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문제는 '헌혈' 아닌 '수혈'···“병원별·수술별 수혈 자료조차 없다”
[기획] 문제는 '헌혈' 아닌 '수혈'···“병원별·수술별 수혈 자료조차 없다”
  • 권민지 기자
  • 승인 2020.11.03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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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대란이 다가온다' ①]
동일한 수술에 수혈량 최대 20배 차이, '혈액절벽' 앞두고 좌시해선 안돼
한번 '시킨 피' 재보관 안돼···"자료축적·피드백 가능 전산시스템 도입해야"

“수술방에서 피 한 방울 안 흘리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30파인트(약 17리터, 몸무게 70kg 성인 남성 3명의 체내 혈액량)를 갖다 붓는 의사도 있다” (정기석 한림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 

“똑같은 인공관절수술을 해도 병원마다 수혈량이 최대 20배까지 차이가 난다” (박종훈 고대안암병원장·환자혈액관리학회장)

세계헌혈자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6월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혈의집 광화문센터에서 시민들이 헌혈을 하고 있다.
세계헌혈자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6월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혈의집 광화문센터에서 시민들이 헌혈을 하고 있다.

일선 의료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같은 수혈 불균형은 공공연한 문제로 지적돼 왔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헌혈량이 급감, 소위 '혈액절벽'이 예고된 상황에서 부족한 혈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더이상 수혈 불균형 문제를 좌시해선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억지로 남의 피를 뽑아 '공급'을 늘릴 수는 없지만, 의료진의 노력에 따라 필요한 수혈량(수요)은 조절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효성 없는 수혈 가이드라인

흔히 수술실에서는 '피를 시킨다'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출혈이 발생하는 위험 상황에 대비해 수혈할 혈액을 미리 수술실에 준비해두는 것인데, 피를 일정량 이상 ‘시켜놓지 않으면’ 수술을 시작하지 않는 의사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렇게 확보한 피는 다시 보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시켜놓고’ 사용하지 않은 피는 모두 폐기 처분해야 한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3년 (2017~2019년)동안 폐기된 혈액량은 총 11만5895유닛이다. 특히 폐기 사유 중 ‘양부족·양과다 등’으로 폐기된 혈액량이 3년 동안 폐기된 전체 혈액량의 9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2019년 한 해동안 폐기된 혈액은 약 4만 유닛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대한적십자사가 고령 수혈자 증가로 2030년에 늘어날 것으로 예측한 적혈구 제제 사용량(5만 유닛)과 맞먹는 규모다. 

혈액이 실제로 사용되는 경우엔 요양기관별로 사용량의 편차가 크게 나타났다. 심평원의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에 따르면, 2019년 1~3월 요양기관별 혈액제제류를 사용한 환자 수는 △종합병원(8만5201명) △상급종합병원(5만2989명) △병원(5만2874명) △의원(3만3941명) △요양병원(1860명) 순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혈액제제류를 사용한 수량을 따져보면 환자 수 순위에서 4위였던 의원(1283만9318개)이 제일 많았고 △상급종합병원(322만5335개) △종합병원(281만8810개) △병원(13만2329개) △요양병원(2765개) 순이었다. 고위험 수술을 많이 하는 상위 병원에 비해 의원급 의료기관의 수혈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이다. 

이처럼 불필요한 혈액 폐기와 병원별로 수혈 편차가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16년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가 수혈 가이드라인을 내놨지만, 강제성이 없는 권고사항이어서 실효성은 거의 없다는 지적이다.

또한 환자마다 임상적 특징이 다르고, 수혈량을 통제하는 것은 철저하게 의사의 실력에 달려있어 강제하기가 쉽지 않다. 김태엽 건국대병원 교수(환자혈액관리학회 연구이사)는 그 이유 중 하나로 “수혈을 많이 하면 할수록 의료기관의 수익이 늘어나는 반면, 수혈을 줄이면서 환자를 관리하는 데 소요되는 추가적인 노력은 수가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환자혈액관리 중심으로 패러다임 전환해야 

정부의 혈액관리 정책의 기조는 최근까지 '수혈'보다는 '헌혈'에 방점이 찍혀있었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혈액사업중장기발전계획(2018~2022)’에서 정부는 중장년층 헌혈자 비율을 총 헌혈자의 42%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기도 했다. 김태엽 건국대병원 마취과 교수(환자혈액관리학회 연구이사)는 이를 두고 “(정부의) 헌혈 공급량 확보 정책은 ‘비오고 태풍 피해 입으면 수재의연금 걷는 발상의 연속’”이라고 지적했다.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헌혈을 권장하는 공급자 중심의 정책 패러다임을 환자혈액관리(Patient Blood Management, PBM) 중심으로 하루빨리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혈과 관련한 기초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시작점'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수혈 불균형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특정 수술별로 병원마다 적혈구 제제 수혈량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통계 자료를 찾아봤지만, 가장 최근에 발간된 ‘수혈적정성평가 보고서(2004)’나 보건의료빅데이터시스템 등 어디에도 이와 관련한 통계는 없었다. 결국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자료를 요청했지만 심평원 관계자는 “정보공개법 때문에 병원별 데이터는 뽑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식별 처리한 데이터로도 받을 수 없느냐’고 묻자 “병원별 데이터 자체가 제공이 안된다”며 “병원별로 데이터를 뽑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답했다. 현황 파악을 위한 기본적인 통계자료조차 제공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박종훈 병원장은 “피가 없으면 남아 있는 피를 적절하게 잘 쓸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데, 정부는 무조건 헌혈만 장려하고 있다”며 “수혈 적정성 평가결과가 나오는 데 2년이 남았다는데 이를 앞당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엽 교수는 “‘인구당 혈액 사용량’ 외에 유용한 상황을 반영한 전산 자료가 전혀 없다”며 “환자별, 수술별 수혈 및 혈액 자료의 축적과 피드백이 가능한 전산 시스템이 도입돼야하는 것이 국가적 선제조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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