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 전성훈
  • 승인 2020.09.08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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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93)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여기 두 개의 문이 있다. 그 문 앞에서 A가 B에게 말한다. ‘이 두 개의 문 중 하나에는 호머 심슨이 있고, 다른 하나에는 호랑이가 있소. 잘 생각하여 선택하시오.’ B는 고심 끝에 하나를 연다. 호랑이가 있다. B는 깜짝 놀라 그 문을 닫고, 다른 문을 연다. 또 호랑이가 있다. B는 화가 나서 A에게 묻는다. ‘둘 다 호랑이잖아!’ A가 답한다. ‘왼쪽 호랑이 이름이 호머 심슨이오.’

심슨 가족(The Simpson)의 이 재미있는 에피소드에서, A가 거짓말한 것인지 생각해 보자.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A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다만 A는 호머 심슨이 사람 이름이 아니고 호랑이 이름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러한 답변을 흔히 궤변(sophistry)이라고 한다.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서 묘사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이런 궤변의 대명사이다.

궤변은 빼더라도, 세상에는 거짓말이 너무 흔하다. 그리고 이렇게 거짓말이 흔한 세상에서도, 변호사와 정치인은 대표적인 거짓말쟁이로 놀림당한다. 예를 들어 영국의 한 작은 술집은 주류 제조사 제닝스의 스폰서를 받아서 ‘세계 거짓말 대회’를 여는데, 직업상 항상 거짓말을 해야 하는 변호사, 국회의원, 외교관은 참가할 수 없다고 한다.

필자는 정치인이 아니어서 정치인이 거짓말쟁이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변호사가 거짓말쟁이라는 말은 꼭 반박하고 싶다. 변호사가 거짓말쟁이인 경우는 드물지만, 의뢰인이 거짓말쟁이인 경우는 꽤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 많은 경우에 의뢰인은 변호사에게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의뢰인이 어느 부분에서 거짓말하는 것인지 변호사가 잘 알아채는 것에 소송의 승패가 달려 있다. 그래서 경험 많은 변호사는 의뢰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겉으로는 ‘그렇군요’하면서 맞장구를 쳐주더라도 말이다.

변호사에게 거짓말하는 의뢰인은 크게 세 부류이다. 첫째는 나이 많으신 분들 중 법조인이 아주 적던 시절을 사시면서 ‘법조인은 다 한 통속’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게 되어, 변호사에게 사실대로 말하면 판사나 검사에게 알려져 불리할 것을 두려워하여 거짓말하는 의뢰인들이다. 아직도 지방에 가면 남아있기는 하나, 최근에는 매우 드물다.

둘째는 자신의 치부나, 소송에서 불리할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실들을 말하지 않는 의뢰인들이다. 이러한 상황은 아직 변호사와의 신뢰가 충분치 않아 생기는 것이므로, 지속적으로 의사소통하고 시간이 흐르면 차츰 변호사의 질문에 사실대로 답하게 된다.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셋째는 자신이 상황을 모두 파악하고 있고, 소송 중에도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고, 하여야 한다고 믿으면서 변호사에게 제한된 정보만 주는 의뢰인들이다. 즉 변호사는 내가 준 자료, 내가 말해 준 것만 잘 정리하여 재판부 설득만 힘쓰라는 것이다. 이런 부류는 고등교육을 받고 자기 가치관을 바탕으로 일하는 직업, 즉 작가, 교수, 목사 등 중에서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의뢰인은 법원을 속이기 위해 자기 변호사부터 속이려 한다’라는 법조계 속언을 만든 장본인들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거짓말보다도 소송 결과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상대방 변호사는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의뢰인이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객관적 증거를 입수·제출하여 의뢰인의 주장을 반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재판부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의뢰인이 ‘감추는 부분’을 푹 찔러 물어본다. 게다가 실제 소송에 있어서 이러한 궤변은 거짓말과 동일하게 판단된다.

필자 역시 계속 의뢰인들의 거짓말을 접하고 있다. 의뢰인 C가 이혼을 청구하면서 상대방인 아내 D가 자신의 직장에 찾아와서 고성과 행패를 부렸다고 주장하여 이를 서면에 반영한 후에 동영상을 확인해 보니, 그 날 고성과 행패를 부린 것은 정작 C였다. 게다가 형사소송까지 제기하여 이혼소송을 성공적으로 진행함으로써 바라는 대로 이혼하도록 하여 주었으나, C는 변호사보수를 아까와 하여 앞뒤가 맞지 않는 거짓말을 계속했다.

소송 상대방의 거짓말은 대부분 반갑다. 증거를 찾아서 반박하면 되기 때문이다. 술 마시고 ‘필름이 끊겨’ 모텔에서 F에게 준강간을 당했다고 고소한 피해자 E의 휴대전화 정보를 확인해 보니, 모텔에서 자기 친구들과 두 세 차례 통화한 내역, 모텔에서 나와 택시를 혼자 잡아타고 귀가한 내역까지 있었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거짓말쟁이들은 ‘뇌피셜’을 통한 자기최면에 능하기 때문에 거머리 같은 행태를 보인다. E는 자신이 준강간당한 것이 맞다고 계속 주장하면서, F의 직장에 익명의 투서를 하여 F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검사의 불기소결정에 항고하고, 법원에 재정신청까지 제출했다. 오죽했으면 보기 드물게 법원이 E의 신청을 기각하면서 점잖은 표현으로 ‘이제 그만 닥쳐라’라는 입장까지 피력했을까.

최근 의협과 정부와의 합의문 서명으로 출구가 보이는 듯 했던 의료계 파업이, 의대생들이 국시거부를 다시 결의함으로써 다시 미궁에 빠진 듯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의대생들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의대생들을 포함하여) 의료계에서 강경투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설마 정부가 거짓말하겠느냐?’라는 설득에도, ‘정부가 하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더라도, 궤변일 것이다. 그들의 말을 워딩 그대로 믿을 수 없다’라고 항변한다.

정부의 말이 의료계에 신뢰를 주지 못하고 궤변임을 의심받는 이런 상황은, 의료계가 과거 두 차례의 대규모 투쟁을 통해 정부와 각각 총론적 합의를 이뤄냈음에도, 실제로 실천을 위한 각론의 협의에 들어가서는 총론에 반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던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정부가 진정성을 보일 시기이다. 의료계의 뿌리 깊은 불신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의료계의 분열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끈다는 의심을 받지 않도록, 정부는 조속히 의정협의체를 구성하고 진정성 있는 대화와 협의를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만약 의협 집행부의 임기가 6개월밖에 남지 않아 구체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생각하더라도, 구체적인 협의를 위한 ‘아젠다’ 설정을 시작해야 한다. 이것만이 정부가 ‘메피스토펠레스’로 의심받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정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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