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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애인을 방역 취약계층으로 봐야 하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애인을 방역 취약계층으로 봐야 하나
  • 권민지 기자
  • 승인 2020.09.17 16: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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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추경에 방역 관련 장애인 예산 반영 안되자 국회서 갑론을박
야당측 문제제기에 박능후 ”기저질환자 우선 지원, 장애인은 아냐"
박능후 장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17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참석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모처럼 고성이 터져나왔다.

코로나19 사태 확산 이후 복지부 장관이 참석한 복지위 회의에서 고성이 오간 것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지난 3월 의료진이 쓸 마스크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박 장관이 "재고를 쌓아두고 싶어하는 심정에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답해 논란을 일으켰을 때가 대표적이다. 당시 발언은 의료계의 공분을 샀고, 박 장관에 대한 사퇴 요구로 이어졌다.  

이날도 박 장관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다만, 과거에 비해 비교적 합리적인 답변이었다는 평가에도 야당 의원들의 원성을 사, 박 장관이 그동안 논란이 되는 발언을 많이 한 탓에 '미운 털이 박힌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추경에 "장애인 예산 없다" 지적에 박능후 "장애인이 방역취약계층은 아냐"

논란이 된 박 장관의 발언은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이었다. 정부가 21일 통과를 목표로 하는 4차 추가경정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이 의원은 "장애인 예산이 없다"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박능후 장관은 “방역 차원에서 볼 때 장애인이라 취약계층으로 분류하는 건 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반박했다. 장애인에 대한 과도한 배려가 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이 될 수 있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이종성 의원은 “지난 3차 추경 때도 정부가 34조에 달하는 추경을 편성하면서 장애인 관련 예산은 100억원을 삭감했다”며 “4차 추경에서 장애인이라는 단어는 어디에도 없다”며 공세를 이어갔다. 

이 의원은 “정부는 청와대와 여당이 써주는 대로 선심성 예산을 편성하기에만 급급하고 소외계층을 외면하고 있다”며 “대통령 입에서만 평등과 공정이 존재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박 장관은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 다른 증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이 방역 우선대상이지 장애인이 방역취약계층이라는 것은 바른 시각이 아니다”라고 되받았다. 이어 “이번 4차 추경에 ‘장애인’이란 단어가 안 들어간 것처럼 ‘광부’나 ‘농부’도 안 들어갔다”면서 “장애인도 65세 이상이면 긴급지원대상이 되는데, 특정 단어가 빠졌다고 지적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말했다. 

이같은 박 장관의 발언이 끝나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잠시 뒤 발언 시간 초과로 마이크는 꺼졌지만 이 의원은 “그러면 장애인정책국이 왜 필요하냐”고 소리쳤고, 또다른 의원은 “참고하겠다고 말씀하시지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라고 외쳤다. 박 장관은 그제야 “알겠다”고 짧게 답했다. 

공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박 장관이 다른 일정으로 회의장을 떠나자 이 의원은 이번엔 김강립 복지부 차관을 대상으로 ‘2차전’을 이어갔다. 

이 의원은 김 차관에게 “(의원 발언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는)장관의 발언에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이에 김 차관이 “차관이 장관의 발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 그러자 이 의원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거냐”고 다그쳤다. 

이 의원은 언성을 높이며 “장애인이 보건의료취약계층이라는 것은 현행법상, 장애인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며 “차별이 왜 거기서 나와!”라고 소리쳤다. 결국 한정애 위원장이 “오후에 속개한 뒤에 해달라”며 급히 산회를 선포했다. 

◆법률은 장애인이 일반인과 동등하게 의료서비스 누릴 권리 강조

이종성 의원이 언급한 장애인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을 확인한 결과 ‘장애인이 보건의료취약계층’이라고 적시된 부분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장애인이 특히 취약해 지원해야 한다는 조항보다는, 장애인도 일반인과 같이 동등하게 보건의료 서비스를 누려야 한다는 사실이 명시돼있었다.

“건강관리 및 보건의료에 있어 차별대우를 받지 않아야 한다(2조2항)”는 조항과 “건강관리 및 보건의료 서비스 접근에 있어 비장애인과 동등한 접근성을 가질 권리를 가진다(2조3항)”는 조항을 보면, 해당 법률은 장애인에 대한 ‘특별 배려’보다는 장애인이 일반인과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어 있다. 

전문가들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방역 취약 계층으로 분류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정기석 한림대학교 호흡기내과 교수는 “의학적으로 신체적 장애에 한해 코로나에 더 잘 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만성질환이 있거나, 노인이거나, 담배를 피거나, 비만이거나 하는 위험인자 때문이 아니라 ‘장애인’이 위험인자라는 것은 아직까지 발표된 바 없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장애에 대한 불편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인정해야 할 부분이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에 취약하다고 단정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이중지원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논란의 당사자들은 생각이 어떨까. 이용석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실장은 "차별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보건복지 수장인 장관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의심스럽다"며 "올 초에는 '장애인들은 취약계층'이라며 장애인연금법 통과를 요구하더니 이번에는 말이 다른 것을 보면 장애인을 정책적 도구로만 생각하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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