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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신화’ 쓴 이건희 회장, 10년 전 한 얘기 들어보니
‘반도체 신화’ 쓴 이건희 회장, 10년 전 한 얘기 들어보니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0.10.29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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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바이오산업 키워라”···2010년 ‘비전 2020’에 바이오산업 포함시켜
삼성바이오로직스, 설립 9년 만에 전통 제약사 제치고 매출 1조 원 눈앞
글로벌제약사와 경쟁 대신 CMO·바이오시밀러에 집중, 코로나 사태도 일조

지난 25일 타계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관련해 제약·바이오업계에선 고인이 생전에 “제약·바이오 산업을 키워라”고 했던 말이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이건희 회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산업은 단연 '반도체'다. 지난 28일 진행된 고인의 영결식에서도 이수빈 삼성 고문은 고인의 약력보고를 하면서 “지난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대한민국 반도체산업의 초석을 다지고 ‘신경영’을 통해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며 한국의 ‘반도체 신화’를 이끌었던 고인의 업적을 우선적으로 기렸다. 

하지만 제약·바이오업계에서는 삼성그룹이 호황을 누리던 10년 전 “제약·바이오산업을 키워야 한다”라며 삼성의 제약·바이오 분야 진출을 선언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호시절에도 미래를 내다보고 또다시 ‘위기’가 올 수 있다며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했던 것이다. 

◆2010년 바이오·의료기기 신수종 5대사업에 선정

지난 2010년 5월 삼성 사장단은 ‘비전 2020’을 내놓고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며 5대 신수종 사업으로 태양전지, 자동차전지, LED와 함께 바이오, 의료기기를 제시했다. 바이오 부문에서 삼성은 CMO(위탁생산)와 바이오시밀러를 중심으로 2020년에는 누적투자 2조1000억 원, 매출 1조8000억 원, 고용규모 710명을 이루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이듬해인 2011년 4월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설립하며 이러한 계획을 구체화했다.

다른 나머지 신사업들이 기존 삼성 계열사들의 주력 산업이거나 유관 산업이었던 데 반해, 바이오 분야는 삼성으로선 새로운 도전이었다. 성패를 가늠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산업에 과감히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전문경영인이 아닌 오너인 이건희 회장의 용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사진=뉴스1)
생전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뉴스1)

당시 이 회장은 삼성그룹의 경영진들에게 “바이오·제약은 삼성그룹의 미래사업이 될 것”이라며 “인류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사업인 만큼 사명감을 갖고 적극 추진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오를 비롯한 헬스케어산업은 건강과 생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특성상 안전성과 유효성 등의 검증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업계에서는 통상 자리를 잡기까지 30년 이상 장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장은 글로벌 제약사와 우리나라 의약 산업의 기술 수준의 격차가 크다는 점을 고려해 위험 부담이 큰 신약 개발보다는 CMO(위탁생산)와 바이오시밀러를 키운다는 전략을 세워 15년 만에 결실을 보라고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화된 비전···삼성바이오로직스, 올해 계약액 1조 넘어

이같은 이 회장의 결단은 현 시점에서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10년이 지난 지금 ‘비전 2020’의 대부분은 현실화되어 당시 삼성이 제시했던 5대 신수종 사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바이오산업은 올 들어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사태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당시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기대를 받고 있다.

9년 전 출범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장 역시 눈부시다. 지난해 매출 7015억 원, 영업이익 917억 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데 이어 올 3분기까지 누적매출 7895억 원, 영업이익 2002억 원으로 이미 지난해 실적을 초과 달성한 상황이다. 

공시에 따르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7월엔 미국 제약회사 일라이 릴리와 1억4999만 달러(약 1794억8999만 원) 규모의 CMO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매출액의 25.6%를 차지하는 규모다. 지난 9월에도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인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와 3억3080만 달러(3,850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에만 총 1조 원이 넘는 계약을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누적투자액 2조 이상, 천문학적 투자가 결실 거둬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지에 위탁개발(CDO) R&D 센터를 설립하고 미국·유럽 등 글로벌 시장 진출을 더욱 본격화할 계획이다. 코로나19로 주고객인 미국과 유럽의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기 어려워지자 아예 현지에 연구개발 센터를 세워 더 많은 프로젝트를 수주하겠다는 것이다.

설립한 지 채 10년도 안 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수십 년 업력의 전통적인 국내 제약사들을 제치고 이같은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바이오산업의 적자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삼성이 가진 자본력을 바탕으로 천문학적인 투자를 지속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난 9년간 누적 투자액은 2조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의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지난 2018년 8월 바이오산업을 포함한 인공지능(AI)·5G·전장 부품 등 4개 유망 분야에 2020년까지 추가로 180조 원을 투자하고 4만 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규제 완화와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의 지속이 맞물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내년도 실적은 더욱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 국내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주요 대기업만큼이나 덩치가 큰 글로벌 제약사들과 당장 경쟁에 나서 리스크가 큰 신약 개발을 하기보다는 CMO와 CDO, CRO, 바이오시밀러부터 집중 육성한다는 10년 전 삼성의 전략이 현재로선 적중했다고 할 수 있다”며 “세계 시장을 석권한 삼성의 경영 노하우가 코로나19 상황의 지속, 인구 고령화와 맞물려 바이오 분야에서 삼성의 성장은 앞으로도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이며 삼성의 참여로 전체 산업계에서 제약·바이오 분야의 파이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업계에서도 이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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