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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전담의로 의료공백 메꾼다고?···국시 미응시생의 10분의 1도 안돼
입원전담의로 의료공백 메꾼다고?···국시 미응시생의 10분의 1도 안돼
  • 권민지 기자
  • 승인 2020.11.13 0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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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입원전담의 249명, 올해 실기 못 본 의대생 최종 2726명
저연차 전공의에 업무 쏠릴 것···레지던트 '엑소더스' 현실화될라
의사 국시 실기시험 마지막 날인 지난 10일 국시원 모습.
의사 국시 실기시험이 종료된 다음 날인 11일 오전 서울 광진구 자양동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최근 종료된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에서 전체 응시 대상자의 86%에 해당하는 2726명이 결국 시험을 치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두 달여 뒤면 2021년도 인턴 지원과 공중보건의 접수가 시작된다. 당장 정부가 추가 시험을 결정한다고 해도 올해 안에 ‘실기’ 시험을 다시 치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의료 공백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몹시 높아졌다. 

정부는 당장 닥쳐올 의료공백 문제를 입원전담의 등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입원전담의를 대폭 늘려 인턴 역할을 대체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일선 의료 현장에서는 "의료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며 정부의 안일한 대처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턱없이 부족한 입원전문의, 빅5 외엔 확보조차 어려울 것

입원전담전문의는 말 그대로 입원환자를 전담 마크하는 전문의다. 입원환자에 대한 주치의 역할을 하면서 환자 상태를 수시로 체크하면서 필요한 처치나 시술을 한다. 2016년 9월 보건복지부가 시범사업을 추진하면서 도입됐다.

입원전담의가 주체적으로 환자를 직접 치료하는 역할까지 담당한다면 인턴은 환자의 상태를 관리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서울 소재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내과 전공의 A씨는 “인턴은 코줄이나, 관장, 드레싱 등을 담당한다”며 “(치료) 지시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지시에 따른다”고 말했다. A씨는 “입원전담의는 전문의고 인턴과 역량 자체가 달라 입원전담의에게 드레싱이나 채혈 업무를 주면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비효율 문제뿐 아니라 입원전담의들이 아예 관둘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에 249명이 입원전담전문의로 근무하고 있다. 이번에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에 미응시한 의대생 수는 2726명이다. 내년에 부족해질 인턴 수와 단순 비교해도 10배나 차이가 난다. 복지부 장관의 호언장담처럼 입원전담전문의를 '대폭 늘려' 의료공백을 해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손호성 고대안암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입원전담의로 인턴 업무를 대체하겠다는 정부 방안에 대해 헛웃음을 지었다. 손 교수는 “누가 생각한 아이디어인지 정말 궁금하다”며 “소위 ‘빅5’ 병원을 제외한 나머지 병원들은 입원전담의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입원전담의의 수는 제한적인데 이들을 필요로 하는 병원은 많기 때문이다. 시장원리에 따라 이들의 몸값은 자연히 올라갈 수밖에 없다.

결국 ‘고액 페이’와 선호하는 ‘업무 조건’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중소 병원들로선 입원전담의를 구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일 수밖에 없다. 손 교수는 “입원전담의가 일은 전임의나 임상교수보다 적지만 페이는 교수 월급보다 많은 경우도 있고 원하는 시간대에 일하고 싶다는 등의 조건을 내거는 등 계약을 다양하게 하고 있다”며 “정부에서 입원전담의를 구해만 준다면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가 지원 약속 어떻게 믿나···저연차에 업무 가중 우려 확산 

정부는 재정지원을 통해 입원전담의 공급을 늘릴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일선 의료현장에서는 '그 얘기를 어떻게 믿느냐'는 분위기다. 

박능후 장관은 지난 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출석해 “인턴 수급의 경우 건보 수가를 지원해 입원전담 전문의를 활용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시범사업으로 운영 중인 입원전담의 제도에 더 많은 수가를 지원해 공급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공의 A씨는 “올해 초 코로나19 때도 (수당 등을) 안 주지 않았느냐”며 “정부가 늘린다는 입원전담의 지원도 없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불과 두 달 전에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도 입원전담의 제도의 본사업 전환이 위원간 이견으로 유보된 바 있다.

박 장관은 또 인턴 업무가 단순해서 간호사들이 커버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이에 대해 전공의 A씨는 “인턴 업무는 단순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피곤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며 “욕창 드레싱만 해도 닦고, 소독하고, 거즈를 채워 넣고, 밀봉하기까지 30분 가량 걸리는데 인턴은 드레싱만 하루에도 수십 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간호사들도 일이 힘들어 많이 그만두는 입장이지 않느냐”며 “현실적으로 (인턴 업무는) 레지던트 1년차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때문에 일선 현장에서는 최근 레지던트 1년차를 포기하겠다는 인턴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인턴에서 시작된 업무 쏠림이 도미노처럼 저연차 전공의들에게로 전가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국내 한 대학병원 병리과에서 근무하는 전공의 B씨는 “인턴이 없으면 고생할 게 뻔하다고 1년차 레지던트를 안 하겠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며 “우리 병원 신경외과도 지금 트라이(시험을 치르기 전 해당 과 근무 의사를 밝히는 것)가 없어서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레지던트 '엑소더스'가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업무 쏠림 '도미노' 현상은 공중보건의사들에게도 적용될 전망이다. 김형갑 대한공중보건의협의회 회장은 “내년도 공보의 부족 인원은 졸국이 이뤄진다는 가정 하에서 300명 이상”이라며 “1개 면 단위를 맡던 공보의 1명이 2개 면 단위를 커버하는 등 업무가 쏠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보건지소를 닫지 못하는 시·군·구가 다수 있었는데 추가 채용 없이 공보의가 담당하고 있는 보건의료체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온전히 재정투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손호성 흉부외과 교수는 “친구들과는 연락이 다 끊기고 가족들에게는 죄인이 되지만 환자를 살려야 하니 전공의와 교수들이 달라붙어 유지하고 있는데, 더 슬픈 것은 이 고통이 지금 세대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정부가 대한민국 의료에 대한 현실을 직시하고 탁상공론이 아니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보고 현실적인 대안을 내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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