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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해 우려”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해 우려”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0.10.21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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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신경외과·재활의학회 등 8개 학회, 공동 반대성명 발표
"필수의료는 외면하면서 치료 표준화도 안 된 한방에만 혜택"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한방첩약에 대해 정부가 ‘급여화 시범사업’을 강행하는 것에 대해 신경과와 신경외과 등 뇌질환을 다루는 전문 의학회들이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대한신경과학회(이사장 홍승봉), 대한신경외과학회(이사장 오창완), 대한재활의학회(이사장 이상헌), 대한뇌졸중학회(이사장 권순억), 대한신경중재치료의학회(회장 서상현), 대한뇌혈관외과학회(회장 고현송), 대한뇌신경재활의학회(이사장 백남종)와 대한뇌혈관내치료의학회(회장 윤석만)는 한방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추진에 대한 공동 반대성명을 20일 발표했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11월부터 뇌혈관질환 후유증, 월경통, 안면마비 3개 질환에 대해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시행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8개 학회는 이로 인해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수 있고, 건강보험재정의 합리적인 운영을 위한 재정 지원의 결정 원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절차상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8개 학회는 우선 한방첩약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약제의 사용은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흉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일례로 과거 임산부들에게 흔히 사용했던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로 인해 태아의 팔다리가 없이 태어나는 선천성 기형이 대규모로 발생한 것을 거론했다.

독일 그뤼넨탈사가 지난 1957년 ‘콘테르간’이라는 임부 입덧방지·수면제로 출시한 이 성분으로 인해 1962년 최종적으로 판매금지가 될 때까지 5년간 전 세계 48개국에서 약 1만 2000명 이상의 기형아가 태어나 현대의학사에서 최악의 약해사고로 기록됐다.

8개 학회는 “이 60년 전 사건 이후 환자에게 사용되는 모든 약들은 엄격한 임상시험을 통해 약의 효능뿐 아니라 안전성을 심사하여 승인하는 절차를 거치고 있고, 승인된 약물도 장기 투여의 안전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과학적으로 검증하여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사용 승인을 취소하기도 한다”며 “판매 중인 약품의 생산 제조 과정에 있어서도 유해한 불순물이 포함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한방첩약은 그 성분이 제대로 분석되어 있지 않아 약의 일관된 효능을 평가하기 어렵고, 장기적 관찰을 바탕으로 한 안전성 자료를 수집할 수 없다”며 “한약재의 재배 및 유통 과정 중에 유입될 수 있는 오염물질과 독성물질에 대한 최소한의 검증조차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일례로 “장기복용 시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코니틴이나 신장손상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리스톨로킥산을 함유한 한약재들이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이나 대만 등에서도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이 보고됐다”고 전했다.

8개 학회는 뇌혈관질환의 후유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에게 투여되는 모든 약들은 환자의 안전을 위한 기본적인 검증과 안전성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하지만 한방첩약에 대해서는 이러한 검증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시범사업 추진 절차상의 문제도 지적했다. 현재 정부는 건강보험정책 최고 의결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시범사업 추진이 통과된 사안이므로 반드시 진행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8개 학회는 시범사업 추진에 앞서 전문가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8개 학회는 “건정심 의결과 통과에 앞서 뇌혈관질환의 후유증을 갖고 있는 국민을 대상으로 시행되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대부분을 진료하고 있는 전문학회의 의견조회나 일절의 자문 없이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시범사업 과정에서 환자에게 투여되고 있는 첩약의 성분과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정보가 담당 의료진에게 전혀 제공되지 않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은 추후 담당 의료진이 환자들에게 발생하는 이상반응을 적절히 대처하는 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시범사업 진행 과정을 모니터링하거나 그 결과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도 전문학회의 참여가 배제되어 있는 상태”라며 “이렇게 막대한 세금 지출이 예상되는 시범사업에 대한 타당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시범사업의 시행은 다시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정된 건강 보험 재정의 합리적인 운영을 위해 안전성과 효과뿐 아니라, 엄격한 경제성 검증 절차 후 건강 보험 재정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뇌졸중 후에 오는 신경통증, 구역, 구토, 식욕 부진 등에 효능과 안정성이 입증된 약제들조차 건강보험 재정상의 문제로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많은 뇌졸중 환자들이 고가의 약제비용을 전액 본인 부담으로 지불하며 어쩔 수 없이 복용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한의사마다 처방하는 첩약은 한방에서 정의하는 중풍과 뇌혈관 질환의 정의가 같지 않고 표준화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8개 학회는 “이는 첩약의 안정성과 효능 평가가 불가능함을 의미한다”며 “뇌졸중 후유증 관리를 위해 필요한 의약품의 급여화가 우선임에도, 안전성과 효과를 검증할 수 없는 한방첩약부터 급여화하려는 시도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았고 효능도 평가할 수 없는 한방첩약을 무리하게 시범사업으로 급여화하는 시도는 진행 절차상의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건강보험 재정의 악화를 초래할 수 있으며,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8개 학회는 복지부에 대해 “무리하게 시범사업을 추진하기보다는 원점에서부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중심의 검증 절차를 거쳐, 국민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갈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라”며 더 나아가 “한방의료 전반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최소한의 원칙도 무시한 채 근거 없이 진행하려는 한방첩약 급여화 계획을 중단 및 원점에서 재논의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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