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5분의 1, 우리나라에서 장기 기증이 부진한 이유는?
스페인의 5분의 1, 우리나라에서 장기 기증이 부진한 이유는?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0.10.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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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 인식, 까다로운 기증 절차, 유족에 대한 예우 부족 등 장애물 지적
심정지환자까지 대상 확대 필요···장기기증원, 지자체와 그린라이트 캠페인

우리나라는 장기 조직 기증자가 부족한 국가로 꼽힌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질병관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4년간 장기 및 조직 기증자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기ㆍ조직 기증은 2016년 941건, 2017년 688건, 2018년 622건, 2019년 620건으로 해마다 감소했다. 

2019년 국가별 뇌사 기증자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인구 규모가 비슷한 스페인의 경우 2301명이 장기를 기증한 반면, 우리나라는 기증자가 450명에 불과했다. 인구 100만 명당 뇌사 기증자 수를 나타내는 뇌사 기증률은 우리나라가 8.68%인데 스페인은 6배 정도인 48.9%로 나타났다. 다른 국가들도 미국 36.9%(1만1870명), 이탈리아 24.7%(1495명), 영국 24.9%(1653명), 독일 11.2%(932명) 등으로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높다.

이렇게 장기 기증이 부족하기 때문에 국내 장기 이식 대기자는 사상 처음으로 4만 명을 넘어섰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2020년 7월 기준 이식 대기자는 4만1262명을 기록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장기 기증자가 부족한 데에는 장기 기증에 대한 오해와 부정적인 인식, 그리고 까다로운 장기 기증 절차, 유족에 대한 예우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최근 의사신문과 만난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조원현 원장<사진>은 “우리나라는 유교 사상에 따른 신체 훼손에 대한 거부감과 장기 기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이에 더해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장기 이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만연해 장기 기증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반면, 선진국의 경우 장기 기증 주간이 되면 그 지역의 이름을 딴 축제가 있을 정도로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비해서는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따르면 지난 1~4월 모바일과 홈페이지를 통한 장기 기증 희망등록자는 1만961명으로 지난해 대비 200% 증가했다. 미성년자가 부모 동의 없이 장기 기증 희망등록을 할 수 있는 나이를 만 19세에서 만 16세로 낮추면서 젊은 층의 기증이 늘어난 것이 주요원인으로 분석된다. 

국내에서는 특히 장기 기증을 막는 요인으로, 까다로운 장기 이식 절차가 지적된다. 현행법상 장기 이식을 위해서는 장기 이식 희망자가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이 동의율이 33%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이나 캐나다 등에서 동의율이 90%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장기 기증 대상자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법상 장기 기증 대상자는 ‘뇌사자’에 한정되는데, 의료계에서는 이를 ‘심정지환자’로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뇌사자뿐만 아니라 병원 내에서 사망해 심장 기능이 정지된 환자의 경우 사전에 본인과 가족의 동의가 있다면 사후에 곧바로 장기 적출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장기 기증이 활성화된 유럽국가에서는 심정지환자의 장기 기증을 허용하고 있다. 영국만 해도 전체 장기 기증의 약 40%가 심정지 후 장기 기증이고, 네덜란드는 이 비율이 무려 59%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 이식 전 유족의 동의를 얻을 때에는 배우자, 직계비속, 직계존속, 형제자매 등의 순으로 선순위자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1인 가구가 늘고 가족 간의 교류가 줄면서 종종 유족을 찾기가 어려운 경우가 발생해 보호자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장기 기증 활성화를 위해서는 장기 기증 후 유족에 관한 처우개선도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에서는 장기 기증자 유족에게 최소 18개월 동안 심리상담 등 돌봄 서비스가 제공되고 추모공원을 조성해 기증자의 뜻을 기리고 있다. 유족과 이식자의 교류도 허용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이 모든 것이 가로막혀 있고 심지어 지난 2017년 10월에는 장기 기증 사후처리 문제로 다수의 장기 기증 신청자들이 신청의사를 철회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김정재 의원(국민의힘·포항북구)은 지난달 8일 장기 기증의 날을 맞아 장기 기증자 및 유가족과 장기 이식인 간 서신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장기 기증을 어렵게 하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국내에서 장기 기증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장기 기증에 대한 막연한 오해를 줄이고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최근 장기조직기증원은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생명나눔의 소중함을 전하기 위해 전국 지자체 및 기업과 적극적인 협력관계 구축에 나섰다. 지난 12일부터는 보건복지부 국가장기조직혈액관리원, 전국 지자체, 민간기업과 함께 일주일간 전국 주요 랜드마크에서 ‘생명나눔 그린라이트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WHO(세계보건기구)에서는 유방암 관련 캠페인에는 핑크색을, 장기 기증을 상징하는 색으로 초록색을 규정하고 있다. 그린라이트 캠페인은 장기 기증 조례를 가진 전국의 지자체들이 함께 장기 기증을 상징하는 초록빛을 동시에 점등함으로써 ‘생명나눔의 불을 밝힌다’는 의미를 세상에 알리겠다는 취지다. 

조원현 원장은 “사실 각 지자체 조례에 장기 기증을 위한 조항이 대부분 있지만 거의 기능을 하지 못해 앞으로 이를 활성화시켜 보자는 취지에서 지자체와 적극 협력하고 있다”며 “전국 곳곳에 생명나눔의 가치를 상징하는 그린라이트가 널리 퍼져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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