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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에 뭉친 의약계 “첩약급여화는 특혜, 건강보험 체계 무너뜨릴 것” 경고
20년만에 뭉친 의약계 “첩약급여화는 특혜, 건강보험 체계 무너뜨릴 것” 경고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0.09.10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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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의약계 비대위, 기자회견 열고 첩약급여 시범사업 전면재검토 촉구
상당수 필수의료도 급여화 안됐는데 첩약은 안전성·유효성조차 확보 안돼

범의약계 단체들이 오는 10월 시행을 앞둔 한방첩약 급여 제도화 시범사업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정부와 국회에 촉구하고 나섰다. 아직 한방첩약 급여화에 대한 의학적 타당성이나 치료·비용 효과성을 증명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업이 시행될 경우 자칫 건강보험 체계를 무너뜨리게 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첩약 과학화 촉구 범의약계 비상대책위원회는 10일 용산 의협 임시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00년 의약분업 사태 이후 최초로 의료계와 약계가 하나가 돼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반대는 결코 직역 간의 다툼이 아닌, 한방의 과학화·의료일원화에 역행해 더 심각한 의료 왜곡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비대위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첩약의 원재료 관리에서부터 조제 후 과정까지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보되지 않은 것”이라며 “이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건강보험의 비과학적 정책”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논의된 사안이라 철회가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정한 최고 의결기구인 건정심에서 결정된 사안이기 때문에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원점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대위는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의 신 의료기술이 건강보험의 급여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비용 효과성에 대한 엄정한 검증을 거치고 근거를 가져야 한다”며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 때문에 필수의료의 수많은 영역이 아직 급여화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급여 대상 기준인 의학적 타당성과 의료적 중대성, 치료 효과성, 비용 효과성을 증명하지 못한 한방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은 건강보험 체계를 무너뜨리는 일"이라며 "첩약에만 과도한 특혜를 적용하는 불공평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특히, 이들은 치료 '효과성'의 측면에서도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에는 문제가 있다고 봤다. 이번 시범사업 대상 질환인 월경통과 안면신경마비, 뇌혈관질환 후유증의 경우 이미 기존 치료 영역에서 충분한 대안이 존재하는 만큼, 시범사업이 실시될 경우 '중복치료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범의약계 대표들은 "첩약 급여화는 결국 건보재정을 악화시키고 국민건강에 피해를 줄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김건상 전 대한의학회 회장은 “전세계가 코로나라는 대혼란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시국에 ‘한방 첩약 급여화’ 문제를 다루고 있는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그린벨트는 한 번 풀면 영원히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국무총리의 말을 거론하면서 마찬가지로 “비용과 효과성을 무시한 시범사업은 건강보험 재정과 국민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좌석훈 대한약사회 부회장도 “첩약 급여화 문제는 25년 전부터 거론됐던 사안으로, 정부는 그때나 지금이나 의학적 타당성이나 비용, 치료 효과는 제시하지 않은 채 ‘국민 수요가 높다’라는 주장만 하며 사업을 추진하려 한다”면서 “시범사업을 시행하기 전 건강보험 급여 조건 충족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왕준 대한병원협회 국제위원장은 “복지부가 의료계·의학계의 논의 자체를 철저하게 거부한 채 사업을 강행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지만, 정부는 시범사업에 대한 기준과 과정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범의약계의 의견을 배제하고 사업을 강행하는 것은 건정심의 위상에 파열음을 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종혁 의협 총무이사 역시 이번 시범사업에 대해 "국민 건강이 정치에 오염된 대표적 사례"라고 지목했다. 박 이사는 "생명의 가치는 쉽게 생각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시범사업을 통해 안전성을 평가하겠다고 하고 있다"며 "첩약 급여화 사업에서 국민이 시험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앞서 지난 7월 대한민국의학한림원과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의학회,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대한약사회, 대한약학회 등 7개 단체 및 의약계 원로들은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저지를 목표로 비대위를 구성했다. 이들은 시범사업 저지를 위해 공청회를 여는 동시에 정부와 국회에 반대 의견을 지속적으로 전달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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