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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풍을 완치한다고?···첩약급여사업 계기로 ‘선무당식 의료’ 기승부릴라
통풍을 완치한다고?···첩약급여사업 계기로 ‘선무당식 의료’ 기승부릴라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0.09.10 05: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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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풍은 만성 질환인데 “충분히 완치 가능” 홍보, 안전성·유효성 검증 안 돼
한약에 전문의약품 섞어쓰다 적발도···5년간 360만 개 한의원에 불법 유통

제대로 된 검증이 결여돼 안전성이 우려되어 의료계가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은 확고해 보인다.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이창준 보건복지부 한의학정책관은 최근 범의학계의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전면 재검토 요구에 대해 “건정심 결정에 따라 사업을 시행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이미 의료계가 참여한 건정심에서 결정한 사항인 만큼 그 결과를 따르겠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당장의 첩약 급여화 사업 자체도 문제지만, 이번 시범사업이 자칫 일반인들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하고 있다. 첩약의 안전성이나 유효성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첩약 급여화 사업이 결정됐지만, 이를 계기로 일부 한의원 등이 한약이나 한의학 치료법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미 전문 한의원을 표방하며 만성 질환처럼 사실상 완치가 불가능한 질환에 대해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한의원들이 더욱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완치 어려운 만성 질환 통풍에 “충분히 완치 가능” 주장

최근 ‘통풍치료 전문’을 내세우고 있는 H한의원의 원장 A씨는 통풍이 ‘별 것 아닌 완치가 가능한 질환’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SNS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A씨는 “통풍은 초기에만 제대로 치료하면 짧은 기간에 치유할 수 있는 쉬운 질병의 하나일 뿐”이라며 “요산 수치만이 문제가 아니라 운동 잘 하고 면역력이 높으면 충분히 완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통풍(痛風, Gout)은 바람만 불어도 아프다고 할 정도로 통증이 극심해서 ‘통풍’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의료계에서는 육류, 해산물, 맥주, 시금치 등 ‘퓨린’을 많이 함유한 음식을 많이 섭취함으로써 체내에 요산의 농도가 높아지면서 요산염 결절이 연골, 힘줄, 주위 조직에 쌓여 극심한 통증과 관절의 변형 및 불구를 불러오는 질환으로 정의한다. 더 나아가 다양한 신장질환, 콩팥돌증까지 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이처럼 극심한 통증이 끊이지 않고 재발성 발작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면서 더 큰 질환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의학적으로 완치가 어렵기 때문에 의료계에서는 통풍을 당뇨병이나 고지혈증, 고혈압과 마찬가지로 평생 의사의 처방을 통한 약제 복용과 치료 요법, 식이 요법으로 요산 수치를 일정하게 관리해야 하는 만성 질환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계는 없습니다(출처: 뉴스1)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계는 없습니다(출처: 뉴스1)

하지만 A씨는 “(제가) 한의원을 개원한 후 지난 25년 동안 환자 진료가 6000케이스가 넘는데 이 중 3500건은 통풍 초기 환자로 완치율이 90% 이상 높게 나타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A씨의 한의원은 통풍 환자들에게 환자의 상태에 맞춘 처방 치료제·보약이라면서 ‘00탕’이라고 이름 붙여진 한약을 조제하여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H한의원에서 직접 조제한 이 약은 일반 첩약과 마찬가지로 임상시험과 동물실험 등을 거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정확한 성분조차 알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H한의원을 다녀온 환자 등에 따르면 환자 1인당 한 달치 약값은 40만 원 이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의약품으로 정식 승인받은 통풍 치료제의 한 달 약값이 건강보험 적용 시 약 2~3만 원 정도인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고가인 셈이다.

◆의료계,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계기로 마음대로 ‘전문’ 내세운 한의원 등 늘어날까 우려

이와 관련해 통풍연구회장을 역임한 송정수 서울시의사회 학술이사(중앙대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통풍을 완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만성 질환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조차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송 이사는 “통풍 환자는 약과 식이요법으로 평생을 관리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고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은 의료행위에 (일부 환자들이) 많은 돈을 지불하며 질환을 오히려 악화시키는 사례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 7월 24일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실시 여부를 결정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앞두고 이날 회의가 열린 서울 서초구 국제전자센터 앞에서 대한의사협회와 첩약 급여화를 지지하는 단체가 맞불 집회를 갖고 있다.
지난 7월 24일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실시 여부를 결정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앞두고 이날 회의가 열린 서울 서초구 국제전자센터 앞에서 대한의사협회와 첩약 급여화를 지지하는 단체가 맞불 집회를 갖고 있다.

의료계는 정부의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계기로 이처럼 근거가 불분명하고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한의학 치료법을 전면에 내세운 한의원들이 크게 늘어날 것을 우려한다.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시행이 일반인들에게 자칫 정부가 한약과 한의학 시술의 안전성을 공인해 주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성진 서울시의사회 한방대책특위 위원장(서울시의사회 부회장·여의도성모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은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에서 H한의원뿐만 아니라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의료행위가 도처에 난무하고 있는데, 이렇게 안전성과 유효성을 위한 최소한의 검증조차 이뤄지지 않은 의료행위에 환자의 몸을 함부로 맡기는 것은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위험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홍 위원장은 “최근 전공의들이 파업 투쟁을 벌이면서 외친 것도 ‘Do No harm', 즉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것인데, 한방 첩약 급여화는 오히려 해를 끼치는 것을 국가가 나서 장려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이로 인해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까지 놓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감사원, 전문의약품 불법 유통한 한의원 5년여간 5800곳 적발

실제로 일선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에서 임의로 조제되는 한약들은 일반적인 의약품과 달리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절차가 존재하지 않아 그 성분조차 제대로 알 수 없고 심지어 처방의 표준화마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첩약 과학화 촉구 범 의약계 비상대책위원회’는 9일 성명을 통해 “GMP시설에서 생산되는 한방 약제와 달리 개별 한의원에서 직접 조제 또는 원외 탕전실에서 임의 조제되는 첩약은 그 성분에 대한 내용을 알 수도 없고 표준화를 할 수 없는 개별적이고 임의적인 처방약제”라며 “원료 한약재에 대해 일일이 독성과 유해성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약제 처방이 급여화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제대로 된 실태 파악조차 하지 못하면서 일부 한방 의료기관에서는 한의사의 처방이 금지된 전문의약품까지 비공식적 루트로 유통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감사원이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를 대상으로 의약품 안전관리실태를 점검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14년 1월부터 2019년 8월까지 전국 5773개 한의원에 의사나 치과의사만 취급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이 상당수 불법적으로 공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 공급 내역을 살펴보면 스테로이드제(부신피질호르몬제) 64만 2408개를 비롯해 국소마취제(리도카인), 항생제, 백신, 호르몬제, 비타민제, 해열·진통·소염제 등 전문의약품 360만 261개가 한의원에 흘러들어갔다.

특히 스테로이드제와 국소마취제, 항생제는 부작용 유발성이 커 이처럼 불법으로 유통될 경우 그 해악이 몹시 크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으로 스테로이드 계열의 덱사메타손의 경우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부작용 사례가 1만954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덱사메타손은 일부 한의원에서 통풍치료약으로 둔갑하는 사례도 발견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4월 ‘통풍치료전문' 한의원을 열고 염증억제 작용이 있는 스테로이드 제제인 ‘덱사메타손’을 자신이 조제한 한약에 몰래 넣어 ‘동풍산’이라는 통풍치료 특효약으로 속여 판매한 30대 한의사 B씨를 적발해 검찰에 송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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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dly 2020-09-10 10: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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