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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자금 투입된 의약품에 제조사 독점권 규제 필요”
“공적자금 투입된 의약품에 제조사 독점권 규제 필요”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0.11.10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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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협, 국회 토론회서 팬데믹 시대 제약주권 확립 방안 논의
공공제약사 설립·글로벌 스탠다드 규제 필요 주장 등도 나와

“특정 제약회사만의 이익을 위해 공적자금이 투입되어서는 안됩니다.”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는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에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될 경우 그 의약품의 제조사가 가진 독점적 권한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의 공동 주최로 10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 제약바이오 경쟁력 강화를 위한 토론회’에서 하신혜 '국경없는 의사회' 대외협력부 보좌관<사진>은 ‘팬데믹 시대 의약품 개발이 나아갈 방향’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지난 9일(현지시각) 미국의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의 임상 3상 시험에 참가한 백신 접종자 중 90% 이상이 예방 효과를 나타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현재 화이자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수많은 제약·바이오업체들이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고 임상시험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된 뛰어난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더라도 생산량 부족이나 고가의 약제비, 의약품 운반 기술의 미비 등의 이유로 충분한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혜택을 인류가 필요한 만큼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각국 정부가 자국 제약회사에 엄청난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을 지원하고 있지만 제약회사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 개발된 의약품에 대해서도 독점권을 주장해 고가의 약제비를 요구하거나 공급에 제한을 가해 수익을 창출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신혜 보좌관은 “길리어드의 렘데시비르에도 7000만 달러(한화 780억 8500만 원) 이상의 공적자금이 투입됐지만 현재는 모든 주도권을 길리어드가 갖고 있으면서 일부 기업과 국가에만 선택적으로 계약을 체결해 공급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우리나라에서도 CEVI융합연구단이 코로나19 백신·치료제·진단 분야 기술을 국내 바이오기업에 기술 이전한다고 했는데 과연 어떻게 기술 이전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6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CEVI(신종바이러스)융합연구단은 기술 이전 협약식을 열고 국내 코로나19 백신·치료제·진단 기술의 선도 기업 3곳과 계약을 체결하고 다른 기업들에 기술을 이전해 상용화를 위한 연구를 이어 나가기로 했는데 이와 관련해 정확한 내역은 현재까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하 보좌관은 “엄청난 공적자금이 투입돼 의약품이 개발됐음에도 불구하고 제조사가 우선적 권리를 가져 정부와 공공기관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한 기업의 수익을 늘리는 데에만 쓰인다면 더 이상 공적자금을 투입할 이유가 없다”며 “앞으로 공적자금이 투입된 R&D에 대해서는 공익과 국제사회 수요를 염두에 둔 모델을 구축하고, R&D 비용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공적자금 투입 시 어느 정도는 목표가격을 설정해야 한다. 그것도 힘들다면 사전에 마진율을 합의해서 마진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 보좌관은 “무엇보다 제약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의약품 개발의 속도만 중요한 게 아니라 접근성, 가격, 연구개발의 투명성을 조명하고, 공익적 목적에 부합하는 R&D 목표(안전성·효과성, 제조물량 확대, 저소득 국가의 활용적합성, 가격적정성 등)를 설정해야 하며, (현재 전 세계에 만연된) 자국 우선주의도 시급히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 외에도 필수의약품 수급과 의약품 주권 확보를 위해선 국가가 직접 의약품 제조에 나서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영준 아주대 교수는 “투약 비용이 1년에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고가의 희귀질환, 필수의약품의 경우 제조사가 결정적인 권한을 갖고 있어 필요한 곳에 공급이 원활히 이루어지기 힘들다”며 “이런 이유로 인도, 브라질, 프랑스 등은 정부가 직접 공공제약사를 운영하고 있고, 독일과 미국, 영국 등은 강제적인 의약품 공급 체계 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공공제조 센터(공공제약)를 구축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수익성  문제로 민간에서 투자가 힘든 희귀의약품이나 필수의약품의 제조나 연구개발은 물론, 민간영역에서 필요로 하는 의약품 제조, 생산, 품질관리, 연구개발 인력의 교육 등을 담당하고, 나아가 제약·바이오 분야 스마트 제조공정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여당 관계자들도 제약·바이오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제약업계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채규한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정책과장은 “의약품 개발은 엄청난 비용과 투자가 필요해서 통상 임상시험에만 8년여가 소요된다”며 “무엇보다 식약처와 같은 규제기관 본연의 역할은 이러한 엄격한 규제를 통해 안전관리를 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규제 체계도 결국 산업과 함께 발전해야 하기 때문에 식약처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된 의약품이 하루빨리 출시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패스트 트랙 등 허가 체계 개선에 주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지금까지의 ‘갈라파고스식’ 규제 방식을 버리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규제 방식을 도입하여 우리나라에서 의약품 허가를 받으면 글로벌 시장 진출이 즉시 가능토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맹목적인 규제 철폐만이 최선의 정책 방향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다.

조원준 더불어민주당 보건의료 전문위원은 “정부와 여당은 이미 수천억의 예산을 투입해 제약·바이오산업의 육성을 적극 지원하고 있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나 ‘인보사 사태’ 등에서 보듯이 과도한 규제 개선은 오히려 업계의 신뢰 하락을 불러올 수 있는 만큼 무조건적인 규제 완화보다는 전문인력 확충 지원 등 선도적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현재도 제약·바이오 분야 주식시장에서 ‘거품’이나 ‘먹튀’ 등의 논란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 현실인 만큼 이를 방지하기 위한 보완 대책 마련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규제 철폐를 포함해 업계에 주어지는 각종 혜택과 특성을 이용해 부정한 방법으로 이익을 노리는 이른바 ‘작전세력’이 많은 환경을 염두에 둔 것이다. 유달리 주가 널뛰기가 심한 제약·바이오 분야 주식시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무조건적으로 규제를 철폐하기보다 오히려 일정한 제재를 가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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