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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올해 전공의 중도포기자 절반이 ‘내외산소’, 서울대도 예외 없다
[기획] 올해 전공의 중도포기자 절반이 ‘내외산소’, 서울대도 예외 없다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0.12.04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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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화되는 의료대란, '내외산소'는 숨쉬기도 버겁다] ①
가뜩이나 전공의 모자란데···의사공급 절벽 기화로 ‘필수진료과’ 떠나나 
의료대란 겪으며 회의 커져, 일부는 "미래 없다"며 해외전문의 시험준비

올해 의사 국가시험 실기시험이 결국 전체 응시대상자 3172명 중 446명만 응시한 채 마무리됐다. 정부가 끝내 미응시자들에 대한 재응시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내년도 신규 의사 배출은 평소보다 2700여명이나 줄어들게 된다. 이대로라면 사상 초유의 의료공백 사태가 현실화될 것으로 예견된다. 

정부는 2700여명의 인턴 공백을 입원전담전문의 활용이나 응급의학과 전공의 정원 추가 배정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번 사태가 당장 내년의 의료공백을 메우는 것으로 마무리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향후 수 년에 걸쳐 특정 병원과 전공에 편중된 의료시스템을 더욱 왜곡시켜 전반적인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등 의료시스템 전체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내년 배출 인턴으로 '빅5' 충당조차 어려워

인턴은 수련을 받는 '피교육자'이기도 하지만 의사면허를 취득한 의사로서, 전공의들과 함께 당직을 서면서 24시간 환자를 보고 수술 준비와 환자 관리 등 의료기관 곳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내년도 의사 배출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른바 '빅5' 병원을 제외한 수련병원들은 인턴 확보 자체가 어려워질 전망이다. 내년에 배출될 400여명의 인턴으로는 빅5 충당조차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인턴이 의료현장에 투입되지 않으면 의료기관 내 기존 의료진들의 업무 부담은 두 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수술과 당직, 환자 케어 등 인턴의 업무까지 도맡게 되면 피로도가 높아져 자연히 의료서비스 질의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 

당장 내년 전공의 1년차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인턴 공백으로 인해 전공의 업무에 더해 인턴 업무까지 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악순환이 인턴들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진료과인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과의 수련체계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인턴이 의료기관에 들어오지 않으면 병원의 기본 업무에 대한 공백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비인기과의 경우 가뜩이나 모자란 수련의들이 이번 의사 공급절벽을 계기로 더욱 줄어들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필수 진료과와 비인기과에서는 ‘숨쉬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3월 이후 수련포기 전공의, 비인기과에 집중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보건복지위)이 지난해 3월부터 올해 10월말까지 최근 2년간 전공의들의 전문과별 사직자 현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전문과 전공의 409명이 수련을 중도에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3월 이후 전공의 중도 포기자는 162명으로, 이 중 내과가 34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서 가정의학과 22명, 소아청소년과 20명, 외과 15명, 산부인과 9명, 정신건강의학과와 정형외과 각 7명, 이비인후과와 응급의학과 각 6명 순이었다. 이른바 '내·외·산·소'에 중도 포기 전공의가 집중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내외산소를 비롯한 비인기과 전공의들이 수련을 중도에 포기하는 이유로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낮은 수가, 의료소송에 대한 불안감 등이 꼽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힘들고 고생하는 과' 보다 '안정적인 과'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김연수 서울대병원장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서울대병원의 경우 내외산소 전공의가 중도에 사직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예외적으로 사직하곤 했는데 올해 들어 의료대란을 겪으면서 이들 과목 전공의가 사직하기 시작했다”면서 “필수의료를 지키던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병원 교수 A씨도 "소아과, 산부인과, 외과 1년차 전공의들 중 그만둔 전공의들이 있다"며 "이번 정부의 일방적인 4대악 추진으로 인해 '우리나라 의료계에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일부 전공의들은 해외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내년도 인턴 부족에 내후년 진료과 바꾸려는 움직임도

특히 올해 국시 미응시로 인해 내년도 인턴 배출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현재 낮은 연차의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내년 인턴들이 전공의에 지원하는 시기에 맞춰 전공 진료과를 옮기기 위해 사직서를 내려는 움직임마저 감지되고 있다. 

또다른 대학병원 교수 B씨는 "전공의들이 1~2년차에 적성이 맞지 않아 힘들어 하다가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인턴 배출 인원이 적다보니 경쟁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진료과로 가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며 "정부가 '필수진료과를 살린다'고 해놓고 오히려 죽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현 상황대로 흘러 간다면 지방의료기관은 전공의가 없어 국민들을 진료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료계는 의사국시 미응시로 인한 '인력 문제'가 내년 한 해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후년인 2022년 이후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앞으로 10년 이상 의료계의 인력난이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의료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보건의료를 정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의사국시 미응시 문제를 '의사 길들이기'에 악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의사 C씨는 "정부의 태도는 의료계를 향해 ‘집단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으로 읽힌다"며 "의대생들을 볼모로 파업기간 동안 손상된 정부의 자존심을 보상받거나 회복하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가 진심으로 국민들을 위한다면 의대생들의 구제를 위해 의료계와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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