만드는 화장을 선호했는데, 여기에는 사회적인 이유와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다. 흰 피부는 태양 아래에서 노동할 필요가 없는 고귀한 신분임을 나타내는 것이었고, 붉은 입술은 생물학적으로 건강한 개체임을 나타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얀 얼굴과 붉은 입술을 위해, 그 유해성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화장품에 납과 수은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이러한 화장 문화는 중세에 접어들면서 유럽에서 급속도로 사라지는데, 외모를 꾸미는 것은 정숙하지 못한 행동이라는 기독교적 금욕주의가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이후 신에게 눌려있던 인간이 기지개를 켠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화장은 다시 부흥했고, 18세기 화학의 발전을 거쳐 19세기에 들어 대중소비경제가 형성되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화장품회사들이 다수 설립되어 대중들에게 염가에 양질의 화장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화장법을 공유하는 유튜버들이 수백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것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화장이 일반화되었다. 일부 탈코르셋운동 지지자들을 제외하고는, 많은 여성들에게(그리고 일부 남성들에게도) 화장은 생활이다. 화장하지 않은 얼굴은 내 사회적 얼굴이 아니다. 화장함으로써 비로소 사회적인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화장이 보편화되면서, 화장품도 고도로 발달하게 되었다. 그런데 화장품이 발달하면서 그 기능이 강화되자,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의약품과 화장품의 구분이 모호해 진 것이다. 법적으로는 화장품은 등록만 하고 제조할 수 있지만 의약품은 제조업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의약품은 안전성과 유효성까지 증명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화장품법과 약사법에 화장품과 의약품의 정의가 각각 규정되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러면 법조항을 실제 사건에 적용하는 법원의 태도는 어떠한가? 대법원은 ‘사람들이 화장품으로 인식하는 것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의약품으로 본다. 화장품과 의약품으로 모두 사용된다면 의약품으로 본다’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은 2000년대 초반에 형성되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작년에도 화장품과 의약품의 구분에 관한 제1심 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피부과를 운영하는 의사 A는 피부과에서 진료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이용하여 화장품을 제조.판매하고자 화장품 회사를 설립하고 화장품을 제조하여 여러 의료기관에 공급했다. 그런데 회사의 직원이었던 B가 ‘A가 제조.판매한 것은 화장품이 아니라 의약품에 해당하므로 약사법위반이다’라고 하면서 공익신고를 했고, 검사는 수사 끝에 이를 약사법위반으로 기소한 것이다. 1년여의 재판 끝에 제1심 법원은 ‘이는 화장품이 아니라 의약품에 해당함에도 의약품 제조업허가를 얻지 않았으므로 약사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보고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그리고 판결 이유에서 앞서 본 대법원의 기존의 태도를 그대로 원용했다.

대법원의 기존의 태도는, 우리가 개발도상국이던 시기에 제조업체의 시설 등이 열악한 경우가 많았으므로 약사법의 규제대상을 가능한 넓게 해석하여 약사법의 엄격한 규제를 적용함으로써 보건위생상의 위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적 해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사회적으로 이러한 해석이 필요했음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와 우리나라 화장품업계는 눈부시게 발전했고, ‘사회 일반인이 화장품으로 인식하는 것은 화장품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의약품이다’라는 기준은 너무 모호하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 의사가 개발한 기능성 화장품의 수가 적지 않고 대외적인 경쟁력도 충분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이제는 위와 같은 대법원의 해석은 변경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의사가 만든 화장품’이라는 화장품 광고가 적지 않았으나 최근 많이 줄어든 것으로 보이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위와 같은 법원의 보수적인 법 해석도 한 원인이 된 것 같다. 다른 화장품은 모르겠으나, 적어도 기능성 화장품이라면 의사가 개발하여 판매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시대의 변화상을 반영하는 대법원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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