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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市長)도 없는데···2500억 들여 ‘공공어린이병원’ 설립 서두르는 서울시
시장(市長)도 없는데···2500억 들여 ‘공공어린이병원’ 설립 서두르는 서울시
  • 배준열·권민지 기자
  • 승인 2020.11.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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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원순 시장 옥탑살이 직후 계획 발표, 올해 10월에 추진 확정
설립 예정지 반경 3km 이내에 이미 국립·사립대병원 등 운영 중
저출산·코로나로 어린이병원 병상 남아, 적자운영 예견된다 지적

서울시가 강북 지역에 총 2450억 원을 투입해 공공어린이병원을 설립하기로 한 것을 두고 의료계 안팎에서 '혈세 낭비’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는 해당 지역에 아동의료시설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고 있지만 이미 인근에 적지 않은 어린이병원이 자리잡고 있는데다, 최근 코로나 사태 등으로 인해 환자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시가 굳이 시장도 공석인 상황에서 공사를 강행하려는 이유를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 수준의 건강보험 수가로는 기존 병원들조차 적자를 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뻔히 적자 운영이 예상되는 공공어린이병원에 막대한 예산을 들이는 것이 타당하냐는 지적도 나온다. 

◆고 박원순 시장, 강북구 옥탑방 살이 후 병원 건립 추진

서울시는 지난 10월18일 ‘강북 어린이 전문병원·공공청사 복합개발 추진계획’을 확정했다. 서울시는 이에 따라 현재 북부수도사업소, 북부도로사업소, 강북소방서 등이 들어서 있는 부지인 서울시 강북구 번동 365-1번지 일대에 노후화된 공공청사를 철거하고, 어린이병원 및 공공청사를 복합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총 245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될 예정이다.

이같은 계획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생전에 추진했던 것이다. 박 전 시장은 지난 2018년 강북구 삼양동에서 한 달간 옥탑방 살이를 마친 후 ‘동고동락 성과보고회’를 열고 어린이병원 건립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는 총 2450억 원의 사업비 중 건축공사비, 용역비, 시설부대비 등으로 2408억 원을 투입하고, 나머지 40억 원은 병원 운영비로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병원이 완공되면 대학병원 등 외부기관에 보조금을 지급해 위탁 형태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가 밝힌 계획에 따르면 어린이병원 및 복합청사는 2022년 6월에 착공해 오는 2026년 12월에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먼저 오는 2021년 2월까지 사업 타당성조사를 마친 뒤 시의회 심사 등을 거쳐 2022년 8월까지 설계 공모를 완료하고, 2023년 8월까지 기본 설계를 완성할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계획과 관련해 “서울시 동북권에 어린이 환자가 많이 몰려있지만 의료시설이 취약해 의료 인프라 확충이 시급한 상황”이라며 “동북권에 어린이 공공의료시설을 확충하면 어린이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립 예정부지에 어린이 진료 가능한 대학병원급만 3곳

서울시가 이처럼 서울 동북권 지역의 아동의료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 공공어린이병원 건립계획에 착수했지만 의료계에서는 “과연 서울 동북권의 아동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게 맞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병원 설립 부지 인근에 이미 국립대 어린이병원은 물론이고, 다수의 사립대병원을 포함한 민간병원 소아청소년과와 소아청소년과 의원급 의료기관, 정부의 인증을 받은 어린이병원까지 운영 중이기 때문이다.

특히 공공어린이병원 건립이 예정된 부지 인근에는 현재 국립대병원인 서울대 어린이병원과 2곳의 사립대병원(고려대·경희대) 소아청소년과가 운영 중이다. 여기에 소아청소년과 병원으로는 최초로 보건복지부 인증을 받은 성북우리아이들병원까지 반경 2~3㎞ 인근에 운영 중이어서 '충분한 수요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채 공공어린이병원 설립이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공공어린이병원 건립 예정지 인근의 서울대어린이병원 전경(사진=서울대어린이병원)
서울시 공공어린이병원 건립 예정지인 강북구 번동 365-1번지 인근에서 운영 중인 서울대어린이병원 전경(사진출처=서울대어린이병원)

실제로 최근엔 지난 1966년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병원으로 설립돼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어린이 외래환자를 가장 많이 진료하는 병원이었던 서울 용산의 소화아동병원이 환자 감소에 따른 경영난으로 인해 병원건물을 매각하고 규모를 대폭 축소해 겨우 운영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에서 아동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원장은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어린이 재활의료병원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수도권의 경우 소아재활의료기관이 너무 과밀하게 몰려있다고 판단해 아예 시범사업에서 제외될 정도로 포화상태”라며 “이런 마당에 서울시가 아동의료 인프라가 부족하다며 막대한 혈세를 투입해 서울 강북 지역에 어린이병원을 건립하는 게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서울시에 그런 사업에 투입할 예산이 있다면 차라리 현재도 환자 수가 부족해 허덕이고 있는 기존의 서울 내 민간 어린이 병·의원이나 국공립 어린이병원을 지원하는 게 훨씬 더 실효성 있고 예산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보여주기식' 행정 지적에 서울시, 구체적 해명 피해

특히 서울시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서울시가 지난달 서둘러 강북 어린이 전문병원 추진계획을 확정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내년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보여주기식' 행정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러한 의혹에 대한 서울시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본지는 서울시 시민건강국 보건의료정책과 시립병원운영팀 등에 수차례 연락했지만, 서울시 관계자들은 갖가지 이유를 들며 정확한 답변을 피했다.

다만, 강북 어린이 전문병원 건립 사업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시 공공개발기획단 위탁개발팀 관계자는 본지에 “강북 지역에 어린이병원이 많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이 사안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저출산에 코로나19까지 더해지면서 독감 백신 무료접종 외에는 하루에 환자가 10명도 되지 않아 폐업 위기에 몰린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당장 전국에 한 두 곳이 아니다”라며 “이런 이유로 기존 소청과 전공의 중에서도 중도 포기자가 속출하는 마당에 서울시가 막대한 혈세를 투입해 필요성조차 불분명한 공공어린이병원을 건립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보건복지위원회)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아 24일 분석, 발표한 ‘최근 2년간 전공의 전문과별 사직자 현황(2019년-2010년 10월)’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전공의 수련 중도 포기자는 총 162명인데 이 중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20명으로 내과 34명, 가정의학과 22명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환자 수 감소 등으로 인해 다수의 전공의들이 소아청소년과의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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